▲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은 태어날 때와 죽을 때 관공서에 출생 또는 사망한 사실을 신고하여야 한다. 지금은 출생신고를 하여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하지만, 2007년까지는 하더라도 호적부에 등재하였다. 사망신고도 역시 같았다. 이는 민법이 개정(2005. 3. 31. 시행)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민법상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호적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가족관계 등록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이루어진 제도의 변화이다. 출생신고는 본인은 어려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망신고는 본인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부득이 본인이 아닌 부모나 동거하는 친족이 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신고하는 것으로 두 번째는 혼인(이혼)신고이다. 혼인신고는 혼인하는 당사자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혼인 신고에 관련된 사실을 스스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출생과 사망신고는 본인이 하지 않기 때문에, 사후에 등본을 발부받거나 열람함으로써 관련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본인의 출생에 대해서는 학교 등 관공서에 가족관계등록부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혼인신고를 할 때도 본인과 배우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확인하여 본인과 배우자의 본과 등록기준지, 부모의 등록기준지를 써넣어서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당연히 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만 필요하지, 자친의 가족관계등록부는 필요가 없다. 결국, 살아가면서 자친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볼 일도 없고, 그럴 경우도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대법원은 2005년 7월 21일에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무효라고 하였다(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이는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등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 만에 의하여 생래적으로 부여하거나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여성도 문중의 구성원이 되고, 여기에는 출가한 여성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어느 날 외사촌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연유를 들어보니, 자친의 친정 문중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엄청난 돈이 생겼는데, 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하여 출가한 딸들이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고, 이에 출가한 자친에게도 배당되는 돈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친이 그 문중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가족관계등록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동 주민센터에 가서 자친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신청하였더니(본인이 가지 않더라도 직계비속인 아들은 신청이 가능하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의 호적을 난생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친의 모친인 외할머니의 관향이 있었다.

여주 이씨. 회재 선생의 후손. 아하, 이래서 자친은 노상 예의범절 운운했구나. 최근 들어 아들이 부실하게 행동할 때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탄을 했구나. 자식이 본인의 기준에 마땅찮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본인이 어릴 때부터 배운 품행과 언동에 비추어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했을까. 좀 더 자친의 말씀을 경청하고 익혀야 함에도 지금의 시속에 비추어 보아 힘들다고 생각되더라도, 되도록 그에 따르려고 하거나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기가 찰 일이었으리라. 이제는 내 몸에 흐르는 외외가(外外家)의 전통을 위해서라도 좀 더 효에 충실하여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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