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티브이 줄거리에 식상한 누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화염병을 던지고 갔다

금방 독가스가 자욱해졌지만

사람들은 공들여 얻은 자리를 빼앗길까봐

복지부동 버티고 있다

삐라처럼 뿌려진 폭탄에

20인치 스크린 안이 환해졌다

아우슈비츠처럼 잠깐

지하 동굴을 믿고 지상은 암전되었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 구급장비들이

더듬더듬 구멍이란 구멍을 다 틀어막았다

코를 처박고 사타구니에 얼굴을 숨긴 사람들이

불쏘시게처럼 하나 둘 쓰러졌다

흐느적거리는 불길을 뚫고 용케 몇 사람이 남아

티브이 스크린의 전원을 껐다

지하 동굴의 안과 밖에서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감상)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억의 스크린을 끈다거나 수도꼭지를 잠그듯 기억의 통로를 잠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못으로 꽝꽝 박고 틈 하나 없이 꼭꼭 막았다. 싶은데도 왜 기억은 독가스처럼 흘러나와 우리를 울부짖게 하는 걸까요.(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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