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신작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 출간

소설가 성석제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연합
소설가 성석제(56)가 새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를 펴냈다. 장편소설 ‘투명인간’ 이후 2년 만이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란 말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 따온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로 시작하는 ‘청산별곡’에는 중간에 “어듸라 더디던 돌코/누리라 마치던 돌코/믜리도 괴리도 업시/마자셔 우니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어디에 던지던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돌에) 맞아서 울고 있노라’라는 뜻이다.

작가는 왜 이번 소설집의 제목으로 이 구절을 인용했을까.

“‘믜리도 괴리도 업시’라는 말이 예쁘게 들리기도 했고요,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들의 의미와 딱 부합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는데도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 양쪽에서 돌을 맞는다는 거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돌을 맞는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본 것도 없는데 약자나 소수자란 이유로 쉽게 돌을 던집니다. 마치 연못의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처럼요.”

그는 지난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집 제목을 이렇게 설명했다.

표제작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너’로 지칭되는 인물은 동성애자다. ‘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읍내의 큰 주물공장 사장 아들로 한때 귀공자 대접을 받았지만, 공장에서 큰 사고와 화재가 잇따라 아버지 사업이 폭삭 망하면서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주변의 멸시를 받는다.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오게 된 그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나는 그를 무시하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미술가로 성공한 그는 몇 년 만에 동성애인과 함께 나타난다. 그가 동성애자임을 짐작했으면서도 막상 사실로 드러나자 깜짝 놀라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이성애자들은 꼭 그렇게 묻더라. 언제부터 게이였느냐. 나를 어떻게 생각해온 거냐. 나를 볼 때마다 몰래 흥분한 거 아니냐. 기분 더럽다…… 내 대답은 이래. 나도 눈이 있고 수준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취향이 아니냐.” (본문 169쪽)

작가는 이 소설 속에 등장시킨 동성애자는 소수자나 약자를 대표하는 한 표지일 뿐이라고 했다.

“주류나 다수에 대응하는 개별적 존재, 소수, 차별받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죠. 소설 속에서 ‘교만한 이성애자’로 일컬어지는 주류와 다수는 자신과 성향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성(性)이 다르고 빈부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돌을 던집니다. 다수 속에 숨어서 그러지요.”

약자와 소수자를 소설 속에 자주 등장시켜온 그는 요즘 부쩍 ‘난민’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시리아 같은 곳뿐만 아니라 정신적 난민도 많죠. 직업을 얻지 못하는 난민들, 불안해서 앞날이 안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더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그들의 고통이나 애절함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이 가요.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풍요로운 여건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많은 곡절을 겪고 나락까지 떨어져 봤던 사람들이죠.”

이번 소설집에 담긴 ‘골짜기의 백합’은 특히 그런 파란만장한 사연을 지닌 여자의 이야기다. 선녀처럼 예쁜 여동생을 곱게 키우려고 화류계로 흘러든 여자는 큰돈을 벌고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마약에 중독됐다가 겨우 헤어나고 일본에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다. 그래도 그녀는 낙관을 잃지 않고 다시 삶을 모색한다.

다른 소설 ‘매달리다’는 군사정권 시절 납북됐다 돌아온 어부가 간첩으로 몰려 삶이 완전히 파괴되는 얘기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이어서 성석제 특유의 익살과 풍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엔 삶의 절단면이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게 어쩐지 좀 망설여졌어요. 그보다는 흉터나 딱지로 표현되는 게 낫지 않나 싶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다는 아니지만, 그대로 드러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실제 내가 목격하고 듣는 삶의 비극성이 전보다 더 강화된 것도 있고, 나 자신이 여유가 없어진 것도 있죠. 실제의 이야기를 내 스타일로 눅여서 소설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워낙 강렬하니까 눅일 여유가 없는 거죠.”

소설집의 맨 마지막 작품인 ‘나는 너다’는 이달 초 그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짧은 소설이다. 칼럼으로도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여러 통계 지표를 인용해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사회 불평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죠. 상위 1%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소득 집중도 통계를 보면 수치가 계속 높아지지 내려간 적이 없잖아요.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그렇게 만드는 데 사용하고, 대다수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소외되면서도 그걸 잘 모르고 자신의 권익을 의도치 않게 방치하게 되죠. 과거엔 이런 일이 있으면 혁명이라든지, 과격하게 뒤바꾸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지금은 시스템이 너무 교묘해져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그는 이번 신작과 함께 첫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1996)와 두 번째 소설집 ‘조동관 약전’(1997)에 담긴 작품 중 8편을 개정판으로 다듬어 ‘첫사랑’(문학동네)이란 제목의 소설집으로 새로 냈다.

또 그의 장편소설 ‘위풍당당’이 독일에서 최근 출간돼 오는 19∼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현지 독자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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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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