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 수려하고 물·산·들판 어우러져 환상적인 이상향

합천댐문화관에서 바라본 황매산자락에 자리한 대병면 전경.
이상향으로 알려진 정감록 ‘십승지(十勝地)’ 중에 가야산 만수동(萬壽洞)이 있다. 정감록에는 가야산 남쪽 만수동은 그 둘레가 이백리나 되며 오래도록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이다(伽倻山下南 有萬壽洞 周回二百里 可得保有)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예언가 남사고(南師古)의 ‘산수십승보길지지’ 등 여러풍수지리 대가들도 십승지로 가야산의 만수동을 꼽고 있다.

가야산 만수동은 어디인가. 가야산 밑 남쪽이라니 우선 경상남도 합천 일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면은 ‘조선십승지 읍면장 협의회’ 회원이다. 지난 5월 27일 열린 제23차 ‘조선십승지 읍면장 협의회’ 회의에 합천군 가야면을 비롯해 풍기읍, 춘양면, 화북면, 운봉읍, 용문면, 유구읍, 영월읍, 무풍면, 변산면 등 10개면의 읍면장이 참석했다.

가야면은 동으로 고령군, 서로 거창군, 남으로 야로면과 묘산면, 북으로 성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합천읍에서 34.8km 북쪽에 있다. 가야면은 88고속도로가 이천리에서 성기리를 통과한다. 가야면은 해인사와 내암 정인홍 선생의 문화유산과 가야산, 매화산, 홍류동 계곡등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우렁이쌀, 황토사과, 고랭지 채소, 파프리카, 황토한우등 친환경 농축산물이 유명하며, 예로부터 도자기 산업이 발달했다.

가야면에서 한 일년 간 살고 있다는 박종묵 가야면장은 “가야면은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침수되거나 홍수 피해가 없다. 산세가 수려하고 지덕(知德)이 두터워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도 합천호 위에 앉아 있는 수려한 곳이다. 대병면은 군립공원 황매산 아래 자리 잡고 황매산을 모산으로하는 금성산 악견산 허굴산 등 대병 삼산이 있는 산중 호반 마을. 100대 명산중 하나인 황매산(黃梅山,1108m)은 봄철엔 연분홍색 철쭉으로 가을엔 은빛의 억새로 유명한 산이다. 합천호를 두르는 백리 벚꽃길과 주변에 나지막한 산들, 그리고 다랭이 논 들판…. 모두가 아름다움에 모자람이 없다. 요즈음은 꿀 고사리 두릅으로 꽤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회양(回陽)은 룡골, 가산, 새터, 붉은 바위, 돌댐이, 오리밭, 소정 아랫마, 밤나무정(율정), 돌담미(乭大尾 : 석장), 붉은바위(주암). 오리밭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돌담미는 경치가 좋고 물이 맑은 곳으로 현재 두산중공업 연수원이 있다. 동틀 무렵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나는 합천호는 신비로움 자체이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회양리에서는 늘 볼 수 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석양 때 합천호 위에 길게 뻗는 산 그림자가 온화하면서도 강렬하다. 국토여행가 박경심씨(대구수성구지산동)는 “누구든지 이곳에 와 보면 한눈에 ‘와 예쁘다’라는 탄성이 나올 만 한 곳으로 물과 산 들판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곳”이라고 말했다.

이 곳 주변에 있는 합천댐 물문화관은 K-water 경남부산본부가 지난 10월 12일 동영상 중심의 콘텐츠 확충과 방문객 편의시설를 개선 해 재개관했다. 1층 전시실은 합천댐의 어제와 오늘, 합천호 생태계 등 7개의 3차원 동영상 콘텐츠로 디지털화했고, 2층 전시실은 작품 전시와 지역관광명소 사진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합천호는 황강 상류를 막아서 조성했다. 남명(南溟) 조식(曺植) 선생이 합천 함벽루에서 바라본 황강(黃江)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돼 시를 읊었다고 한다.

‘남곽자(南郭子)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강물은 아득하여 알 수 없구나/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 버리네.’

남명 선생은 함벽루에서 자신의 학업을 닦음이 쉽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았나 싶다. 황강은 합천군 청덕면의 가현리와 미곡리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황강의 ‘황(黃)’은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도 있고, 옛 삼가현 황산(黃山)과 관련돼 있다는 견해도 있다. 황강은 강바닥이 둘레보다 높은 천정천(天井川)이었다. 그래서 강변 양쪽에 기름진 논이 생겨나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또 정양늪이나 박실늪·연당지 같은 습지도 많아 다양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가야산 아래 해인사(海印寺)가 자리 잡은 터도 좋다고 소문나 있다. 팔만대장경이 오랫동안 보관 유지 해 온 것이 그냥 될리 만무하다. 유명한 해인사 대장경판(藏經板, 국보 제32호),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 국보 제52호)등이 있는 해인사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해인사에 보관 중인 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고려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송, 거란의 대장경을 비교· 교정하며,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완성됐다. 가장 완벽한 불교경전인 고려 재조대장경. 고려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은 750여년이 지난 지금도 81,258장의 경전 속에 단 한자의 빠짐도, 틀림도 없는 5천2백여만자를 기록한 목판본으로 현존하는 목판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도 등재됐다. 경남도가 세운 대장경테마파크는 고려대장경의 역사적, 문명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인류 공동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이해와 공감의 장소다. 대장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경전 전래와 수집과정, 천년을 보내왔던 장경판전의 숨겨진 과학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그 본디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그 외에도 합천군 초계면은 곡창지대로 물산이 풍부해 여유가 있는 곳이다. 주변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신라가 백제를 정벌하기전 백제가 빼앗았던 대야성이 합천읍이나 초계면중 하나라는 설이 유력하다. 합천군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삼가군과 초계군을 합쳐 합천군이 됐다. 합천은 신라와 가야(500년대), 신라와 백제(600년대), 통일신라 또는 고려와 후백제(900년대) 시대에는 군사 요충지였다.



가야산은 성주와 합천의 걸쳐있어 예부터 성주를 가야산 만수동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성주군 가천면 옥계(포천계곡)와 나란히 달리는 903번 도로를 따라 신계리를 지나 마수리가 그곳. 마수리 곰실(熊谷) 뒷산이 만수동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 만수동은 아주 옛날 수동(壽洞)으로 불렸고 지금의 마수동(馬水洞)은 1895년 고종 때 만수동을 고쳐 지은 이름이다. 이 만수동에 대해 풍수지리가들의 얘기다. “뒤편으로 태조산에 해당하는 가야산과 탐라목성인 현무봉이 자리를 잘 잡았고 좌청룡과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들의 형세도 빼어나다.“ 만수동 중앙으로 흐르는 계곡은 맑은 정기를 간직하고 있다.

‘성주군지’ 가천면 마수조(條) 기록에도 ”마수리는 가야산의 아랫자락으로서 예부터 병란을 피하고, 생리의 덕이 있는 명지의 일처로 일컬어져 만수동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예부터 난세에 많은 은사들이 이곳을 수양처로 삼아 정착했“고 했다. 또 곰시조에는 ”가야산 산봉의 동북쪽의 가파른 산언덕 아래 자리한 마을로서 마수 마을과 더불어서 천혜의 피병지이며, 난세의 은거지로 알려져 있다“고 적혀 있다. 마수리는 대부분의 승지와는 달리 북향이다.

정감록의 만수동(萬壽洞)은 그 둘레가 이백리(周回二百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지역이든지 승지로 알고 가꾸는 곳이면 만수동이 아닐까.


십승지 가야산 만수동으로 추정되는 곳 중에 하나인 합천군 가야면 숭산마을 전경
김정모 기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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