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일영남대법학전문대학원교수.jpg

인류 역사상 가장 최고의 발명은 거짓말이라는 견해가 있다. 옛적 어른들은 남자는 돈과 거짓말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하였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지만, 요즘은 직장문제, 자녀 교육문제 등으로 부득이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노모는 열심히 농사일을 하면서, 식사도 거르지 않고 잘 먹는 줄 알았다. 본가에 들르게 되면, 노모는 나에게 본인이 직접 한 고된 농사일과 그 성과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였지만, 성질이 고약한 자식은 그 말씀을 잔소리로 생각해서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나의 짜증을 대수롭잖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은사님이나 선배님들은 노모의 말씀을 경청하고, 항상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본인들은 그렇게 말하는 부모도 계시지 않아서 매우 아쉽고 섭섭하다고 하였지만, 그 당시 나는 그분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던 분이 별세하였는데, 그 원인이 제대로 먹지 않았고, 그로 인한 지병의 발병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팔십세가 넘은 노모도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있었을 것 같아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 엄마, 밥 챙겨 잡수소. - 너는 어떻게. - 저는 식사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 - 오냐 난 알아서 할테니, 밥을 꼭 챙겨먹고 댕기라. - 예, 밥 잡수세요. - 걱정마라, 꼭 먹는다. 밥 안먹고 어떻게 사노. 이런 대화속에서 나는 항상 노모는 밥을 챙겨 자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에 불시에 본가에 들렀다가 부엌 싱크대에 물기가 없을 뿐 아니라 개수대에 음식찌꺼기가 말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식사를 했는지를 물었더니, 이미 밥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아, 순간적으로 나는 노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가 아마도 팔십세가 갓 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일부러 시간이 날 때마다 불시에 노모 집을 방문해서 싱크대를 보거나 냉장고 속 음식을 확인해 보았더니, 며칠째 그 음식이 그대로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노모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물으니 걱정을 할까 봐서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노모는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걱정할까 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노모는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반찬도 거의 먹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왜 안먹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밥을 먹었다고 강변을 하는 바람에 먹는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나는 밥을 혼자서 먹는 것이 정말로 싫고, 밥맛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노모와 함께 본가 주변에 있는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외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노모는 외식하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왜 멀쩡한 집 밥을 두고 사먹으러 가느냐, 돈 아깝다, 나이들어서 식당 출입이 부끄럽다. 온갖 구실과 투정에 엄청 다투었고, 어쨌든 그렇게 외식을 시작하였다. 간혹 일부러 친구를 불러서 같이 먹으면 엄마도 체면이 있어서 그런지 자식과 다투지 않고 먹게 되었다. 문제는 친구가 밥값을 내는 경우에는 매우 당혹해 하면서 몇 달간 그 일을 기억해내곤 하여 자식으로서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최근에는 외식을 청하면 약간 머뭇거리다가 쉽게 응하곤 한다.

세상의 자식들이여, 연로한 부모님께서 밥을 먹었다고 하거든, 그것을 절대로 곧이곧대로 듣지 마시오. 늙으신 부모님께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 드리기 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반찬이 부족한 밥일지언정 한끼라도 같이 먹는게 좋습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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