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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생활의 달인(達人)’이라는 TV프로를 재미있게 봅니다. 시계 수리의 달인, 봉투 접기의 달인, 수제화(手製靴)의 달인, 우엉김밥의 달인, 꽈배기의 달인 등 신묘한 기술, 기법의 소지자들을 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때로는 감탄을 넘어 존경심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자신의 업(業)에 대한 ‘무한도전’ 식 긍지와 몰두의 결과였습니다. 볼 때마다 과연 나는 내 직업에 저들만 한 열의를 쏟아 붓고 있는가라는 반성이 듭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저를 보고 ‘글쓰기의 달인’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 살필 때 저는 결코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글쓰기 강호의 하급 시골 무사에 불과합니다. 글을 쓸 때만 잠깐 소량의 자기도취가 있을 뿐 완성된 글을 보고 느끼는 자기 충족감이 없습니다. 늘 불만이 뒤따릅니다. ‘생활의 달인’들이 자신의 작업, 작품을 바라보는 그런 그윽한 눈길을 저 자신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부단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장자’에도 여러 편의 달인 이야기가 전합니다. 널리 알려진 것에 포정(?丁·백정), 윤편(輪扁·수레바퀴 전문가), 도척(盜?·도둑), 목계(木鷄·닭싸움 전문가), 설검(說劍·검술전문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장자’ 외편 ‘달생(達生)’에 등장하는 ‘매미 잡는 법’도 마찬가지 달인 이야기입니다.

중니(仲尼·공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숲 속을 통과하는데 한 꼽추가 마치 줍듯이 쉽게 매미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니가 물었다. “당신은 솜씨가 좋군요. 비결이 있나요?” 꼽추가 대답했다. “비결이 있죠. 대여섯 달 동안 장대 끝에 공을 두 개 겹쳐놓고 떨어지지 않게 되면 매미를 잡을 만하지요. 실패할 때가 적게 됩니다. 공 세 개를 겹쳐놓고 떨어지지 않게 되면 실패는 열 번에 한 번 정돕니다. 공 다섯 개를 겹쳐놓고 떨어지지 않게 되면 마치 줍듯이 잡게 된다오. 내 몸가짐은 말뚝처럼 꼼짝 않고 팔의 동작은 마른 나뭇가지와 같이 움직이지 않소. 천지의 드넓음도 만물의 다양함도 아랑곳없이 다만 매미의 날갯짓만이 포착될 뿐이오. 몸과 팔을 꼼짝 않은 채 오직 그것에만 마음을 쏟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잡지 못할 리가 있겠소!”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뜻을 한데 모아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면 곧 신과 같아진다지만, 그것은 저 꼽추 노인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장자’)

요점은 아마 “뜻을 한데 모아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인 듯합니다. 학업이든 직업이든. 그 방면의 달인이 되려면 뜻을 세워 한 곳만 바라보고 끝없이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것입니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른 길이 없는지도 궁금하고 종내 성공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 우왕좌왕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달인이 되는 길의 가장 큰 장애물은 조급증입니다. 실패한 일들은 언제나 생각이 먼저 도달해 있었습니다. 성급하다는 것, 늘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은 신경증일 공산이 큰 것입니다. ‘장자’에 나오는 ‘매미 잡이’ 이야기는 ‘생각 없는’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장대 끝에 공을 다섯 개 겹쳐 쌓는다는 것은 거의 가능성 없는 행위의 경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 즉 ‘생각이 먼저 도착해 있는 상황’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달인이 되는 첩경이라고 이 이야기는 가르칩니다. 항상 의지를 가지고 전진하되 오직 내 성취의 수준만을 높여갈 뿐 그 이외의 생각은 일절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달인이 되는 유일한 비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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