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글자1.jpg
세상에 수많은 상이 있지만 노벨상 만큼 지구촌의 관심을 끄는 상은 없다. 노벨상의 권위는 1901년 제정 당시 최대 규모였던 상금의 액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노벨상 116년 역사에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못하고, 받지 말아야 할 사람이 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노벨상 역사는 영광의 발자취임과 동시에 수많은 뒷말을 남긴 스캔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4년 ‘구토’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장폴 사르트르는 상의 수상을 거부했다.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도 받기를 거부했던 사르트르는 국가 기관이나 권위 있는 기관에서 주는 상이나 영예를 헌신짝처럼 여겼다. 그는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는 편지에서 "살아 있는 동안 누구도 평가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1973년에는 베트남 전쟁의 당사국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레둑토가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전쟁사령관 레둑토에게 평화상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정작 베트남전 종식을 위해 미국과 베트남이 벌인 파리 평화회담에서 월맹측 대표단 고문으로 참가한 레둑토는 "내 모국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이 상의 수상을 거부했다.

미국의 괴짜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 교수도 1965년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스웨덴 한림원을 찾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까지 갔다 왔다 해야 한다니, 나는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벨상의 권위와 가치도 이미 대단한 성과를 이룬 그에겐 하찮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난 13일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과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던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팝가수 밥 딜런(75)을 선정했다. 하지만 노벨상이 귀찮은지 그를 수상자로 결정한 이후 한림원이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림원은 애써 "그가 시상식에 오지 않아도 영예는 불변"이라지만 또 한 번의 노벨상 수상 거부 사례가 되지 않을 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