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 소설가 백신애는 경북 영천 출신이다. 본명은 무잠(武岑)이다. 그의 강직한 성품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는 어릴 때 한문공부를 했다. 영천과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사임, 여성동우회·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해 계몽운동에 참여했다. 백신애는 이 무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다. 1929년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라는 소설을 일간지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과에 다닌 신여성 백신애는 1932년 귀국해 결혼 했지만 이내 이혼한다.
지역의 항일여성운동가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그는 1933년께부터 창작에 전념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러시아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꺼래이’와 가난한 두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적빈(赤貧)’이 대표작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한국 여성소설의 문화·사회적 가치를 확장한 인물이다. 그는 소설을 통해 역사의식과 사회의식, 연대감을 고취함으로써 치열한 삶의 희망을 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북도가 지난 18일 백신애의 고향 영천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백과사전에 “1938년 중국 상해로 여행가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위장병의 악화로 작고했다”로 끝나는 짧은 약력으론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되새기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