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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은 늙으면 무엇인가 나약해지고 의심이 많아진다. 주위에 자식이 있으면 자식의 도움을 받아서 무엇을 할 수 있지만, 자식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난감하다. 출세한 잘난 자식은 도시에 나가서 살지만, 고향에 있는 자식은 부모를 공양하면서 옆에서 같이 늙어간다. 나무도 굵고 좋으면 목재로 베어져 팔려가지만, 구부정한 못생긴 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동네 뒷산에서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는 서낭목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통이 좋아져서 부모와 떨어져 살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사실상 곁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노모는 농사를 조그맣게 하고 있지만, 자식들이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같이 동거하지 않기 때문에, 손(노동력)이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별로 큰 수고가 드는 것이 아니라서 인부를 고용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해당 작업이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자식이나 주위 분에게 부탁하여 해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앞에 있는 자식은 오라고 하면 뭐가 그렇게 바쁜지 온갖 핑계를 대고 하니, 한두 번 시키다가 그만 포기하고 만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처럼 바쁘지 않을 때는 연락이 없다가, 바쁠 때만 꼭 전화가 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럴 때는 그저 열 명의 자식보다 옆집 한 사람이 더 요긴하다. 본가 주위에 살고 있는 먼 친인척 분들은 노모가 보자고 하면 인정상 오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한 노모는 동네 살고 있는 친인척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으로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본가로 갔더니, 아지매(먼 친척인 연세든 형수)가 와서 밭일하고 있길래, 얼마나 고마운지, 마침 차 트렁크에 넣어둔 꿀 한 병을 신문지로 둘둘 싸서 슬그머니 아지매의 자전거에 실어 드렸다. 문제는 수년 전 백내장 수술을 한 노모의 시력이다. 평소 노모는 수술하였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본인이 반드시 보아야만 하는 장면은 항상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노모는 불필요하게 남에게 과잉 선심을 베푸는 것을 싫어하는 점이다. 그래서 자식으로서 노모에게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성의 표시를 하려면, 노모가 모르도록 검은색 봉지(?)에 싸서 드리거나 신문지로 위장해서 드려야 한다, 이 위장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평소 보이지 않는다던 노모의 눈이 이 순간만은 매의 눈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몇 주 전 다른 분에게 나물 속에 넣어드린 것은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그날 신문지에 싸서 실은 것은 그만 들켜버리고 말았다. 노모는 “갸는 나물을 며칠 전에도 주었는데, 무슨 나물을 또 해가 가노”라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아마도 며칠 전에 노모가 나물을 좀 드린 모양인데, 오늘 또 나물을 노모에게 아무 말 않고 가져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후 며칠간 내가 갈 때마다 나물 타령의 불만을 표시하길래, 하는 수 없이 노모에게 모아놓은 신문지를 주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노모는 고개를 끄떡였다. 노모는 남에게 주는 것을 항상 좋아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수준을 넘는 친절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어린 시절 고초를 겪은 엄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을 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나 포비아가 생각보다 심한 것 같고, 이는 일제하 어려운 위기를 겪은 모든 노인에게 공통된 사고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자식은 엄마를 속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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