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7년 제정한 6공화국 헌법을 개정하자는 초대형 정치이슈를 던졌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헌법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개헌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전격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도 헌법개정 특위를 구성해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든 싫든 개헌 논의의 장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서 탄생한 현재의 헌법, 이른바 ‘87 체제’가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맞춰 보완돼야 한다는 개헌당위론은 일부 학계와 정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정부 내에 개헌기구를 두고 개헌안을 발휘할 태세이니 개헌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우선 개헌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문제다. 개헌을 꼭 해야 할 만큼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다. 개헌 문제는 정치인들의 뜨거운 관심과는 달리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서 있지는 않다고 봐야 한다. 헌법이 부족해서 정치의 품질이 떨어지고 국가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 ‘만인이 평등하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 등 온갖 좋은 정치 문구는 다 들어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현실은 헌법이란 게 선언적 의미를 담은 것에 불과하고 실천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정치후진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대 개헌 논의는 집권자의 통치 편의적 차원에서 구상되고 추진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임기 내 개헌 추진 제안의 시점이나 의도를 둘러싸고 야권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이라도 만들자는 건가”라며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참 느닷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그러한 의구심에서다.

만약 개헌을 추진한다면 앞으로 논의 과정이나 그 내용이 중요하다. 이왕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면 당리당략이나 정략적,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좋은 헌법이 절대적 전제다. 87년 체제가 군부독재의 장기집권 저지라는 시대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기념비적 의미를 남겼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막는데 치중한 좀 더 근원적인 권력구조 개편 문제부터 다양한 기본권, 그리고 지방문제에까지 반영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개헌을 해야 한다면 개헌 작업에 지방의 의견도 반영돼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 얘기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이 너무 심해 지방의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은 모두 지방 분권의 헌법구조를 갖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염태영 수원시장이 일찌감치 지방분권형 개헌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지방자치를 형식적이 아닌 자치입법권과 자주재정권 보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심도 있게 토의해봐야 한다. 집권과 분권은 국가 운영과 통치방식으로서 장단점이 있지만 지방 분권을 담보하기 위한 조항의 추가 삽입이 필요하다. 이번에야말로 지방분권형 개헌의 당위성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폭넓고 풍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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