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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한 변호사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4년, 헐리우드 영화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영화감독 허버트 J. 비버맨은 영화 “세상의 소금(Salt of the Earth)”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1951년 미국 뉴멕시코에서 있었던 광부들의 파업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상영거부 등의 고초를 겪었으나 결국 미국 국민은 비버맨과 같은 영화인들의 노력 등으로 인하여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월 13일, 영화 ‘자백’이 개봉되었다. 동생 유가려의 자백을 근거로 한 화교 유호성에 대한 간첩조작사건(검찰이 제출한 중국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으로 밝혀짐)을 중심으로, 재일동포로서 고국에 유학을 온 학생들을 유학생간첩단으로 엮어 처벌하였지만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던 유학생간첩단사건 및 국정원에 의하여 합동심문을 받던 중에 자살을 한 것으로 발표된 탈북자 이야기 등을 다뤘다. 흔들리는 보도용 카메라 화면이 적지 않아, 화면을 보는데 불편함이 다소 있지만 검찰 및 국정원 개혁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제대로 잘 전달되고 있었다.

유신헌법 통치를 받던 동아일보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지 꼭 42년이 되던 날이었던 지난 10월 24일, JTBC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였다.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 등 발표문이 ‘일반인’ 최순실에게 미리 전달되었고 또 수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였다. 대통령이 10월 24일 오전, 2017년도 정부예산안 설명을 위한 국회 연설에서 깜짝 카드로 “개헌”을 제안하였지만, 발표 당일 저녁에 터져 나온 JTBC의 위와 같은 보도를 부인하지 못하고 그 다음 날에야 녹화 영상으로 90초 사과문을 읽는 데 그치고 말았기에 향후 대통령이 개헌의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가기는 힘들게 되었다. 10월 25일, JTBC는 단순한 연설문이나 광고 문안이 아니라 남북한 비밀 군사 회담에 관한 내용 등 외교, 국방에 관한 사항까지 최순실에게 전달되었다는 정황을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추가 보도했다.

지난 주말에 미국과 북한이 말레이시아에서 속칭 트랙 2(민간 차원 협상) 접촉을 가졌는데 이는 미국 차기정부가 대선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어제는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으로 그동안 북한 방문을 삼갔던 중국이 외교부 부부장을 북한으로 보냈다는 기사도 확인되었다. 반면 “대화는 북한에게 핵무장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면서 대화를 단절하고 있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자세다.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대응 이야기도 감감 무소식이다. 구한말 때보다 더 큰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내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탄핵’ 또는 ‘하야’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오르내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런데 이번 보도 이전 JTBC 뉴스룸의 평균 시청률은 3% 미만이었다. 주변에는 러시아 월드컵 예선을 보느라고 JTBC를 처음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참으로 기막히다. 그러니 이번 일로 JTBC의 기자들이 우리 세상의 소금이었음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우리 곁에는 영화 ‘자백’의 제작사 ‘뉴스타파’도 있고, ‘고발뉴스’나 팟캐스트(Podcast)상의 각종 언론도 있다. 주변에 이처럼 “세상의 소금”이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한 순간만 방심하여도 곧바로 우리를 짐승 취급할지 모르는 거대한 위협 또한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참으로 나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우선 오늘은, JTBC를 비롯한 세상의 소금들에게 크게 박수를 보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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