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물고 상처는 죽는다
상처는 입을 닫고 상처는 귀를 연다

씻어주고 약을 주고 후일담을 들려주면 자라다 만다

쓰라리다 잠잠해진다 더는 호소할 일이 없어서
상처는 기억을 봉합한다 상처는 묻고 묻힌다
상처엔 입김이 스며있다 한숨이 들어있다

찢어진 속살은 처음 하늘을 보았고 바람의 온기를 느꼈고
은은한 상흔은 달빛을 닮은 것이다
상처의 내력을 거슬러 오르면 태초에 가닿는다

닿은 게 머무는 곳이어서
어떤 상처는 세속적이다 어떤 상처는 성소다

발목에 사는 상처와 어깨부터 손가락에 새겨진 상처를 이으면
나는 상처의 집에 기숙하고 있다

얼마 전 입은 내상과 함께 산다
이번 내상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늘도 바람도 달도 없는 세상에서 하늘도 바람도 달도 없는 세상을 거느리며
상처는 상처만 남은 몸을 삼키고

밖에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고통을 피우고
고통만 남았으므로 고통스럽지 않은 고통으로




감상) 볼 수 없는 게 있다는 건 다행한 일, 드러난 흉터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다행한 일, 속에서는 진물이 나고 곪아 터지고 피가 철철 흐르고 썩은 내가 진동한다하여도 아무도 몰라본다는 건 정말 다행한 일,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나는 죽고 말겠지만 당신도 죽고 말겠지만(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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