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은 통치자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투쟁할 때와 후퇴할 때, 엄격할 때와 타협할 때, 터놓고 얘기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정확히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략과 목표와 비전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여론보다 한발 앞서 나갈 줄 알아야 하나 너무 앞서면 이상론이 되고 너무 뒤지면 여론이 등을 돌린다는 것이었다.

케네디는 “훌륭한 통치자에겐 알지 못할 길을 갈 때의 용기, 역경과 위험에 처했을 때 냉정한 자세, 새로운 가능성을 앞세울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 실망을 참아 낼 수 있는 의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닉슨과 케네디가 제시하는 덕목과 자질을 갖춘 대통령은 흔치 않다.

‘대통령의 현주소’ 저자 토마스 크로닌은 “미국 국민은 4년마다 신선한 슈퍼스타 대통령을 주문하지만 조지 워싱턴의 판단력, 제퍼슨의 총명, 링컨의 천재성, 루스벨트의 혜안, 케네디의 상큼한 젊음까지 갖춘 슈퍼스타 대통령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의 한 탐험가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트루먼은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 없어도 미국은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케네디는 백악관 안에서 플레이보이도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존슨은 국민이 한시도 대통령을 감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닉슨은 대통령이 물러나면 국민이 오히려 안도 한다는 것을, 포드는 보통사람이 선거도 안 치르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언젠가 정치학 교수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으로부터 한날한시에 저녁초대를 받았을 때 당신은 누구의 초대에 응하겠나?”라는 물음에 박정희 대통령의 초대에 응하겠다는 대답이 10명 중 4명 꼴로 1위를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인 26%로 추락한 데 이어 ‘최순실게이트’까지 겹쳐 대통령의 통치력이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콘크리트지지층마저 무너진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어떤 평가를 받을 지 참으로 난감하다. 아버지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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