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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 병원장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이라는 것을/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다. 시인은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내 안의 다른 나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다른 나’가 있다. 그 다른 나는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알아차리기가 매우 힘들며 나보다 더 힘이 셀 때도 있고 연약할 때도 있다. 내 안의 다른 나는 달콤하고 황홀한 말로 나를 유혹하기도 하고 반대로 배신하기도 하고 더러는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별나고 충동적이고 때론 지나치게 깐깐하기도 한 ‘다른 나’는 ‘무의식’ ‘본능’ ‘심성’ ‘본성’ ‘내면’ 등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 이것이 우울해지거나 용기를 잃거나 불안해지거나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비현실적이 된다면 마음의 병이 온다.

35세로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감 없고 용기없어 하며 스스로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 남자가 어릴 때 어머니가 사업을 일으키셨고 어머니의 보호를 독차지했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해결해 주었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착한 분이었지만 사업적으로는 무력하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타이르고 훈계할 때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무력화시켜 버리고 치마로 막아 주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자기의 능력 보다는 어머니의 덕이 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왔다. 세월이 흘러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록 사업가로 성공했으나 그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그는 ‘이 승리는 나의 것이 아니야. 나는 비겁했고 또 부당하게 승리를 쟁취했어. 게다가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무능력하게 만드는 일을 어머니와 공모한 거야’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도 당당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불안하고 빼앗길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잠이 들어도 내 안의 다른 나는 잠들지 않고 꿈이라는 심리적 현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소망, 금지된 욕망, 비현실적인 갈망, 충동, 갈등 등을 꿈으로 표현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어느 며느리의 꿈 얘기가 재미있다. “꿈에 남편이랑 행복하게 대청마루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털이 빠지고 다리를 저는 늙은 개가 자꾸 밥상을 넘보는 거예요. 그때 빗자루를 냅다 던졌지요. 깨갱! 소리를 지르며 개가 사립문 밖으로 도망가는 거예요. 참 후련했어요. 근데 도망가는 그 개의 발에 버선이 신겨져 있는 겁니다, 이상하지요?” 이 며느리는 고된 시집살이로 우울증에 걸려 있었고 그 우울증을 치료하던 중 이런 꿈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시원하고 통쾌해 하던 표정을 그 며느리는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했지만 누가 들어도 버선 신은 개가 시어머니라는 것을 쉽게 해몽할 수 있는 꿈이다.

내 안의 다른 나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나를 끌고 간다. 약속 시간에 늦기도 하고 말을 실수하기도 하고 돈 갚을 일은 쉽게 잊어버리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남을 도와주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결국은 나를 흔드는 것은 바람도 달빛도 아닌 ‘내 안의 다른 나’라는 것이다.
 

곽호순 병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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