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갑자기 물어왔던 질문의 답을 나는 몰랐다
아무것도 둘러댈 수 없었던 순간에
깊은 벼랑이 생겼다
내려다보니 꽃잎 같은 햇볕이 떠다니고
그곳에는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미로는 헝클어진 그대로 포로를 보살피고 있었다
철 대문은 바람이 불 때마다 붉은 녹을 흘렸다
얼굴 없는 당신이 다가와 속삭였다
이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손등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기도
커다란 물방울은 간절하고 슬펐다


<감상> 비라도 내려주면 금상첨화지요 꿈길인 듯 구름 위를 걸어 집으로부터 멀어지겠지요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런 날엔 발등까지 내려오는데요 죽은 그림자의 전봇대 외로운 탱자가시의 추억 늙은 감나무의 비애까지, 비라도 내리는 저녁에는 그냥 산책이라도 해야지요 (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