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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힐링처 십승지] 20. 충남 공주 유마 땅

수려한 산세 끼고 흐르는 금강 흉년 알지 못하는 넉넉한 땅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0월31일 18시39분  
▲ 십승지로 알려진 공주 유마땅에서 손꼽히는 유구읍 동해리 전경

‘정감록’의 십승지(十勝地) 중에 한 곳인 ‘유마양수지간’.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과 사곡면 신풍면 일대다. 유마란 유구천과 마곡천을 말하며, 양수지간이란 두 하천 사이를 말한다. 유구·마곡은 북쪽에는 백두대간의 금북정맥이, 남쪽에는 금강이 막아주는 천혜의 요지. 


유마는 태화산을 진산으로 하는 곳으로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 등 12개 군(郡)이 모두 태화산을 진산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태화산에서 발원하는 유구천과 마곡천은 공주시 사곡면 화월리에서 만나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사이를 1백리라고 하기도 하고, 2백리 정도라고도 하는데 그사이가 유마양수지간이라는 것.

그 중 유구(維鳩)의 유래다. 지금의 구산초등학교 뒷산이 구산으로, 그 이름을 따서 구산초등학교라 명했으며 산 이름은 비둘기 산이요, 비둘기산 뒤편에 있는 고개는 비둘기고개(비득재), 그 앞에는 창촌(창말)이 있다. 이런 유래로 유구란 이름이 된 것이며 창말 마을에는 수많은 인물과 거부가 나왔다. 김기창 화백의 생가도 이곳이다. 창말에 살던 오지영 거부는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이 왜군에게 발각돼 무참히 살해됐다. 지금도 신영철 대법관 등 숱한 인물이 난다고 한다.

이희성 풍수지리가에 따르면 유구·마곡의 십승지마을은 유구읍 동해리, 사곡면 우남리(생골, 생양동), 신풍면 화흥리 물안마을이다. 특히 공주 십승지의 핵인 동해리는 주민들의 화합도 유별나다.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오바마펜션은 십승지의 지기를 듬뿍 선사한다. 유구는 세종시 대전시 인근으로 자동차로 20~30분 거리다. 정감록을 수십년 간 연구해온 이희성 풍수지리가의 설명이다. 그는 십승지 명당을 찾아 동해리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산다. 그는 수십년 전 황해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박제두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정감록으로 십승지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 십승지를 답사하고 십승지마을의 핵을 찾아내고 책으로 편찬한 바 있다.

유마는 흉년과 풍년을 알지 못하는 땅. 실제 난리가 날 때마다 피난민들이 몰렸다고 한다. 후천개벽의 꿈을 꾸던 동학교도들, 의병들, 기독교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인들이 유마지간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6·25전쟁 전후에 찾아든 비결파(예언서 ‘격암유록’을 쓴 남사고 선생의 신봉자)들이 찾았다. 1944년 유구 인구가 9300명인데 1955년 1만 5000명으로 5000여 명이 늘었다.

이중환도 <택리지(擇里志)>에서 유마(유구와 마곡) 땅을 극찬하고 있다. “골마다 물이 많으며 논이 기름지고, 목화, 기장, 조를 가꾸기 알맞아서 사대부와 평민이 여기에 한 번 살면 흉년과 풍년을 알지 못한다. 넉넉한 살림을 보전하여 떠돌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근심이 적으니 대게 낙토이다.”

또 택리지에 따르면 “산 모양은 반드시 수려한 돌로 된 봉우리라야 산이 수려하고 물 또한 맑다. 그리고 반드시 강이나 바다가 서로 모이는 곳에 터가 되어야 큰 힘이 있다. 이와 같은 곳이 나라 안에는 네 곳이 있다. 개성의 오관산(五冠山),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진잠(鎭岑)의 계룡산, 문화(文化)의 구월산(九月山)이다”라 했다.

공주 유구읍은 작은 농촌마을이지만 특별한 게 직물공장. 집집마다 직조기를 들여놓고 명주와 비단을 짰다고 한다. 현재도 30여 개의 직물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실크공장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자카드 직물과 색동천은 유구에서만 생산된다. 자카드 직물은 ‘무늬를 넣어 짠 천’을 말한다. 유구 섬유산업은 90년 중반 중국의 값싼 직물류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사양길에 접어든다.

충남 공주(公州)고을은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熊津,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 이후 538년 사비(泗?,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63년 동안 백제의 수도다. 금강 남쪽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 유산의 공산성이 있다. 금강이 둘러쳐진 아름답기 그지 않는 곳.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어우러져 예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공주의 명승으로 현대인의 마음을 힐링하는 곳으로 안성맞춤이다

웅진(공주)을 끼고 흐르는 금강(錦江)이 자연적인 방어선 역할을 한 웅진성으로 추정되는 공산성은 산성이라서 평지성보다 견고하면서도 금강이 수상 교통로 역할을 했다. 공산성은 백제 멸망 직후에도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金憲昌)의 난(헌강왕14년 822년)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李适)의 난(1623년)으로 인조(仁祖)가 피난했던 곳. 공산성은 원래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 차례 고친 것으로 지금의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아차산(峨嵯山) 전투에서 개로왕(蓋鹵王)이 전사하자 웅진(熊津)으로 천도해 웅진백제(熊津百濟)의 시대를 열게 된다.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남중국의 양, 일본열도의 왜(倭)와 긴밀한 외교로 반(反)고구려 전선을 구축했다. 26대 성왕은 금강을 따라 하류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인 사비(泗?, 현재의 부여)에 신도시로 천도해 사비백제시대를 펼쳐 나갔다.

고을연구전문가인 최 연 고을학교 교장의 공주고을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우선 주변 산과 강에 대한에 대한 설명이다. “공주고을은 중앙에는 금강(錦江)이 그 지류인 유구천, 정안천, 대교천 등의 하천들을 받아 안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그 부근에는 작은 들판이 흩어져 있고 북서쪽에는 태화산(泰華山, 416m)의 산군이, 남동쪽에는 계룡산(鷄龍山, 845m)의 산군(山群)이 이어져 있으며 금강 남쪽에는 공산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에 상악단(上嶽壇), 계룡산에 중악단, 지리산에 하악단을 세워 국가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태화산(泰華山, 416m)은 북쪽으로 활인봉이, 남쪽으로 나발봉이 솟아 있어 마곡사를 중심으로 둥그런 원을 그린 모양으로 산줄기가 이어져 있으며 예산고을로 가는 길목으로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계곡이 깊어 예로부터 도적들의 산채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산봉우리의 이름에서 활빈당의 근거지였던 자취를 일부나마 찾아볼 수 있다.”

공주의 하천에 대한 최 교장의 설명이다. “공주의 3대 하천은 유구천, 정안천, 대교천으로 모두 금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듭니다. 유구천(維鳩川)은 공주, 예산, 아산의 경계인 봉수산(鳳首山, 534m)에서 발원한 후 남서류(南西流)하여 금남정맥의 서쪽 사면의 물을 모아 남쪽으로 유구, 신풍, 사곡, 우성 일대를 적시고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사곡에서 마곡천(麻谷川)과 합류하는데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의 지역은 남사고(南師古)가 선정한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로 유명한 피난처다.”

금강과 공주의 유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금강에 대한 금강의 금(錦)은 ‘곰’의 사음(寫音)으로서 공주의 곰나루[熊津]라는 명칭에 남아 있으며 달리 호강(湖江)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당서(唐書)>에서는 웅진강(熊津江)이라고 기록했다. 곰나루의 본래 명칭은 고마나루인데 공주의 옛 지명인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로서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하며, 신라 시대 웅천주(熊川州),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 고마나루는 백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할 때 이용하였던 교통로였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와 주둔했던 곳이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했던 곳이다.

공주에서 빼놓을수 없는 곳이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마곡사란 유서 깊은 사찰이다. 예부터 호서(충청도)지방에서는 봄에는 마곡사의 경치가 으뜸이란 뜻으로 ‘춘마곡(春麻谷)’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충남권 70여 개 사찰의 조계종 대본산이기도 하다. 마곡사로 들어가기 위해서 돌다리를 건너며 듣는 마곡천 물소리는 일품이다. 김구 선생이 황해도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이곳에 은거했다. 그 당시 청년 김구가 심어놓은 향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있다. 그 만큼 공주 유마의 땅은 한양과 가까운 곳 중에서 은거하면서도 대를 이어 살 만한 곳으로 충분했다.

금강에서 바라본 공산성 일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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