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시절 내가 어릴 때 살던 내 고향 상주는 한옥 아니면 초가나 함석집이고 보릿고개가 있던 배고픈 시절로 별칭 ‘하꼬방’ 이라는 판잣집도 더러 있었다. 집터는 넓어 우물가에는 꽃과 채소도 심고 뒷마당에는 닭도 키우고 감나무가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내 고향 상주는 전국 최대의 감 고장이 되었나 보다.
상주는 감 수확철인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눈코 뜰세없이 매우 바쁘다. 감 수확철에는 시내 사람들이 안 다녀 뜸하다. 감 따러, 감 깍으러, 감 손질하러 감 농장에 다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감 70%가 상주 감을 먹고 유명세로 외국에 수출하여 세계적인 곶감으로 자리 잡아 상주홍보 대사 노릇 하는 효자 과일이다.
울다가도 곶감 준다면 뚝 거치는 어린아이의 기척에 호랑이도 무서워 도망간다는 일화가 있듯이, 과일이 귀한 옛날에는 생감, 단감, 홍시, 곶감으로 가을부터 봄까지 오랫동안 먹는다.
시골 외갓집에 어릴 때 자주 갔다. 산골이라서 그런지 동산 기슭이 온통 감나무와 밤나무밭이다. 외할머니가 주어온 홍시 끝내준다. 붉은 홍시도 먹고, 푸른 홍시도 덜 익었지만, 그 맛도 또한 일품이다. 반세기가 흘러도 나에게는 그때 그 시절이 짠하다.
저장 기간이 짧은 홍시는 곶감이 되어 장기간 먹을 수 있어 간식으로 딱 맞다. 너무 많이 먹으면 변비가 온다지만 설사나 탈진에는 홍시가 특효약이다. 무엇이든 과식을 하면 탈이 난다. 꿀맛이라도 적당히 먹자.
태어나고 자란 정든 고향 떠나 대구에 생활도 3년.! 이맘때면 내 고향 상주는 감 때문에 성당, 교회, 사찰에 미사나 예배 보는 신자 수가 줄어 썰렁하다고 한다. 감이 뭐 길래? 감을 먹기도 하지만, 돈도 되기에 상주의 감 귀한 존재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찬바람이 불면 곶감으로 변신할 홍시, 그 옛날 아늑한 시골에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따다 준 홍시 그 맛도 그립다. 홍시를 주면서 ‘잘 먹고 쑥쑥 자라라’는 외할머니가 그립다. 생존해 계시는 팔순 넘은 엄마에게 안부 전화하면서 그 옛날의 홍시 끝내준다고 하니까 ‘정이 넘치고 인심 좋은 그때가 좋았다’고 화답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