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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옛이야기들은 늘 의외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순(順)한 구성보다는 ‘강제로 수습된’ 구성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죽었던 심청이가 살아나고, 기생의 딸이 정경부인이 되기도 합니다. 서양 이야기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키르케의 마법(요정 키르케가 인간을 돼지로 만드는 이야기)’ 편과 함께 널리 알려진 인귀혼(人鬼婚) 이야기입니다. 인간 오디세우스가 불멸의 요정 칼립소와 나눈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다의 요정 칼립소는 티탄족 아틀라스의 딸이라고 전하기도 하고,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영원히 젊고 풍만한 육체를 지닌 그녀의 이름 칼립소는 ‘숨기는 여인’이란 뜻이다. 조국 이타카가 그리도 열렬히 기다리던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를 칼립소는 7년 동안 감쪽같이 세상으로부터 숨겨놓았다. 물론 그녀가 오디세우스를 숨기는 방식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칼립소는 난파해 자신의 섬으로 떠내려온 오디세우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 그리고 사랑을 주었다(아이도 낳았다). 그가 자신과 함께 살기로 결심만 한다면 영생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이 그리워진 오디세우스는 자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눈물로 뺨을 적셨다. 그것을 안 아테나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제우스가 칼립소에게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오디세우스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사랑했던 인간을 다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칼립소는 비운(悲運)의 여인입니다. 그녀가 사는 오기기아 섬은 새들 이외에는 찾아오는 이가 없던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그 외로운 섬에 멋진 한 사내가 나타나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녀에게 오디세우스는 외롭고 지루한 세계에 던져진 하나의 창조였고 개벽이었습니다. 그러나 7년이나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며 같이 지낸 이 남자는 끝내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영생(永生)도, 평생 늙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도, 위험 없는 안락한 삶도, 모두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신들도 그의 소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뗏목까지 만들어 태워서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의문이 듭니다. 오디세우스는 왜 그 아름다운 칼립소를 두고 적들이 우글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을까요? 홀로된 그의 아내 페넬로페는 강적들로부터 끊임없이 구애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고, 그들에게 발각되면 오디세우스는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었습니다. 집 떠난 지 20년, 그 사이 부부는 얼른 봐서는 서로를 몰라볼 정도로 폭삭 늙어버렸습니다. 청춘을 공유하지 못한 채 늙어버린 아내, 그리고 늙음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 오디세우스는 왜 이타카로 돌아갔을까요? 왜 칼립소와 함께했던 불멸의 삶은 버림받아야 했을까요? 순순히는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강제로 수습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20년간 헤어져 있던 늙은 아내를 다시 찾아가는 이유, 젊고 아름답고 능력자인 현재의 파트너(둘 사이에는 자식도 있습니다)를 버려야만 했던 이유는 딱 한 가지뿐입니다. 인간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칼립소는 영생의 동반자이기에 그녀와는 함께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언제나 꿈 안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환상이고 하나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달콤해도 변화도 위험도 없는 삶은 어디서나 가짜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언제나 적들이 우글거리는, 늙은 아내가 있는, 진짜 고향,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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