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폐족론이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친박 폐족론’이다. 친박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이 2004년 3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로 선출되면서 태동했다. 박 대표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썼던 때 ‘천막당사’를 열어 위기를 돌파했다. 이른바 ‘원조 친박’은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전여옥 전의원 등이다. 이들은 각각 사무총장과 대표비서실장, 대변인으로 박근혜 당 대표를 도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박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반(半)나라당’이라 불릴 정도로 친 이명박과 친 박근혜계로 극명하게 갈렸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당직을 받은 의원과 영남권 의원들이 친박 텐트 안으로 몰렸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박근혜 후보가 패배하며 친박은 큰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친이와 분리돼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릴 정도였다.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친박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서청원·최경환·윤상현의원, 이정현 대표 등과 김기춘 전 실장 등이 부상했다. 하지만 지난 4·13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진보 정당에게 1당의 자리를 내주며 참패했다. 당 대표를 ‘죽여버려라’라 막말을 할 정도로 기고만장했던 친박에 선거 패배의 큰 책임이 있었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대 형성됐던 ‘친박’은 ‘최순실 게이트’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뺏긴 뒤 스스로 ‘폐족’이라 자인했던 친노(친노무현)처럼 ’친박’이‘폐족’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