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시행된 지 1개월이 훌쩍 지났다. 얼마 전 일명 ‘김영란법’ 위반 1호 재판 사례가 주요 기사로 다뤄졌다. 안타깝게도 그 1호가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이었다는 점이다. 민간인 A씨 는 경찰이 자신의 개인 사정을 고려해 조사 시간을 조정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떡 4만5천 원어치를 그 경찰에게 보냈다. 경찰은 떡을 받은 사실을 신고해 김영란법 위반 혐의를 면했지만 A씨 는 같은 법 위반 혐의로 과태료 부과를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400만 명 공직자뿐 만 아니라 전 국민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 한다.

올해 하반기 세간에 나도는 최대 화두 중의 하나는 전 국민에게 분통과 허탈감을 넘어 공분을 안겨준 ‘최순실’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게 아마 김영란법이었을 게다. 어찌 보면 모든 국민에게 실제 피부에 와 닿으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법이다. 투명하고 부정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 법의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일부 조항이기는 하지만 ‘오-버’ 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교육 후 ‘서약서’까지 써야 한다는 강제조항 때문이다.

법 시행 며칠이 지나지 않아 대구시청에서 근무하는 어느 사무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란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전제를 한 그 간부 공무원은 그러나 교육 후 ‘서약서’까지 꼭 받아야 하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권익위원회를 평가 절하 하거나 폄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그는 김영란법의 여파가 크고,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좋다고 했다. 그러나 서약까지 하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민을 무시하고 권위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냐고 항변했다. 법이 만들어져 시행되면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며, 만일 법을 준수하지 못했을 경우 처벌을 받는 것 아니냐. 수백만 명에 이르는 김영란 법 적용 대상자에게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권익을 위해 출범한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청탁금지법 준수 서약서에 자필로 서명해 제출하는 건 적용 대상 기관들의 공통 의무 사항이다. 이 법 제19조 1항에 ‘공공 기관의 장은…-정기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이를 준수할 것을 서약하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라고 돼 있다. 권고가 아닌 의무다. 이 때문에 법 시행 전부터 모든 공공기관이 청렴 교육과 함께 직원들에게 서약서를 받았다. 언론사 등 법 적용을 받는 민간 법인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업에서도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과 만남이 잦은 홍보업무 담당자도 서약해야 한다. 물론 서약서 자체가 법적 효력을 갖는 건 아니다. 다만 서약서를 받지 않은 기관의 직원이 법을 위반했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관이 감독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어서다.

이런 서약서 제출 의무화 규정이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서약서 제출과 관련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진정서 몇 건이 국가 인권 위원회에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무슨 반성문을 쓰고 서명을 해야만 하는 듯한, 뭔가 개운찮다. 아직 헷갈리고 모호한 것이 김영란법. 자필 서약서도 유감이다.



박무환 대구취재본부장
박무환 기자 pmang@kyongbuk.com

대구취재본부장. 대구시청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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