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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위기에 처했다고 여러 번 진단 받은 우리나라가 암초까지 만난 듯하다.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없고 용총도 걷고 키도 빠지고 안개 섞여 잦아진 날에 사면이 검어 어둑 저문 천지, 수적(水賊) 만난 도사공’이란 옛시조가 그려내는 애달픈 사정이 연상되는 우리의 처지다. 이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러 되었나? 연일 이어지는 촛불시위와 시국선언. 그 초점은 대통령 하야로 모아지는 것 같다. 한국대표산업의 연패소식과 경기침체, 수출둔화와 실업률증가로 대변되는 경제위기 속에, 이를 조정하고 극복할 정부의 부재 사태는 노도 닻도 잃은 배와 같다. 국정은 마비상태인데, 방송들은 서로 질세라 이번 사태의 이면을 파헤치고 또 파헤친다. 게다가 검찰이 심상찮다. 청와대의 고위직이나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이들, 누구도 책임을 전담하지 않고 대통령 지시라고 한다. 검찰의 칼끝은 대통령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마 곧 찌를 것 같다.

민주주의국가에서 대통령도 법 앞에는 평등하다. 그러나 그 지위와 책임이 막중하므로 거의 모든 나라가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에 대한 법학계의 견해는 다양한데, 수사는 가능하다는 입장과 불가능하다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죄가 면제된다는 취지는 아니므로, 대통령이 어떤 범죄를 범하였을 때는 우선 그를 탄핵하고 그 후에 형사상의 소추를 할 수 있다. 현재 예상되는 범죄는 뇌물과 공무집행방해, 공무상기밀누설 등인데, 이것이 모두 인정되더라도 형사소추 즉, 기소나 기소를 위한 전제인 압수·수색 등은 할 수 없다. 다만 빗발치는 비난의 여론 속에 직무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가 문제가 된다. 국회는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헌법 제65조 1항).

작금에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은 크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에 있고 어쨌든 두 번 사과했으며, 국회에 총리 지명권까지 양보했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에 의하여 보장된다. 따라서 국민 모두 냉정을 되찾고 법적 절차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내란이나 외환의 죄가 아니므로 형사소추는 못 한다. 대통령의 직무집행이 국가에 유해하다는 여론이 높으면, 국회가 탄핵하면 된다. 5일 대구의 어느 여고생이 시국연설을 했다. 이것을 야권이 자랑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참담히 생각하고 자신들도 은인자중해야 한다. 이 기회에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대선까지 몰고 가려는 의도는 아예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여권까지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자세다. 그동안 국정은 거의 국회가 좌지우지해왔고 청와대나 정부는 사실상 힘이 없었다. 정치인 모두 정치의 길이 무엇이냐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은 나라를 그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헌법질서 아래서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지도층들이 성난 민심을 수습하고 이 정도 선에서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앞장서야 출구가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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