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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망한 나라의 역사에는 반드시 역사의 치죄(治罪)를 받는 간신, 악인들이 등장합니다. 중국 진(秦)나라의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도 그런 ‘역사의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최측근들이었습니다. 진시황이 한나라 공자 출신인 법가(法家) 한비자를 기용해서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려 하자 이사는 동문수학한 그를 모략으로 죽게 만듭니다. 초나라의 평민 출신으로 승상의 자리까지 오른 이사는 환관 조고와 공모해서 황제의 자리마저 유린합니다. 태자 부소(扶蘇)가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권력에서 소외될 것을 염려한 그들은 부소의 동생 호해(胡亥)와 작당해 진시황의 가짜 조서를 만듭니다. 진시황의 죽음을 숨긴 채였습니다. 그들이 변방에 가 있던 태자 부소에게 조작해 보낸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난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는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화옥으로 국본을 삼았노라. 그러므로 누구나 여기에 위배되면 그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 부소는 나라를 위하여 공훈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광패한 글을 올려 함부로 군부(君父)를 비방하였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부자간의 정의로 보아서는 안 되었다만 나라의 법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해로 태자를 책봉하고, 너에게는 독주와 단검을 내리노니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여 자결하도록 하라. 그리고 장군 몽염(蒙恬)은 대군을 거느리고 외방에 있으면서 지엄한 국법을 문란시킨 죄가 있어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나, 아직 장성을 구축하는 대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대로 유임시키는 바이니 조서대로 시행할지어다. [김길형 편저, 『本 초한지』 참조]

조정을 혁신할 방안을 제시한 것을 ‘군부(君父)를 비방’하였다고 몰아세우고 자결을 명합니다. 용장 몽염과 수십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던 부소는 부왕의 명령을 거역치 못하고 자결합니다. 군부 진시황은 이미 죽은 뒤였고 이사와 조고가 궁중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때였기 때문에 적장자 부소가 의심을 품고 군사를 일으켰다면 승산이 훨씬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재목이 아니었던지 부소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부소의 자결, 몽염의 숙청을 이루어낸 이사와 조고는 잠시 제왕적 권세를 나누어가지고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조고는 이사를 모함해 그가 한비자를 죽인 방식 그대로 그를 죽입니다. 이사가 한비자를 죽인 방식은 그로 하여금 자포자기, 좌절에 이르게 해서 스스로 자기 죄를 자인케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끝내 역모의 죄를 자복한 이사는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베어지는 형벌에 처해집니다. 이사를 제거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 조고는 공포정치로 천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합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그때의 일입니다. 왕 앞에서 조고가 사슴을 가리키며 “말입니다”라고 하면 다른 신하들 모두가 그렇다고 화답했습니다. 이세(二世) 황제 호해는 그런 조고의 위세와 횡포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조고의 힘이 자기를 황제의 자리에 있도록 한다고 세뇌를 당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소불위의 전횡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늘(민심)의 추인을 받지 못한 권력이었기에 이내 버림받습니다. 복심(腹心)이라 여겼던 자들의 배신이 속출합니다. 조고는 결국 자신이 키운 자가 보낸 자객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리고 진나라도 파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반복되는 역사는 불행이라는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이사와 조고, 그들이 오늘 아침 TV 앞에 앉은 제 마음을 참 심란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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