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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한 변호사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국민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헌정 중단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맞선다. 대통령이 사퇴하면 헌정이 중단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헌법 이론에서 말하는 ‘헌정 중단’은 물리력 등에 의하여 기존의 헌법 질서와 체제가 가동되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군인들이 기존 헌법기구들의 기능을 강제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 상태다. 최순실 등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의 실상이 여러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로써 제18대 대통령 취임 이후 최근까지의 우리 국가가 다름 아닌 바로 헌정 중단의 상태였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헌정을 중단시킨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도리어 헌정 중단을 걱정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국민이 바라는 것은 유린된 헌정 질서의 회복이다.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으로 중단되었던 민주 헌정을 다시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 추천 후보를 국무총리로 임명하여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는 것’은 원래 우리 헌법에 있는 내용이다. 다만, ‘대통령의 명을 받아’그렇게 하라는 것이 헌법 제86조 제2항이다. 따라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지 않고 내각을 통할하면 헌법위반이다. 태블릿PC 통치가 위헌이듯이 이것도 위헌이다. 만에 하나 야당이 국민의 뜻을 거슬러 대통령의 이 제안을 받는다고 하여도(이것은 명백한 위헌이기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리하여 일시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에 의한 통치가 시작은 될 수 있다고 하여도, 대통령은 언제든지 국무총리에게 “오늘 오후부터는 헌법 규정에 따라 내가 다시 행정부의 수반 역할로 복귀하겠어요”라고 할 수 있고, 이 경우 누구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하야를 거부하며 내놓은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때 가서 우리 국민이 또다시 광화문 광장에 모여야 한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양보했다고 평가하는 언론도 있으나, 대통령은 “실질적”이라는 용어만 사용하였을 뿐이고 새로운 총리가 자기의 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물론 이것이 위헌임에 변함이 없지만). 대통령이 이처럼 한사코 하야를 거부한다면 합헌적이고 최종적인 대응은 탄핵뿐이다. 탄핵 절차는 시일이 많이 소요된다. 소추가 된다 해도 헌재의 결정까지는 2개월 이상(노 대통령의 경우 2개월 2일 소요)이 예상된다. 헌재 재판관들의 구성을 보면, 탄핵이 기각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평가다. 그러면 나라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대통령의 자발적인 하야를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대통령의 하야는 한때나마 그를 지지했던 국민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의무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대통령에게 임기만료까지 헌법상의 권한을 계속 수행하도록 용인하여도 좋은가’로 귀결된다.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김영삼 정권이 임기 2개월을 남긴 시점에 찍었던 6%라는 저점을 갱신하여 5%에 이르고 말았다. 해당 여론 조사의 표본오차(±3.1)를 감안하면 5%는 수(數)로서의 의미조차 없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 집회를 4·19.혁명과 6·10.항쟁에 비유하는 언론들이 다수 있다. 야당도 국민의 ‘하야 민심’에 동참해야 한다. 당리당략 따위를 계산한 종이가 있다면 구겨서 밑씻개로나 쓰자. 생사를 다투는 대한민국이라는 환자에게 남겨진 골든타임을 더 허비하여서는 안 된다. 참담하게 찢긴 우리 국민 가슴의 상처도 하루 속히 치유되어야 한다. 지금, 신속한 민주 헌정질서 회복보다 앞세울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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