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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 (주) 컬처팩토리 대표이사
한국공연계가 불황이다.

지난 11월 1일 막을 올려 내년 1월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영화‘록키’를 소재로 한 국내 초연 뮤지컬 ‘록키’가 공연 하루를 앞두고 티켓 판매 부진으로 결국 취소되었다. 필자도 30년 가까이 다양한 분야의 공연연출가로 활동해 왔지만, 불황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새로운 장르의 스펙타클한 연극 한 편이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순항 중이다. 시청률 20%를 넘는 막장드라마보다, 웰 메이드 플레이(Well Made Play)보다 뛰어난 초유의 신종 연극(演劇)이 공연 중이기 때문이다.

연극의 극(劇)자는 호랑이(虎)와 돼지(豚)가 칼(刀)을 들고 싸우는, 그래서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것이 벌어지는 것을 뜻하는 데 한 달 전까지 만 해도 최순실 극본, 연출, 주연의 이 연극의 현실성과 보편성, 게다가 출연진도 대통령부터, 수석, 장관, 비서관, CF감독, 호스트바 마담까지 호화찬란한 배우진과 호랑이와 돼지가 칼을 들고 싸우는 상상 같은 연극이 실제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세기의 연극은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인 유명 작품 반열에도 올라 해외 언론에서도 연일 대서특필 중이다.

이 작품은 ‘문화융성(文化隆盛)’이라는 서브타이틀(Sub-Title)하에 다양한 전보문(電報文) 대사들을 무대 위에 쏟아 낸다. 비선실세, 테블릿피시, 연설문, 시나리오, 늘품체조, 탈당, 거국중립내각, 포토라인, 특검, 촛불, 미르, K스포츠, 사퇴, 압수수색, 대포폰, 청와대, 수석비서관, 문체부, 전경련, 국정농단, 문고리, 탄핵, 하야, 지지율, 뉴스특보, 국정농단, 곰탕, 프라다, 승마, 말, 코너링, 황제조사 등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의 38편의 전 작품을 통 털어도 나올까 말까 할 대사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표절해 온 듯한 지겹고 짜증이 나는 대사도 있다. ‘검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릅니다’ 등 진부(陳腐)한 대사가 관객을 실망시키지도 하지만 이 연극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해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

세익스피어가 환생하더라도 다음 스토리는 물론 어떤 새로운 인물, 상황을 예견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찬 글쓰기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극장은 텅 빌 것이다. 어떤 연극이 ‘우주의 기운과 혼’이 가득한 이 연극의 역동성과 깊이, 반전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현존하는 최고의 연극인 영국 국립극단의 연극 ‘전마(戰馬)’도 이 신종 연극을 이길 방법은 없다.

동독 출신의 세계적인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부정, 부패 때문에 혼자만 살자고 자기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총독 부인이 다시 돌아와 자리를 되찾기 위해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아이를 잘 돌봐준 하녀 ‘그루쉐’와 백묵(白墨)으로 그린 동그라미에 아이를 두고 양팔을 끌어당기는 재판 장면으로 유명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는 연극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은 그 말을 제일 잘 키울 수 있는 마부에게, 땅은 그 땅을 비옥하게 가꿀 수 있는 농부에게, 아이는 그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지금부터라도 연극은 연극인에게 맡기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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