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중종 때 송익필은 당대의 8대 문장가로 이름난 예학의 대가였다. 대제학을 지낸 김장생의 스승으로도 유명했으나 아버지의 배신 업보 때문에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 송익필은 태어날 때부터 배덕자의 아들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고 태어났다. “그 사람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바로 신사년 간신들에게 붙어서 충신들을 모함, 죽게 한 바로 송사련의 아들이야” 하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송사련은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 선비들을 숙청한 남곤, 심정에게 조광조의 편을 들었던 안당을 모함, 안당과 그의 세 아들 등 선비들을 몰죽음 시킨 ‘신사무옥(辛巳誣獄)’의 장본인이었다. 안당의 아들 안처겸이 문상 온 조문객들과 임금의 성총을 흐리는 남곤, 심정 등 간신배들의 제거를 논의했다고 밀고했던 것이다. 밀고한 송사련은 그 공으로 안씨 집안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고 공신으로 책봉됐다.

송사련을 낳은 어머니 감정은 안당의 아버지 안돈후와 그의 비첩(婢妾) 중금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감정은 평민인 송린과 결혼, 송사련을 낳았다. 안당은 이복형제 사이 같은 송사련을 후하게 대했다.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던 시대에 송사련의 신분을 풀어주고 벼슬까지 알선해 주었다. 하지만 송사련은 안당의 후의를 배은망덕으로 갚았다. 결국 안당 일가는 송사련의 밀고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후에 부관참시 당한 송사련의 배은망덕 업보는 아들 송익필에게도 이어졌다. 천재로 소문난 송익필은 과거에도 합격했지만 배신자의 아들이란 이유로 합격이 취소됐다. 송익필은 세상을 등지고 파주 삼학산에 은거해 예학에 몰입했지만 사회의 냉대는 계속됐다. 평생을 도망자 신세처럼 전전하다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최순실 사태에 물고기를 잡고 나면 고기를 잡게 한 통발을 잊어버리는‘득어망전(得魚忘筌)’의 배신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안종범 등 대통령의 충복들이 ‘검찰 수사’에서 “모든 것은 대통령 지시”라고 진술, 모든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 떠넘겼다. 충복들의 배신에 상심이 크겠지만 국민을 배신한 박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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