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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위대했던 쪽은 국민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표현처럼 평소엔 바람보다 먼저 누울 정도로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이지만 필요할 땐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고난에 맞서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란에 지도자가 나라를 버렸을 때도 나라를 지킨 이들이 국민이었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 나라를 바로 세운 이들도 국민이었다.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의 광장에서는 100만의 촛불이 활활 타올랐다.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철학은 고사하고 영혼마저 없어 보이는 소위 친박이라 자부했던 정치세력의 부역 또한 책임이 크다. 그런가 하면 직무상 이미 알고 있었을 법도 한 사정기관들의 태도도 오히려 사태를 더 키운 측면이 없지 않다.

향후 정국 흐름에 대한 몇 가지 상황들이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의 즉각 하야와 질서 있는 하야, 탄핵과 현상유지 등 크게 네 가지 상황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중 질서 있는 하야가 바람직하겠지만, 현재의 청와대 움직임으로 봤을 때는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탄핵절차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민심에 그대로 부응할 수 있는 방안은 탄핵이 유일하다. 탄핵은 또한 헌법 가치에도 부합한다. 부패한 권력은 반드시 탄핵되어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혹자들은 국회와 헌재 결정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지만, 그것은 기우이다. 민심을 떠난 권력은 누구도 지켜주지 못함을 역사는 말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은 물론 이에 부역한 친박세력 역시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한다. 다행히도 여야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법’에 합의했다. 폭발적인 민심에 떠밀린 듯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인상을 지울 순 없지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성 정치권의 무능과 비양심적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 역시 이번 촛불민심에서 확연히 드러난 지금, 새누리당은 당연히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발전적 해체만이 이 땅의 건전한 보수를 다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야당들이 보여주는 작금의 행태 또한 국민이 보기에도 볼썽사납다. 특히 거대 민심과는 지극히 동떨어진 생뚱맞고 돌발적인 영수회담 제안과 취소 등 제1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책임 그 자체다. 진정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당파적 이익과 논리에 따라 좌고우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얼마 전 끝난 미국 대선 결과 역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단아 트럼프의 승리가 아닌 기성 엘리트 정치인 힐러리의 패배라는 시각이 더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사태가 일어난 배경과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 그리고 책임규명과 관련자 처벌, 나아가 제도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민심에 부응해 나간다면 분명히 국가발전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수많은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찾아낸 희망의 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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