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한잔'

중년이라는 이유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지만 기댈 수 없고 기댈 여유조차 없었다. 이 나이에는 다 그런 거라고 웃어넘기지만 삶은 늘 팍팍하다. 청춘이 아프다고 다들 목소리 높일 때 먹고살기 위해 버텨야 했고, 오늘도 한잔으로 쓰린 날들을 위로한다. 뒤에 머물러 있지만 가장 절실하고, 우직하지만 가장 뜨거운 그들. 흔들리지만 그래도 꿈꿔야 하고 뜨겁게 박수 받아야 할 중년들. 에세이 ‘흔들릴 때마다 한잔’(이정일 /도서출판이다)은 그들을 이야기한다.

“회사에서는 나이 먹었다고 눈칫밥이지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강아지만 반겨.”

“다들 회사 임원이라고 나를 부러워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게 이 자리야.”“자식들은 나를 돈 벌어오는 기계로만 취급해.”

“그래도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내가 아니면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겠어.”

그들은 외롭다. 꼰대라는 말을 듣기 싫지만 팍팍한 세상을 버티는 동안 저도 모르게 꼰대가 되고, 철부지라는 말을 듣기에는 너무나 먼 그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매일 생존 앞에 내몰린다. 이제 여유롭게 살 나이라고 말들 하지만 버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흔들리는 그들이다. 그때마다 술 한 잔에 기대어 자신을 위로한다. 취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고, 버텨야만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나이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흔들릴 때마다 한잔이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문득 돌아보니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이제는 서서히 은퇴를 걱정해야 할 시기. 젊었을 적 호기는 무뎌진 지 오래다.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할라치면‘ 노땅’이라는 따가운 시선이 뒷덜미를 덮치고, 집에서 가족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지르려면 왕따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현실이 서러워 또 다시 울컥.”

그들은 ‘외로운 섬’들이다. 늘 새벽 일찍 출근해 새벽 일찍 퇴근하는 일상이고, 그럴수록 가족은 점점 멀어져 간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서면 그래도 주인이랍시고 꼬리를 흔들어주는 강아지가 눈물겹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요, 남편이요, 가장이지만, 바깥에서는 눈칫밥에 익숙한 직장인일 뿐이다. 아시아경제신문 산업부 부장인 이정일의 에세이 ‘흔들릴 때마다 한잔’은 다들 아픈 청춘을 말할 때 혼자 속으로 우는 중년들을 말한다.

‘흔들릴 때마다 한잔’을 쓴 저자 역시 중년이다. 남들에게는 명함 좋은 경제신문 기자지만 그 역시 매일 버텨내는 삶은 고단하다. 더구나 그의 일은 늘 한밤에 퇴근해 새벽에 출근하는 연속이다. 그러는 틈틈이 아시아경제신문 칼럼 ‘초동여담’에 중년의 자신을, 자신처럼 중년을 버텨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초동여담’에 실린 그의 칼럼들 중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은 글들과 칼럼에 미처 실지 못한 글들을 엮었다.

이 책은 위트 있지만 속내는 따뜻하고, 거친 듯하지만 진솔하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중년의 아픈 속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중년이라는 이유로 말하지 못했던 속앓이를 들추고,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대고 싶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그것은 저자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년이기 때문에 부대껴야 하고, 그래도 아직은 청춘이기에 이겨내야 하는.

젊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문득 멈춰서 돌아보니 어느새 중년. 젊은 시절과, 한때의 꿈과, 앳된 희망들이 빛바랜 추억으로 남았다. 인생에서 기적과 축복이 조금씩 사라지고 회환과 한숨이 나날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반환점에 서 있는 자신과 만난다. 한창때는 미래가, 세상이, 사회가 두렵지 않았지만 그런 기백이 무뎌진 지도 오래. 이제는 이를 악물어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

새벽같이 출근해 거친 세상과 맞서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야 겨우 한숨을 내쉰다. 틱틱 대는 자식이 서운하다가도 잠든 얼굴에서 낙원을 찾는 그들은, 늙어가는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애틋한 자식으로 남아야 하는 그들은, 이 시대의 중년이다.

이 책은 말한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덧 생애의 한복판. 어려서 꿈에 취하더니 나이 들어 현실에 목매지만, 중년의 고단한 삶에 휘청대기 일쑤지만, 아무리 흔들려도 마땅히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한다고 다독인다. 흔들려도 기어이 꿈꿔야 할 중년이고, 아직 내일을 사랑할 청춘이라고.

지난날을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고, 맹렬하게 살아야 할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매일매일 꿈꾸면서 나를,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과거의 내 청춘을 위해, 지금의 내 삶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것이 중년의 삶이다. 오늘도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품어야 할 이들과 함께 꿈꿔야 할 삶이 있기에. 설령 내일 또다시 흔들리더라도. 그래서 중년은 오늘도 흔들릴 때마다 한잔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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