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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지난주 화요일 더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하였다. 앵커의 질문에 그는 ‘대통령은 외치(外治)만 하고 국무총리에게 내치(內治)를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기가 막혔다. 이미 세계 각국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였다. 자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진짜냐고 물어대는 현지인들의 질문 공세로 인하여 해외 교민들이 낯을 들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상호 원내대표만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더러 외치(外治)만 하라니? 해외 정상 중 누가 지금의 우리 대통령과 어떤 식의 대화에 나서겠는가. 지난 주말 100만 이상의 국민이 광장으로 나와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국민의 함성 소리가 청와대에서도 들렸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갑자기 청와대에 ‘2인 회담’을 제안하였고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즉각 수락하였다. 더민주당은 바로 그날 오후에 약 6시간의 의원총회를 거쳐 추미애 대표의 제안을 철회하기로 하였고 이에 결국 ‘2인 회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추미애 대표가 국민에게 준 실망감은 더민주당 전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게 되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문재인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즉각 퇴진을 주장하였다. 그는 초기부터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던 다른 야당으로부터 ‘정략적 판단에서 애매한 표현만 하고 있다’는 집중적인 비판을 받아 오던 중이었기에, 위 기자회견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그 용어 선택이나 태도의 단호함에 있어서는 국민의 마음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19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군대로 끌려가던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아래에서 결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대통령 직접 선거의 결과는 광주 학살 책임자(및 12·12, 군사반란자) 일당 중 또 다른 한 명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당시 우리 학생들은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대통령을 바꾸려고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 아니었다. 당시 넥타이부대들은 전두환을 타도(당시에는 즐겨 쓰던 용어이지만 지금 들으니 좀 살벌하기는 하다)하고 난 후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위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변호인을 선임하며 조사를 미루고 있는 대통령은 지금의 상황을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1야당은 이제껏 좌고우면(左顧右眄)만 하고 있었다. 더민주당도 하루속히 지금 상황을 “우리 국가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생각하고 달려들어야 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선거로 만에 하나 정권을 잡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따위는 당장 접어 두라. 더민주당이 초기부터 다른 야당과 단일한 목소리로 일관되게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국민의 의사를 결집해 나갔다면 지금쯤 대통령 하야가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다음 주 월요일 정도로 시한을 정하여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그 시한이 지나면 1주일 이내에 국회에서 탄핵소추의결을 하겠다, 이후 국민이 매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합헌적 의사를 전달하면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에 탄핵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는 식의 분명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야당에게 필요한 것은 소명의식이다.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정권 교체는 자연히 따라오게 될 것이지만 당리당략만 따지고 계속 머뭇거리기만 한다면 29년 전 쓰라린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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