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해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김제정 작.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가슴에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거야. 며칠 전 여행을 가자던 할머니의 말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자다가 깨어나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채 끝맺지 못한 그 말은 불쑥불쑥 살아나 그물에 걸린 참치떼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정말로 어디선가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이십대 초반부터 바다를 떠돌았다는 아버지가 쿠로마구로를 운운할 때마다 나는 구루마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수십 대의 구루마가 굴러서 우르르 몰려오는 상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구루마는 발동기를 단 작은 배의 통통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고 쉴 사이 없이 두드리는 작은북의 울림을 만들기도 했다. 바퀴가 두 개뿐인 구루마는 날렵한 물고기 같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길거리에 좌판을 벌이고 생선이나 조개 같은 해산물을 팔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해산물을 팔고 있는 동안 생선 상자를 구루마에 실어오기도 했고 생선 배달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구루마는 사람들 사이를 민첩하게 헤집고 다녔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통에서 구루마는 수초를 피해 다니는 물고기처럼 날렵하고 민첩하게 퍼덕댔다.

쿠로마구로는 흔히 참치라고 알려져 있는 참다랑어 종을 일컫는 일본말이라고 했다. 그것을 알고 나서도 쿠로마구로는 여전히 구루마처럼 여겨졌다. 지나가는 차들이 쏟아내는 불빛과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창문을 넘어 자고 있던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다른 쪽 눈을 치켜떴다. 시곗바늘은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미간에 힘을 주었다. 누구일 리가 없었다. 또 가위에 눌린 건가, 생각하며 옆을 돌아다보았다. 할머니와 엄마가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그러니 누가 와서 이 자리에 서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나는 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들려고 애썼다. 몸을 뒤척이다가 남자와 문득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군청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는데 옷 색깔 때문인지 입술마저 새파랬다.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세요? 작은 몸피에 등이 둥글게 굽은 남자는 오십은 넘어 보였다.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아니었는데 낯설지도 않았다. 뭔가 아주 익숙한 느낌이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왔다. 가위에 눌린 것이라 하더라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잠깐 앉으실래요?”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말을 걸어준 것이 반갑기라도 한 듯 굳은 얼굴을 조금 폈다. 그리고 입을 뗐다.

몹시 춥구나.

남자는 정말이지 추워보였다. 새파란 입술과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몸, 어디서 비라도 맞은 것처럼 머리칼은 물기가 맺혀 축축했다. 말을 하는 남자의 입에서는 놀랍도록 찬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나가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할머니와 엄마는 번갈아가며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남자를 따라 나오라고 해야 할지 그대로 방에 있으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켰다. 무슨 차를 마실 거냐고 물어보려고 몸을 돌리다가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났다.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남자가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유자차가 있는데 어떠세요?

나는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물었고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주전자를 보고 있으려니 아직까지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남자는 식탁 앞에 서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팔자 주름이 선명해서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나와 식탁을 번갈아 둘러보고 나더니 입을 열었다.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부드러웠다. 입에서는 찬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도 어투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았는데 식탁 의자에 앉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나를 조용히 살폈다. 아무런 그림이 그려있지 않은 밋밋한 모양의 머그 컵에 유자차를 덜었다. 자다가 일어난 나는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 혼자만 멀뚱하게 차를 마시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붉은 꽃잎이 엉성하게 엉겨 붙어 있는 머그컵 하나를 더 꺼내 유자차를 덜었다. 시고 향긋한 유자청의 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뜨거운 물을 붓고 저었다. 남자에게 맨송맨송한 모양의 머그컵을 내밀었다.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 찻잔으로 마시고 싶구나.

남자가 검지를 들어 꽃잎이 그려진 찻잔을 가리켰다. 나는 앞에 놓여 있던 머그컵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남자 앞으로 내밀었던 머그컵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초등학생 때 도자기 체험 학습을 가서 만든 컵이에요. 그래서 좀 엉망이에요.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밑바닥에 내 이름까지 적혀 있는 컵은 조잡해 보였지만 엄마는 버리지 않고 아직까지도 내 컵으로 내놓고는 했다.

그런 것 같구나.

남자는 컵의 엉겨있는 꽃잎에 눈을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동의하는 것이 ‘내가 직접 만든 컵’이라는 말에서인지 ‘그래서 그림이 엉망’이라는 말에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차를 마시지 않고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부터 궁금했던 물음을 던졌다.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으나 조심스럽기도 했다. 나는 무례해 보이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췄고 말꼬리를 슬쩍 눙쳤다.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혹시, 저를 아세요?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띤 채로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어떠한 내색도 없이 그저 물끄러미 내 쪽을 건너다보았다. 경계심 같은 것은 처음부터 일지 않았지만 왠지 편안하게까지 느껴졌다. 덥수룩한 머리칼이며 까만 피부색이 남자를 촌스러운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아래로 처진 눈꼬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절대 해害 같은 것은 끼쳐본 적이 없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했다. “딱 한 번. 그 한 번만 빼고는 누구한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었지.” 그런 말을 할 때의 엄마의 광대는 조금 실룩거렸고 입꼬리는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했는데 무언가를 자랑스러워 할 때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암, 누구한테도 해를 끼친 적이 없고말고.” 엄마가 생각에 잠기듯 스르르 눈을 감으면 할머니가 냉큼 끼어들어 엄마 말을 거들었다. “내 아들인께 나가 더 잘 알고말고.”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끼어들어서 그렇게 으스대곤 했던 것이었다. “딱, 참말로 딱, 한 번만 빼면 말이여.” 할머니는 엄마의 얼굴을 흘깃 넘겨다보며 딱, 한 번이라고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엄마와 할머니의 그런 말 때문인지 나는 그를 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남자가 내 기억 속의 아버지나 사진 속의 아버지와 똑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얼굴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 않던가.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고개를 숙였는데 군데군데 섞인 흰 머리카락이 불빛에 희끗희끗했다. 남자의 머리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멸치볶음처럼 보였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남자의 잔을 넘겨다보았다. 벌써 식어버린 것인지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을 더 부어 드릴까요?

나는 가시지 않는 웃음을 삼키느라 입을 삐죽거리며 남자에게 물었다. 내 잔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펄펄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잔이 먼저 식을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세상 일이 자로 잰 듯 딱딱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엄마는 늘 말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일이 그렇다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일은 아직까지도 맞추지 못한 퍼즐의 한 조각이라고. 어디에 끼워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퍼즐 조각이 아니라 다른 그림판에서 떼어온, 비슷한 모양의 퍼즐 조각을 들고 있는 것처럼, 절대 맞을 리가 없는 한 조각의 퍼즐이라고. 쿠로마구로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라는 아버지의 말이 내게는 손에 들고 있는 한 조각의 퍼즐이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이유가 그 말 속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어떻게 해도 맞춰지지가 않았다.

나는 주전자 물을 다시 남자의 찻잔에 부었다. 김이 다시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상가 건물에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어둠에 잠긴 적이 없었다. 나는 부엌 불을 켜지 않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가로등이 부엌 창 언저리에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웬만한 것들은 흐릿하게나마 다 보였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불빛이 한꺼번에 남자의 얼굴로 쏟아졌다. 남자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조명을 받고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빛에 익숙해지지가 않네.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는데 그런 모습들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나는 남자에게 물었고 남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라……, 하고는 내 말을 한참이나 곱씹었다. 내 질문에 서운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몰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향이 참 좋다.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남자는 화제를 바꾸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남자의 말이 아리송하기만 했다. 유자 향을 오랜만에 맡아본다는 말 같기도 했고 우리 집에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말 같기도 했지만, 후자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외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보내온 거예요.

외할머니는 해마다 유자차를 만들어 박스 째 보내왔다. 외삼촌을 따라 도시로 나갔던 외할머니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우리가 살았던 남해의 그 바닷가 마을로 돌아왔는데 공교롭게도 외할머니와 우리는 집을 번갈아 쓴 셈이 되었다. 남쪽의 따뜻한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서인지 그곳의 유자 향이 다른 곳보다 진하고 좋다는 말을 외할머니는 빼먹지 않았다. “사방천지가 유자 밭 아이가. 느그도 알제. 요는 유자가 천지 빼까리다. 딴 거는 몬 보태줘도 유자는 느그 묵을 만치는 줄 수 안 있겄나.” 그런 것까지 보낼 필요 없다는 엄마의 말에 외할머니는 그렇게 대꾸하며 유자차를 보냈을 것이었다. 엄마 옆에 앉은 할머니는 엄마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리고 엄마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대뜸, 어른이 해서 준다고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경우가 아니라고 엄마에게 눈을 흘겼다.

남자가 머그잔에 손을 대자 금세 모락모락 올라오던 김이 사라져 버렸다.

아저씨 몸이 너무 찬 거는 아닌지 모르겠어요.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남자가 머그잔에서 손을 떼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바깥에 너무 오래 계셨나 봐요.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날씨에 비해 지나치게 얇게 입은 옷 때문일 것이다.

남자는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나는 스물 살이지만 이틀만 지나면 스물한 살이 된다고 했다. 지금은 30일이 아니라 31일 새벽이었다. 그러니 이틀이 아니라 오늘 하루만 지나면 스물한 살이 되는 것이었으나 고쳐 말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이라고 하는 시간 때가 이 날이라고 하기에도 저 날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했다. 보통 밤 열두 시를 기준으로 날짜가 바뀌는 것과는 달리,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침이 되어야만 다음날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고 말하며 남자가 나를 건너다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눈빛이 나를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남자의 얼굴에 드리우던 어두운 그림자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 새벽에 느닷없이 나를 찾아온 사람이었다. 어떤 사연이 없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이었다. 나를 아느냐고 나는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다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했다. 낯설지는 않은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 조금씩 어긋나 있다고. 나는 무엇이 그러냐고 물었고 그는 내가 그렇다고 말했다. 내가 꼭 자신의 딸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나이가 맞지 않고 생김새가 닮은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르다고 했다. 특히 코의 선이 다르다고 했다. 자신의 딸은 콧대가 없고 코끝이 뭉툭한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혹시 내게 코 성형을 한 적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 딸 아이는 열네 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네가 내 딸처럼 느껴지는구나.

남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더니 몇 번이나 쓸어 내렸다. 그래서인지 눈에 핏발이 서서 빨갰는데 무언가를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내 딸이 아니라면 내가 여기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나 또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찾아 어려운 발걸음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남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혼란에 빠진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남자가 무엇을 아쉬워하고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열네 살이 아닌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의 딸과 닮아 자신의 딸처럼 여겨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서 찻잔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운 향이구나.

무엇인가를 애써 기억하려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외할머니가 보내 준 유자차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이에요. 다른 유자차는 이런 향을 내지 못한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유자차는 다 이런 향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번에는 남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말에 동의한다는 것인지 뒷말에 동의한다는 것인지 역시 모호한 반응이었다.

이상해요. 아저씨한테 드린 차는 자꾸 금방 식어요. 제 잔에서는 아직도 김이 올라오고 있는데 말이에요.

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듯 말했다. 그런데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눈꼬리는 더 심하게 내려갔고 미간 사이에 도도록이 푸른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내가 분명 말을 잘못 꺼낸 게 틀림없었다.

이상할 테지. 이상하고말고. 아무렴.

남자는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고 그리고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고 다시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곳 사람이 아니니 이상할 테지.

남자는 찻잔을 몇 번인가 들어 입으로 가져갔지만 유자차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그의 말이 신경 쓰였다. 그렇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식탁에 마주 앉는 순간 나 역시 남자에게 친근함을 느꼈고 또한 그가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그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파리한 얼굴빛과 때에 맞지 않게 입은 옷은 그만두고서라도 내 앞에 나타나 갑자기 서 있던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 사람이 해를 끼치지 죽은 사람이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막상 남자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나는 엄지손톱을 물어뜯다가 남자에게 불쑥 물었다.

꿈은 아니죠?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저 나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꿈이 아니라면 무슨 일로 그가 내 앞에 나타난다는 말인가. 죽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한밤중에 찾아오는 것이 대낮에 찾아오는 것보다 더 그럴싸하다고는 쳐도 굳이 우리 집을 혹은 나를 찾아올 이유는 딱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남자가 내 아버지라면 몰라도 말이다.

혹시 내 아버지세요?

머뭇대며 남자에게 물었고 남자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딸은 열네 살이었다고만 했다. 그런데도 내가 자꾸 남자의 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저씨한테서도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요, 우리 아버지처럼요.

남자는 코를 킁킁대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오른팔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고개를 숙이자 남자의 머리통이 훤히 보였는데 불빛 때문인지 조금 전보다 더욱 희끗희끗했다.

나한테서 그런 냄새가 난다고?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했고 느렸으며 그래서 침울하게 들렸지만 남자의 표정만은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자신한테서 바다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자신은 어쩌면 바닷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바다 냄새가 익숙할 뿐만 아니라 바다만 생각해도 가슴이 아릴 정도로 그립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기억은 흐릿하기만 할 뿐이라고. 점점 기억이 흐려지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이 이 세상으로 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앞에 나타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는가. 나는 남자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참치 사진을 들고 나와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 줄 알아요?

나는 남자의 코 밑까지 사진을 들이밀었다. 드라이아이스를 쐬고 있는 것처럼 손등이 서늘했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찬 기운을 뿜어내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물고기이지 않느냐, 라고 말했다. 물고기이긴 하지만 이것의 이름을 맞혀보라고 나는 남자를 재촉했고 남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청어, 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나는 다른 이름은 없느냐고 물었고 그는 다시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번에는 내 말의 의도를 알아챘다는 듯 참치군, 하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쿠로마구로양, 하고 약간은 장난을 섞어 말했고 남자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남자의 쳐진 눈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쿠로마구로, 라고 고쳐 말했고 남자는 눈가에 잔주름을 크게 만들며 웃었다. 나는 남자의 웃는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내가 참치군, 하고 말해서 쿠로마구로양, 이라고 말한 건가?

남자가 물었고 나는 그렇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유머 감각이 좀 없어.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양어선을 타던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내게는 언제나 예의를 잘 지켜야 하는 손님 같았다. 공손히 말했고 떼 같은 것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집으로 오지 않게 되었을 때, 무례하게 굴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무릎에 나를 앉히고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태평양의 어느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바다가 쏘아내는 무수한 빛깔들에 대해서, 열대의 자연과 색색의 물고기들이 출렁이는 바다에 대해 말할 때의 아버지 눈빛은 이미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다에도 명암이 교차할 때가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풍선을 쥔 아이같이 들뜬,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고 헤엄을 치는 물고기도 있단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나는 살아있는 동안 단 1초도 쉬지 않는다는 그 물고기를 상상할 수 없었다. “너무나 많은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남태평양의 바다다. 그런 곳으로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웃음소리는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아버지는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겠다는 듯이 웃고 또 웃었는데 그럴 때면 부챗살 같은 눈가의 주름이 아버지 얼굴을 덮었다. 나는 아버지가 채 끝맺지도 못한 말들을 만들어 해보곤 했다. “그런 곳으로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그림이 엉망이 되어버리지. 아니 환상적인 그림이 되지.” 아버지가 떠나고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나는 아버지의 말들을 내내 기억해 내었다. 그것은 의도적이었으며 또한 내게는 그것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 말과 남태평양의 색채로 남아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나는 아버지가 못다 한 말들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나는 그것들을 ‘아버지의 쿠로마구로’라고 이름 붙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쿠로마구로떼가 새벽 햇살 속에서 은빛 비늘을 번뜩인다. 바다는 떼를 지어 다니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준다. 햇살을 받은 청록색의 바다에 분홍과 다홍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수천수만 마리의 쿠로마구로떼를 만난다. 쿠로마구로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왜 우리를 만나러 오는 거지? 우리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우리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가는 모여. 그런 곳으로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집이 그리워지는 거야. 아버지의 쿠로마구로다. 아버지도 집이 그리웠던 적이 있을까. 모든 것이 운명이라던 할머니는 가슴속에 아버지를 묻어왔던 것일까. 운맹이란 것이 앙탈을 부린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여. 그러니께 순종하면서 살아야제. 안 그냐? 할머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면 몸을 곧추세워 다시 앉았다.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하고 나는 얼굴 근육까지 씰룩이면서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 이 말 기억하세요?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남자가 이 말을 꼭 기억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새벽 햇살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배 말이야, 발동기를 단 작은 그런 배. 꼭 그런 배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거예요.

나는 머릿속을 기웃거리는 말들을 낮은 소리로 뱉어냈다. 남자가 놀란 듯 고개를 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새벽빛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배의 모습을 떠올려보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떠올려야 하는 바다가 남태평양의 어느 바다인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남해 바다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런 계산과는 상관없이 매번 내 머릿속에는 섬들이 들쭉날쭉한 남해안의 바다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남해의 바닷가 마을로 내려갔다. 그때의 나는 열두 살이었고 초경을 했다. 그곳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일 년 전까지 살았다던 집이었다. 쐐기풀과 달개비가 주인 없는 마당 한 귀퉁이를 차지했고 시멘트 담벼락 쪽으로는 도꼬마리 열매가 가시를 키우고 있었다. 거미줄이 쳐져 있던 방문은 창호지마저 여기저기 뜯겨있었다.

어쨌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엄마의 생각은 그럴듯했다. 게다가 바다를 배경으로 둔 어촌 마을에서 살아보는 것은, 젖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고 과수원에서 넘치는 과일들과 과일나무가 피워내는 꽃들을 구경하면서 사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멋진 일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함께 떠나자는 엄마의 권유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평생을 하나뿐인 자식만 보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살고 있는 집을 떠나는 것이 아들을 버리는 일이라도 되는 양 진저리를 쳤다.

바닷가 마을로 내려간 엄마와 내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들처럼 굴이나 피조개 양식養殖을 할 수도 없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대신 엄마는 그곳에 있는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굴 껍데기를 끼는 일이었다. 그 일은 초보자도 할 수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굴들이 배에 실려 공장으로 들어왔다. 공장 사람들은 다시 콤바인벨트를 타고 온 굴들을 세척기에 넣고 씻어낸 뒤 찜솥에 넣고 삶았다. 공장은 뜨거운 김으로 뿌옜고 어디서나 뜨겁고 들척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옷과 머리카락에까지 붙어 따라다녔다. 트림을 하면 굴 익는 냄새가 목구멍으로 물큰물큰 넘어왔다. 삶은 굴들은 다시 콤바인벨트를 타고 공장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물병을 들고 공장 건물 입구에 있는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가다가 콤바인벨트 앞에 마주보고 줄을 서서 굴을 까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일당은 굴을 깐 총 킬로그램 수로 지급되었다. 굴의 눈을 상하지 않게 까는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까고 난 굴 껍데기들은 다시 인부들에 의해 공장 건물 밖으로 실려 나왔다. 굴 껍데기는 공장의 공터에 쌓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끼러 모여들었다. 굴 껍데기 가운데 구멍을 뚫고 앞뒤로 마주 보게 오목하게 나일론 줄을 끼우면 되는 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밤이면 촛불을 켰다. 목장갑을 끼고서 나일론 줄의 한쪽 끝을 촛불에 갖다 댔다. 한 발 길이의 나일론 줄은 살짝만 갖다 대어도 금세 녹았다. 녹은 줄 끝을 목장갑을 낀 손으로 뾰족하게 말아서 굳히는 일이었다. 그러면 굴 껍데기를 끼는 도중 줄이 풀려 낭패를 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있었으면 이런 것쯤은 거뜬한데 말이야.” 엄마는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이곳으로 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여름이 다가오면 그곳은 고약한 냄새로 뒤덮였다. 파리들은 굴 껍데기의 하얗고 매끈한 안쪽에 알을 깠다. 종패가 되지 못한 굴 껍데기에서 알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보리 알갱이만한 번데기들이 홍합이 달리듯이 까맣게 다닥다닥 붙었고 굴 껍데기 무더기에서 구더기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암녹색의 물이 흥건히 고였다. 무덤에 앉아 굴 껍데기를 쪼고 있는 엄마는 여름 내내 굴 독毒에 시달렸다. 오돌토돌 벌겋게 부어오른 살을 엄마는 긁고 또 긁었다. 딱지가 앉고 있는 상처에도 손을 대어 덧날 때가 많았다. 붉게 부어 오른 상처에서 피가 나면 엄마는 정말로 시원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그 여름 내내 사방에서 구더기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꿈을 꾸었다. 혹은 구루마 수백 대가 몰려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면 그것들은 사라졌지만 엄마의 몸에는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파도가 없는 고요한 바다다. 어둠이 막 걷히고 있다. 통통통, 해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먼데서부터 들려온다. 갈매기조차 아직 날지 않는다. 바다 끝에서 구름을 뚫고 나오는 햇살로 세상은 온통 다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살결에 와 닿는 바람이 낮과는 달리 서늘하다. 팔에서는 오소소 소름이 돋고 한기에 몸이 움찔, 진저리를 친다. 나는 선창가에 앉아 어둠이 걷히고 있는 바다를 본다. 통통통통. 아까보다 더 큰 소리다.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루룩거리며 날아온다. 배의 엔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배는 내 옆을 스치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어쩌면 배는 바다가 아니라 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배가 만들어 놓은 물길이 하얗게 포말을 만든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살결에 닿는 느낌은, 차갑지만 상쾌하다. 소매를 걷어 팔을 물속에 담근다. 갑자기 출렁이는 물살로 소매가 젖는다. 멀어져가는 배에는 등을 웅크린 남자가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배에 타고 있던 남자가 일어선다. 그리고 등을 돌려 손을 흔든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르고 있다. 나는 배에 타고 있던 남자가 아버지임을 알아차린다. “그런 곳으로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하하하 하하하…….” 새벽빛을 가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배. 발동기 소리.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떠올린다. 그것은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기억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버지는 바다 사나이였어요.

남자에게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나는 허둥댔다. 말을 뱉고 보니 사나이, 라는 단어가 조금 우스웠다. 사나이? 남자? 바닷사람? 사나이나 남자라는 말보다는 바닷사람이라는 말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정말로 사나이였던 적이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의 그 물음은 내 아버지가 바다 사나이였다는 것이 어쨌다는 것이냐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그래서 자신을 아버지로 생각하느냐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남자에게 적당한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혹시 딸이랑 통통거리는 작은 배를 타 본 적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내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다. 기억을 더듬는 모양이었다.

그런 적이 있었던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영 자신 없다는 투로 남자가 말했다.

안방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닫힌 방문을 넘어 흘러나왔다. 코 고는 소리는 높이가 다른 음표처럼 높아졌다 낮아지며 파도를 탔다. 할머니는 잠든 것일까. 나는 여행을 가자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며칠 전 자리에 누웠을 때, 방바닥에 등을 대자마자 코를 고는 엄마 뒤에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자냐?” 나는 잠이 든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미가 모아둔 돈이 있는데 우리 여행 한번 안 다녀올텨?” 여행이라는 할머니의 말에 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누구랑?” “누구긴 누구여. 우리 셋이지.” “어디로?” 나는 엄마를 밀치고 할머니 옆으로 가서 누웠다. “거 있잖여. 니가 맨날 말하는 그 뭐시기 구루만지 리어칸지 그런 것들이 있는 바다.” 할머니가 부스럭거리며 속옷을 뒤졌다. 다시 불빛이 창문으로 넘어왔다. 할머니 손에 꼬깃꼬깃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들려있었다. 할머니가 내 손에 쥐어준 돈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섞인 지린내가 났다. “내가 말이여, 팽생을 모은 돈이여.” 할머니는 다시 샅을 뒤지더니 16절 광고지를 여러 번 접은 종이를 꺼냈다. “옛다, 통장 여깄다. 비밀번호는 0707이여.” 통장을 꺼내놓는 할머니의 눈이 내 등 너머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두워지던 내 표정을 읽은 것일까. 남자는 과장된 목소리로 큰 배를 탄 적이 있다, 고 했다. 마디가 굵은 손을 들어 크게 휘저으며 이 기억만큼은 또렷이 남아있다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하다고 했다. 남자는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면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라는 식의 표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적어도 안방에 누워 잠들어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테지. 나는 남자를 보는 순간 내내, 그가 내 아버지이기를 바랐다. 나를 찾아서 내 얼굴을 보려고 희미한 기억을 붙잡고 먼 길을 온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 기억 속 아버지와 닮은 남자의 분위기와 희미하게 풍기고 있던 바다 냄새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나는 식탁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부엌 창 너머로 날리고 있는 눈발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나 가로등 불빛에 비친 눈발은 폭풍에 휘몰아치는 것처럼 몹시 거칠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곁으로 가까이 오기 전까지의 세상은 언제나 평화롭고 고요하다는 것을. 그도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창문 앞으로 가서 섰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구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만나서 참 좋았다. 마치 딸아이를 만난 것 같구나.

남자의 말에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를 만나 참 좋았다. 그가 비록 내 아버지가 아니었대도. 아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것이 더 좋았다. 우리는 아무도 아버지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가끔 할머니의 꿈속에 아버지가 나타난다고 했다. 아무래도 변을 당하게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꿈속에서 그렇게 애달픈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볼 리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요즘 들어 자주 깜박깜박했다. 구루마에 싣고 온 생선들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고 엄마가 내게 살짝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엊그제 밤, 여행을 가자고 했던 말을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남태평양의 어디쯤으로 지금은 우리 가족이 여행을 다녀올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할머니의 가슴속에 꽁꽁 숨겨 놓았던 아버지를 풀어내고 와야 하리라는 것을.

나는 남자의 손을 찾아 쥐었다.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남자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를 만나게 되어서 참 다행이에요.

마지막 인사라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그를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그림자만 잠시 어른거릴 뿐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손이 아릴정도로 시려왔다. 나는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입김을 호호 불어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에 비쳤다. 마치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물고기떼 같아서 나는 깜짝 놀랐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쿠로마구로떼가 몰려올 때면 말이다…….

나는 어둠이 내린 도시를 유영하는 물고기떼를 보며 또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뜨거운 눈물이 똑똑 손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긴 꼬리를 흔들며 물고기떼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 당선소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설과 늘 함께 할 것”

조미해씨= 1969년 서울 해방촌 출생, 성장기를 거제도에서 보냄. 2015년 제 15회 평사리문학상 대상 수상.
굴 껍데기를 끼러 굴 공장을 다닌 적이 있었다. 언제나 햇볕은 뜨거웠고 굴 껍데기들은 썩은 내를 풍기며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렸다. 가끔은 비가 내리기도 했다. 비닐로 온몸을 칭칭 동여맨 채 굴 껍데기 앞에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햇볕도 그리고 거칠게 내리는 빗줄기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굴 껍데기에 베인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오른쪽 검지 손톱은 사선으로 삐뚜름해졌다. 굴 껍데기를 쪼던 어머니는 몸에 굴 독이 올라 붉게 부풀어 있는 살을 밤새 긁고 또 긁었지만, 날이 밝으면 우리는 다시 굴 껍데기를 끼러 굴 공장으로 달려갔다. 소설도 내게 그런 것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나는 소설 앞에서 등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손톱이 삐뚜름하게 자라도 독이 올라 온몸을 박박 긁게 되더라도 나는 또 다시 소설 앞에 서야만 하리라.

작년, 처음으로 상을 받고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갔다. 까부라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어머니한테 나는 끝내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치일 것인가. 앓는 소리를 내다 잠드는 어머니 손만 붙잡고 있다가 뒤돌아 나왔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셨을 때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몰려들기도 했다. 이제는 어머니한테로 달려갈 수조차 없다. 매일 밤 한복 차림으로 내 꿈속을 다녀가시는 어머니께 이제는 말해야 하리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대도 그때처럼 그렇게 당신을 따라서 굴 껍데기를 끼러 다닐 것이라고.

오목하게 마주보게. 예순 개의 굴 껍데기를 한 줄에 끼우듯, 나는 그렇게 소설을 써야 하리라. 내게 기꺼이 줄이 되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굴 껍데기 끼우는 법을 가르쳐 주신 윤후명 선생님께 감사한다. 몸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함께 견디고 있는 문우들과 나의 가족들, 고맙고 또 고맙다.

햇볕 뜨거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도 마다하지 않고 굴 공장으로 달려갔던 것처럼 그렇게, 소설과 늘 함께 할 것을 여러분 앞에서 다짐한다.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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