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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금상] 그 겨울 저녁 무렵 허공에 까마귀 떼가 서부렁섭적 세발랑릉 흑랑릉 날아들어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1월20일 15시35분  

수평선에 눈썹을 걸고 있던 그 겨울 저녁 무렵, 까마귀 떼가 해일처럼 허공에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모였다가 나부룩 흩어지고, 싸목싸목 모였다가 검은 바람처럼 휘도는 새 떼. 흩어질 때는 누가 해바라기 씨 한 움큼씩을 허공에 뿌리는 거 같고 모일 때는 커다란 마른 고사리 덩이 같았다. 그러나 저 덩이는 식물성이라기보다 유리질로 비쳤다. 응집할 때마다 와장창창 부딪쳤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으므로 주검들이 허공에서 후두두둑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일렬 편대로 비행할 때는 수 백 마리 날갯짓이 허공의 살과 뼈 사이를 빠져나갔다. 피 한 방울 내지 않고 허공을 저몄다. 그럴 때면 까마귀 떼가 까무룩 보이지 않았다. 허공의 비늘만 일제히 일어섰다가 차례로 쓰러졌다.

허공에도 숨을 곳이 있을까? 아니면 까마귀들은 구름 속에 들었거나 산을 넘었을까? 그 순간, 외각을 찢으며 까마귀 떼가 다시 나타났다. 물줄기를 뿜어 올리듯 높이 솟구치더니 이번엔 초서 갈필의 붓끝으로 내리 꽂는다. 오! 저게 다 문장이라면 똑같은 문장이 하나도 없어 검은 색만으로도 변려체를 구사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사이에 새 떼는 붓을 버리고 이제 거대한 지느러미를 이루며 헤엄친다. 유유했다. 어두워 오는 허공을 맺고 풀며, 서부렁섭적 세발랑릉 흑랑릉 까마귀 떼 군무는 지칠 줄을 몰랐다.

허공의 새 떼는 바닷속 물고기 떼처럼 날고 바닷속 물고기 떼는 허공의 새 떼처럼 헤엄친다. 사람이 바다를 바다라 이름 붙이고 허공을 허공이라 이름 붙였는데 허공과 바다가 같고 새와 물고기가 다르지 않았다. 저 보름까매기들이 날아오민 보름이 불거나 비가 올 징조인디 저거영 마농이영 보리영 뜯어먹음쪄. 팔순 노파가 구시렁거리며 어벙저벙 방으로 들어갔다.

까마귀 떼가 허공을 가를 때는 허공이 비단이며 까마귀 떼가 가위이고 까마귀 떼가 종횡으로 나풋나풋할 때는 추월적막 흑공단 같으니, 이 비단타령은 어느 게 비단이고 어느 게 가위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날까지 어둑시근 다 저물어서 까마귀 떼는 이제 소지(燒紙)한 재를 흩뿌린 듯 가물가물했으므로, 시나브로 또 어느 게 까마귀고 어느 게 어둠인지 나는 망막했다.

별들이 톳여(礖)**처럼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 서부렁섭적 세발낭릉 흑랑릉(細髮浪綾 黑浪綾) -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발이 아주 가늘고 얇은 비단, 검은 비단을 말함. 추월적막 흑공단도 비단이며 판소리 <비단타령>에서 차용함.

** 톳여(礖) - 바다 수면 위에 드러난 바위의 윗부분.

■당선 소감

사윤수 약력= △1964년 경북 청도 출생 △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파온’ 출간
오라는 사람도 없고 특별히 가야할 일도 없는 지난 1월에 나는 추위를 헤치며 우도에 갔다. 그리고 노인이 홀로 사시는 집에 짐을 푼 뒤, 골목에 나가 이드거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겁이 많은 나는 어둠이 스미는 낯선 섬에서 혼자 걷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는데 그때 해안가 기슭에 난데없이 검은 무리가 나타났다.

철새 떼가 천수만 허공을 가맣게 뒤덮는 영상을 본 적이 있지만, 별로 멀지 않은 내 눈 앞에서 까마귀 떼가 그렇게 일사분란하고 빠른 속도로 요동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나는 두려움도 잊은 채 그 비밀스럽고 황홀한 작당에 넋 없이 빠져들었다. 그 풍경은 정녕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퍼포먼스였고, 검은 비단 같은 새들의 군무를 한 필 오려서 벽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신묘했다.

후일에 나는 우도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신청을 했다. 요즘은 대구와 우도에 오가며 섬이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 적는다. 막배가 떠나고 나면 작은 섬은 나지막한 적막 한 채가 된다. 때로 적막의 이불을 덮고, 때로 온 밤을 포효하는 바람 소리에 뒤채이다 나는 잠이 들곤 한다. 작은 섬에도 북쪽이 있다.

여러 심사위원 선생님 그리고 조영일, 도광의 심사위원님께 감읍한 마음을 올립니다. 섬에 등대가 있어 방에서도 등대 불빛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큰 상을 주시는 뜻도 저의 부족한 글을 이끌어주시는 환한 등댓불이라 생각합니다. 지극하신 격려와 사랑에 힘입어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더불어 저를 응원하는 친구들, 지인님들 그리고 제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배려해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한 마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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