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지만 외국에 갈 때 항상 어깨를 펴고 당당히 그 나라의 입국 심사대에 섰다. 하지만 조만간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지난 18일,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상식에서 특강 한 김주영 작가의 말이다. 그동안 경제발전과 문화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가 ‘국격’을 크게 높여 왔는데 최순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끄러운 수준의 나라가 됐기 때문에 더 이상 당당할 수 없게 됐다는 한탄이었다.

‘격(格)’이란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인격, 국격을 이야기한다. 인격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사람의 품위나 됨됨이다. 도둑이나 매춘부나 농부, 관료나 대통령도 각자의 인격이 있다. 크게 보면 인격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른 인간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인격이나 국격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한 행동학자는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격을 갖는 것은 사람다운 행위를 하느냐, 짐승다운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고 했다. 법을 먹을 때 그릇에 고개를 숙여 입으로 가져가는 것은 짐승이지만 고개를 들고 그릇에 담긴 음식을 도구를 사용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인격이라는 것이다. 격식을 아는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17일 최순실 사건 수사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언론을 향해 "개인의 인격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위험이 있는 보도는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유 변호사는 "범죄혐의와 관련 없는 개인의 인격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위험이 있는 보도가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국가의 격이 추락한 데 대해 온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인격을 말한 것이 좀 격에 맞지 않아 보인다. 국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팔순의 노작가가 외국 나가기 부끄럽게 된 이 상황에 대통령 개인의 인격이 문제랴 싶은 것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쓴 "국가에 있어 일체는 허위다. 씹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훔친 이를 가지고 씹는다. 그의 장(腸)조차 가짜인 것이다"라는 구절을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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