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이 나라는 경악, 개탄, 걱정이 교차된 날이다. 현직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주모자들과 공범 관계로 규정했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고 정부 수반이다. 이런 지위의 대통령이 범죄 혐의로 자신의 지휘 아래에 있는 검찰로부터 피의자 취급을 받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청와대가 이 사실을 부인하고 검찰 수사를 안 받겠다 했다. 대통령 변호인은 “미르·K스포츠재단은 정부의 국정 수행을 위해 추진된 것일 뿐, 특정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공범 기재 부분을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청와대는 국회를 상대로 탄핵을 자진 요청했다. 대통령직에 대한 ‘사형선고’와도 같은 탄핵을 바라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각하’ 결정을 끌어내 법적 ‘면죄부’를 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각하와 인용의 전망을 떠나 정치 문제를 법관의 심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 조사는 특검의 몫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특검은 검찰이 파헤친 범죄 혐의 공모 관계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마땅하다. 관련 인물들의 공소장 혐의 내용은 직권남용 및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이 주를 이루는 데 제삼자 뇌물죄 관련 혐의는 빠져 있다. 이는 공범으로 규정된 대통령에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의 판단 문제와 직결된다. 물론 검찰의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박 대통령은 법적으론 유죄에 해당하지만, 재직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 퇴임 이후 법의 심판대에 선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혐의 부분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정부의 전·현직 요인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아울러 국회는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서둘러 의혹을 정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국 수습의 기화를 놓치며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민심의 분노가 더욱 확산되면서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는 것이다. 금주 말에는 더 큰 집회가 예고돼 있다. 박 대통령 지지 단체의 맞불 집회와 충돌할 경우 어떤 일이 닥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유혈 사태가 난다면 헌정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중의 시위는 할 수 있다. 평화적으로 해 야함을 거듭 강조한다.

박 대통령은 국정 업무 복귀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이 야권의 주장대로 국면 전환을 위해 시간을 벌면서 보수층의 결집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뜻을 이루긴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야당이 지금처럼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정권 탈환에만 눈이 멀어 계속 헛발질만 한다면 박 대통령을 다시 되살려야 하는 국민이 진정으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정치질서 전체를 교체하는 혁명적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법률상 피의자 신분이 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지만 정치와 정부가 이토록 막장 드라마식의 저수준은 제헌 이래 최대의 일이다. 이러한 사태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정치의 직무유기, 다시 말해 ‘불정치(不政治)’‘부작위(不作爲)’로 인해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나라만 멍든다는 사실이다.

우선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거나 삼삼오오 모여 권력 재장악에 대한 꼼수나 꾸미는 여권내 친박계 인사들은 정치에서 손을 떼라. 국회의원이 정치에 손을 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의원직 사퇴다. 박 대통령 참모들도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범죄의 사실상 공모자라는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로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내 탓이오’ 하며 가슴을 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책임을 모르면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국정을 수습할 유일한 현실적인 방도인 책임총리를 추천해 행정권을 이양받아 혼란을 수습해야 할 야당 지도자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권한이 없는 민중들이나 하는 시위대 대열에서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권력보다 국가가 우선이고 국민이 우선이다. 작금의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의 극단적인 정치세력들이 ‘87년 체제’ 이후 권력이라는 이(利)만 챙기고 나라와 공공(公共)은 온데간데없이 국민에게 위선적인 언행만 일삼아 왔음을 역사는 알고 있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장·차관, 청와대 참모, 야당 국회의원들은 본인의 거취문제를 포함해 극심한 혼란에 빠진 정국 수습을 위해 가장 합당한 해결책을 속히 내라는 국민의 소리 없는 함성을 안 들리는가. 해결책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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