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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이 죽으면 장례라는 예식을 통해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인연을 끊게 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족들은 엄숙한 장례절차를 통해서 죽은 사람과 평소 교류하던 친인척과 친구들의 문상을 받게 된다. 종래에는 죽은 사람이나 유족의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음식을 장만하게 되는 유족의 노고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종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힘든 경우에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동묘지에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장례비용의 무거움을 덜어주고자 이웃 사람은 품앗이를 통해서 유족의 노고를 덜어 주었지만, 경제적 비용은 이웃이나 문상객들이 유족에게 주는 물건이나 돈을 부조 또는 조의라고 하여 해결되었다. 지금은 동네 장례를 하지 않고 대부분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단술(식혜)이나 묵 등 물건으로 조의하는 경우는 드물고 모두 돈으로 부조하고 있다. 그래서 조의금은 우리 풍속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고, 누구도 이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 시행되고 있는 청탁금지법(이른바 김영란법)도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조사비 중 조의금과 조의금을 대신하는 조화, 물건 등은 10만 원의 범위내에서 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음식물, 조화, 조의금을 함께 주는 경우에는 그 모든 금액을 합산하여 10만 원이 넘지 않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예시하고 있다. 당초 10만 원을 넘는 금액을 조의금으로 받은 경우에는 받은 금액 전부를 반환하여야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가, 많은 이견이 제시되어(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서야), 지금은 10만원 초과 부분만 정산하여 반환하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10만 원을 넘는 금액이 금지 품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제공자는 경조사비 전액을 기준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고 한다. 반환은 초과 부분만 하도록 하면서, 과태료는 전액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10만 원을 넘는 조의금을 받은 공직자 등은 초과 부분을 반환하지 않아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부과받으면 그만이지만,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조의금을 낸 제공자는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더라도 초과 부분을 반환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공자에게 모든 책임을 부담시켜 과태료를 전액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경조사비 10만 원이라는 금액도 서울에서야 사회통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방에서는 경제규모의 열악성 등으로 인하여 대부분 5만 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10만 원이라고 규정한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허례허식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만 원으로 규정하는 법 때문에 5만 원 조의금이 오히려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청탁금지법이 경조사비 인상 유발법이 된 셈이다. 조의금 규정은 공직자 등이 속하고 있는 기관 구성원 사이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고위직 공무원이 초상을 당한 그 소속 부서 하위직 공무원에게 조의를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고위 공무원이 초상을 당한 경우에 그 소속 부서 하위직 공무원은 조의금을 줄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사회상규에 비추어 어색한 것이 틀림없다. 또한, 기관의 의미가 소속 부서만 의미하는 것도 문제이다. 다른 기관 소속 공무원도 조의를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무원, 학교, 언론인 등 구성원 간에 경조사비는 상호부조의 성격이 강하고 전통적인 미풍양속으로서의 사회상규로 보아 10만 원의 범위만 규제하고, 나머지 문제가 되고 있는 해석 부분은 모두 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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