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섭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파란 하늘에 빨간 댕기가 팔랑거리고 옥색 치마가 풀썩인다. 널뛰기는 정월이나 단오, 추석에 하는 전통 놀이이다. 두 사람이 널빤지 위에서 신명나게 구르고 뛰는 한 판 놀이이다.

어렸을 적, 아이들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세뱃돈 모금이 끝나면 하나둘 배꼽마당으로 모였다. 구슬치기도 하고 제기를 차다 보면 쿵덕 쿵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자들의 널뛰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틈에 하던 놀이마저 팽개치고 달려가 구경삼매경에 빠졌다.

처자들은 널을 뛰기 전에, 멍석을 둥글게 말아 만든 널받침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자리를 골랐다. 이윽고 널빤지 위에 올라 눈 맞춤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슬슬 리듬을 타기 시작하더니 무릎을 굽혔다가 힘껏 굴러 하늘 높이 솟구쳤다. 널뛰는 소리가 떡방아 찧는 소리처럼 신바람을 더해 갈수록 구경꾼의 고개도 처자를 따라가기 바빴다.

허리에 불끈 동여맨 치마끈을 두 손으로 잡고, 공중에서 휘르르 한 바퀴 돌고 널 위로 착지했다가 힘차게 다시 솟아오르면 구경꾼들은 탄성을 질렀다. ‘쿵’ 하고 구르면 빨간 댕기가 하늘 높이 올랐고, ‘덕’ 한 번에 치마 꽃이 둥실 피었다. 그때부터는 처자들만 널을 뛰는 것이 아니라 둘러선 구경꾼도 함께하는 놀이마당이 되었다. 마치 자기가 구르는 양 오금에 힘을 주어가며, 으쓱으쓱 어깨 장단으로 신명을 북돋워 주었다.

널뛰기에 필요한 기구는 간단하다. 널빤지와 널을 받치는 고이개만 있으면 된다. 널빤지는 탄력성이 뛰어나고 단단한 나무로 맞춤하게 만든다. 고이개는 흙을 담은 가마니나 멍석을 말아서 쓰는데, 널판을 잘 유지하는 균형추 구실을 한다.

널빤지 끝과 고이개 사이의 거리를 널밥이라 한다. 널을 뛰는 두 사람의 몸무게가 맞지 않을 때는 고이개를 무거운 사람 쪽으로 옮겨 균형을 맞춘다. 이것을 가리켜 널밥을 준다고 한다. 널밥을 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속 깊은 배려이다. 밥이 같으면 아무래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널밥을 잘 조절해야 제대로 뛸 수 있다.

널뛰기는 기교를 뽐내거나 승부를 겨루기보다 함께 즐기는 놀이다. 얼핏 보면, 서로 겨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잘 뛰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단순히 구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박차 오르려는 의지와 상대방으로부터 전해 받은 힘이 서로 통할 때, 두 개의 힘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높이 솟구치게 된다.

마주 보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널뛰는 것을 보면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결혼은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안고 널빤지에 올라서서 널을 뛰는 것과 같다. 마주 바라보고 있는 상대의 눈짓은 물론이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보듬어야 한다. 널뛰는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면 두 사람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솜씨가 부족하거나 처음부터 널밥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엇박자가 섞여들거나 널뛰는 소리가 툭박지게 된다. 이런 둔탁한 소리가 나는 널뛰기는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만다.

나는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겠다고 나섰다. 무슨 대단한 공부도 아니고 지방의 그렇고 그런 대학에 편입하겠다니 기가 막혔겠지만,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널밥을 내게로 밀어주었다. 나는 그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아내는 이 년 동안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 솔가지로 불 때서 밥하고 개울가에서 빨래하면서 시부모님께 얹혀살아야 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하자 널밥을 서로 많이 가지려는 다툼이 늘어났다. 사는 게 어려울 때는 애틋한 마음에 알콩달콩이었던 것이 조금 살만하니 작은 것 하나 가지고도 아웅다웅했다. 나는 바깥일을 핑계로 애들 교육과 부모 공양의 무거운 짐까지 맡겼다. 아껴보겠다고 애면글면하는 아내를 쪼잔하다 타박하고 몰아세웠다. 아끼자 하면 쓰자 하고, 가자 하면 말자 하니 날마다 ‘철퍼덕’이요 ‘우당탕’이었다.

널을 오래 뛰면 널빤지가 땅에 닿는 부분이 점점 더 파여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듯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만큼 불협화음의 여운도 길었다. 널뛰는 마당에 비바람이 불었고 눈보라가 친 적도 있었다. 널빤지 양 끝에 쭈그리고 앉아 울기도 많이 했다. 그만 내려서려고 했던 적도 없지 않았다. 내가 널뛰는 것을 마다하고 움츠리자 아내는 오도카니 허공에 뜬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구러 중년으로 접어들자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해지기 시작했다. 널밥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내가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꼬임에 빠져 꽤 많은 금액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다달이 주는 높은 이자에 눈이 팔려 야금야금 돈을 건네더니 그예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정신이 반이나 나간 채 눈물을 그렁거리며 우두망찰 서 있는 아내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었다. 나는 아내에게 널밥을 힘껏 밀어준 그 날 이후로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그 일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널을 뛰면서 움푹 파였던 골이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메워지는 동안 나는 반백이 되었고 아내의 눈가에도 주름이 가득하다. 내가 아내에게 준 널밥이 얼마인가 돌아본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하면서 윽박지르는 졸장부 노릇으로 점철되지 않았나 싶어 겸연쩍기도 하다. 그런데 나뭇잎이 얼추 떨어지고 맨 가지가 드러나니, 어느새 널밥은 아내 쪽으로 많이 넘어가 있다. 부쩍 억척스러워진 아내에게 오히려 내가 널밥을 더 달라 조르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제는 나이에 밀려서 구르는 힘도 약해졌거니와 굴러 본들 높이 솟구치지도 못한다. 널뛰는 소리도 나지막이 깔리는 실내악처럼 편안하다. 디디고 굴렀던 널빤지도 낡고 얇아졌다. 한바탕 인생 널뛰기를 마치고 내려와 피안(彼岸)으로 건너갈 때, 당신과 함께여서 좋았었다고 말할 수 있게 오늘도 우리 부부는 널밥을 주고받으며 콩닥콩닥 널을 뛴다.



■수상소감

▲ 조이섭씨= 고령 출신, 2014년 계명대학교 정년퇴임(행정실장), 2015년 영남일보 주최 책 읽기 공모전 수상, 2016년 상춘곡 문학제 문예 작품 공모전 수상, 수필사랑문학회·에세이 포럼 회원.
삼십여 년을 대학 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지 2년이 막 지났습니다. 퇴직하자마자 수필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공부보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그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그저 남이 하는 것 흉내만 내며 살았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그랬고, 악기 연주도 그랬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글쓰기도 시늉만 내다가 반거충이가 되는 게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더웠던 지난 팔월,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그동안 써 두었던 작품 몇 개를 다듬느라 컴퓨터와 씨름했습니다. 구월에 태어난 쌍둥이 손녀가 복을 가지고 온 것인지, 시월에 문우들과 삼필봉 표지석을 껴안으며 글발이 세지기를 기원한 것이 주효했는지 수상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번 격려가 글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초심자가 제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기쁩니다. 글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면서 감동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직 배우는 사람의 어설픈 작품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 이런 큰 행사를 빈틈없이 주관하고 있는 운영위원님, 그리고 문학 대전을 주최해 준 경북일보에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나하고 널밥을 주고받으며 오늘까지 함께한 아내와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저를 항상 격려하고 이끌어 주시는 선후배 문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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