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향란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틈새가 깊은 비와 비 사이, 주민 게시판이 흔들리고 있다
해독할 수 없는 후줄근한 생이 차가운 벽에 무수히 꽂혀 비린내를 풍긴다
허공을 딛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
더듬이를 세운 방들이 낯선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간다
날마다 끈질기게 늘어나는 저 뜨내기 가족들,
전세와 월세는 오래된 약속처럼 부풀어 오른다
속을 다 드러낸 방들이 길바닥 곳곳에 쓰러져 있다
떠도는 발자국들이 아득한 얼음의 시간을 지나간다
유효기간이 지난 시간을 털어내듯 무너져 내리는 빗방울들,
흘러가는 풍경 속 풍경이 된다
먼 길 돌아온 가시 달린 숫자들이 빈 꽃을 더듬고 있다

■수상소감

▲ 송향란씨= 1955년 울산 출생, 2008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 201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다시 흔들리는 말들에게 말 걸고 싶다.
낙타 한 마리 붉은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소음이 떠다니는 풍경 속, 간간이 낙타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막은 보이지 않는다. 거친 모래언덕을 지나 화해할 수 없는 말들을 찾아가는 길, 뜨거운 모래바람이 나를 흔든다. 술렁이는 발자국 소리 점점 멀어져 가고, 사막을 가로질러온 낙타는 도시 곳곳에 긴 울음을 쏟아낸다. 갇혀 있던 아득한 시간이 어둠에 천천히 젖어드는 저녁, 돌아 나올 수 없는 길 위로 쓸쓸한 뒷모습의 낙타가 보인다. 투명해서 더 슬픈, 열릴 듯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오랜 시간 서성였다. 때때로 그 문은 거대한 늪이 되어 깊은 적막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내 안에 고여 있던 창백한 말들이 서로 기웃거리며 뒤척이는, 낙하하는 시간이었다. 안개 속을 걷듯 모니터 창에 걸린 흐릿한 문장들은 허공 속을 흘러 다녔다. 낯선 곳을 떠돌던 낙타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길 없는 사막을 떠돌고 있을 낙타를 생각하며, 나는 오래도록 이 아름다운 시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 메마른 언어들이 바스러져 가고 있을 때 선뜻 손을 잡아준 경북일보와 작품을 심사해 주신 분들, 머나먼 시의 숲으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준 드레문학회 문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큰 그늘이 되어 준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낙엽 내리는 이 가을날,
사막 어디에도 낙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흔들리는 말들에게 말 걸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