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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귀여운 손자 생각에 장날을 벼루어서 새끼줄에 묶인 고등어 자반을 샀다. 그것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엔 담뱃대를 쥐고는 집으로 가는 길, 장마당에서 마신 막걸리에 얼큰히 취기가 올라 걷는 걸음이 갈지자 걸음이다. 이 노인은 연신 “이크, 이놈 고등어 어디 갔나? 이크, 담뱃대는 또 어디 갔나?”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걷는데. 이를 유심히 보던 마을 아낙이 “어르신 무얼 그리 찾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니 이 어르신 대답이 “아 글쎄, 고등어 자반을 찾아 놓으면 담뱃대가 없어지고, 담뱃대를 찾아 놓으면 고등어가 없어지네. 참 이상한 일일세”하며 탄식하더란다. 말하자면 이 노인이 얼큰한 기분으로 길을 걷는데 팔이 앞뒤로 번갈아 움직이니, 한 손 에 들고 있던 고등어 자반이 보였다가 또 안 보이고 다른 손에 들었던 담뱃대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보일 때는 찾았는데 안보일 때는 잊어버린 줄 알고 놀랐다가 안심했다가 하더라는 우스갯소리다.

‘기억’은 매우 중요한 뇌 기능이다. 기억이란 중요한 정보를 등록하고 갈무리하고 필요할 때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일련의 뇌 기능을 말한다. 이 기억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인생에 문제가 생긴다.

이 기억의 과정을 냉장고에 비유해 보자. 우선 냉장고가 낡은 것이라면 보관하는 성능이 매우 떨어질 것이다. 혹은 냉장고 용량에 비해 보관해야 할 물건들이 많으면 다 넣지를 못할 것이다. 또한, 냉장고 안에 오래된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 새로운 물건들을 보관하기 어려울 것이며, 물건을 종류별로 품목별로 잘 구분해서 보관하지 않으면 필요할 때 적절한 물건을 꺼내 쓰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갑자기 정전된다면 그 안에 내용물들은 다 엉망이 될 것이다. 기억의 과정도 이와 같다.

기억의 장애를 나타내는 병들은 많다. 우선 갑작스러운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선택적으로 기억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해리성 기억 상실’이 바로 그 병이다. 이때는 특별한 부분에 대한 선택적인 기억 상실이 나타난다. 이 병은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며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병이다.

기억 장애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치매이다. 치매와 건망증은 큰 차이가 있다. 건망증은 중요한 사실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도 누가 귀 뜸을 해 준다면 금방 기억이 살아난다. 그리고 건망증은 자신이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치매는 그렇지 않다. 치매는 단지 기억을 못 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인지 기능도 같이 떨어진다. 그리고 치매는 스스로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치매는 과거의 기억들은 비교적 남아 있지만, 최근의 기억이 현저히 떨어지며, 심해지면 방향 감각 상실과 계산 능력 손상, 엉뚱한 말과 이상한 행동 등의 증상들이 동반되므로 건망증보다 더 걱정스러운 병이다.

기억을 너무 잘하는 것도 병이다. 살면서 고통스러웠거나 힘들었거나 당황스러웠거나 우울했던 기억들이 잊히지 않고 생생히 기억난다면? 그것 또한 힘들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너무 자주 떠올라 심각한 심리적 고통과 혼란을 주는 병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는 병이다. 너무나 끔찍하고 힘들었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 원하지 않을 때 불쑥불쑥 나타나고 또한 꿈에도 나타나며 그때의 힘든 감정까지 생생히 기억난다면 너무 힘들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해서 오는 힘든 병이다. 그래서 기억만큼 망각이라는 기능도 중요한 것이다.

기억할 것은 잘 기억하고 잊어버릴 것은 잘 잊어버리는 것, 바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곽호순병원 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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