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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一飯王孫感慨多 (일반왕손감개다·왕손에게 한 끼 밥을 주어 감개 많긴 하였으나)
不須菹醢竟如何 (부수저해경여하·처형될 줄 모른 것 7까지야 어찌하리)
孤墳千載精靈在 (고분천재정령재·외로운 무덤 천 년 뒤에도 정령은 있을 테니)
笑煞高皇猛士歌 (소살고황맹사가·한 고조의 ‘맹사가’ 를 비웃으리)

이 시는 한 고조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한 한신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한 고조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표모(漂母·빨래하는 노파)가 한신의 인물됨을 알고 한 끼 밥을 주었으나 처형당할 것까지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나 맹사(猛士)를 얻어 나라를 세우고 맹사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게 하겠다고 호언한 고조가 오히려 맹사를 버렸으니 일개 표모일망정 혼령이라도 남아서 유방을 비웃을 것이다. 처음부터 한신을 버린 항우나, 써먹고 버린 유방이나 모두 이 표모보다 못하다. 표모가 설마 잘되었을 때의 대가를 생각하고 한 끼 밥을 주었겠는가.


이숭인은 고려 말기의 학자로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도은(陶隱)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문재가 뛰어났다. 친명파로서 정치적 격변기에 친원파에 의해 배척되어 자주 유배 길에 올랐다. 그러나 친명파인 정몽주가 피살되자 다시 정몽주파로 몰려 정도전 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방원이 즉위 후 이조판서를 증직하고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는 문사(文士)로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고 시 역시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목은, 포은과 더불어 고려 말의 삼은으로 일컬어진다.

도은의 죽음과 관련된 일화이다. 도은은 삼봉 정도전과 함께 목은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목은이 도은이 지은 ‘명호도(鳴呼島)’란 시를 보고 크게 칭찬했다. 며칠 뒤 삼봉 역시 ‘명호도’를 지어 목은에게 보였다. 목은이 이를 보고는 ‘좋은 작품이고 잘 지었다, 그렇지만 도은의 시 같은 것은 많이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봉이 권세를 쥐었을 때 도은은 삼봉의 심복인 황거정에게 피살되었다. 사람들은 ‘명호도’가 빌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서거정의 ‘동인시화’ 중에서). 

참고로 도은이 지은 ‘명호도’의 일부분을 덧붙인다. 마치 그들의 장래를 예측한 것 같아 섬뜩하다. 君不見 (그 대는 보지 못했는가) 古今多少輕薄兒 (고금의 수많은 경박한 소인들이) 朝爲同袍暮仇敵 (아침엔 친구였다가 저녁엔 원수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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