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에 인파가 구름떼처럼 모였다. 그들은 헌법 제1조 2항에 박힌 이 나라의 주권자다. 당연히 어떠한 것도 요구할 수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후 오늘의 대한민국도 프랑스혁명 때와 유사하다. 촛불민심을 두고 ‘자유’라고 보는 이도 있고, ‘혼란’과 ‘광기’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중구난방일 수도 있다.
문제는 한 달 이상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400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기한을 나흘 앞두고 졸속처리 될 운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며 북한 핵과 대미(對美) 외교를 손 놓고 있다. 야당은 내년도 정권 장악이라는 콩밭에 가 있다. 모두 문제 해결능력이 없고 비전과 대안이 없으니 답답한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실을 말해야 한다. 가슴을 치며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아무 소리 못하고 지배받던 유신과 5공의 독재 정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국수습책을 낼 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여론만 살펴도 된다. 사명(使命)의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간신배에 둘러싸인 이 정권의 여론 수렴능력은 민주정부 30년 역사가 부끄러울 정도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이미 16세기에 여론정치를 말했다. “ ‘공론(公論)’이 조정(朝廷)에 있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공론이 항간에 있으면 그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만약 위아래 모두 공론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지금 공론은 거리에 나뒹굴고 거리 뒤의 골목 사랑방에 있으니, 이거야말로 난국(亂國)이 아닌가.
한시바삐 박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는 촛불민심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탄핵과 사임(하야)이 최선인가 라는 물음에 누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나?. 박 대통령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회가 뽑은 책임총리에게 행정권을 넘기고 진퇴를 포함한 정치일정을 제시하라. 박 대통령과 야권의 타협만이 정국수습으로 질서와 진보를 동시에 이뤄내는 최선의 해법이다. 책임총리가 이끄는 과도내각은 대한민국 최초의 정권교체요 최초의 민주정부인 제2공화국을 연 허정내각 모델이다. 국정조사와 특검결과에 따라 조기사임도 가능하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지금은 야당이 책임총리를 안 받으려고 하고, 박 대통령은 책임총리를 임명할 의사가 없다. 그러면 죽어나가는 것은 이 나라의 경제요 민생이다.
2014년 ‘비선 국정개입 의혹’이 어른거릴 때 본지는 적실성 있는 행정학자로 유명한 김병준 교수와의 인터뷰를 신년대담(2015년 1월 14일자)으로 내보냈다. 공론을 정확히 파악한 현자에게 현책(賢策)을 묻기 위해서였다. “지금 청와대는 시스템 자체가 안 됐어요. 대통령이 일을 직접 챙기면 안돼요.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면 옆에 있는 심부름꾼이 힘이 생기는 거에요.” 그 심부름꾼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한 최순실이다. 오늘날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예견력이 새삼 놀랍다. 그는 국정운영 시스템을 강조했다. 국가 개조, 국가혁신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은 한 마디로 제도다.
현 제6공화국 30년 체제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제도(선거 정당 헌법)를 도출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믿을만한 정치세력도 없다. 결국 대한민국의 힘은 우리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라도 현명하는 수밖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