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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동상] 바람과 바람

김상환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1월28일 17시25분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 날갯짓도 하지 않고 날개만 쭉 펼친 채 평온하게 날아간다. 역풍이 불거나 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면 저렇게 평화롭게 날수가 없다. 아마도 바람이 부는 방향과 목적지가 같아 저와 같이 날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세상의 바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해방 직후 혼란기에 태어나, 다섯 살 때 한국전쟁의 회오리바람을 만났다. 아직 말도 배우기 전에 아버지를 잃고 두엄 냄새가 진동하는 시골에서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피폐한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20대에 무작정 상경했다. 부스럼 딱지처럼 덕지덕지 붙은 가난의 딱지를 떼어버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행상을 하여 근근이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파트너의 배신으로 뜻밖의 역풍을 만나 내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만을 탓할 수가 없다. 바다의 푸른 물결을 가르고 가는 돛단배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돛단배는 바람의 힘으로 간다. 바람의 방향과 목적지의 방향이 달라도 상관없이 잘도 간다.

우리 인생에서 일이 잘 풀리면 순풍,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면 돌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을 먼저 파악하고 돛을 조정하여 목적지로 향하는 사공과 같은 지혜를 터득하면 성공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사공은 자신의 힘으로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힘으로 맞서지 않고 지혜로 싸운다. 상대의 힘을 활용하여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가며 콧노래를 부른다. 이런 사공의 모습이 바로 삶의 교과서다.

돛단배뿐만 아니라 주변을 살펴보면 바람의 힘에 의해 생겨나는 자연 현상이 참으로 많다. 팔랑개비처럼 바람의 힘으로 동력을 얻은 풍차와 하늘 높이 나는 연, 그리고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식물들이 있다. 이와 같이 바람은 자연을 변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나는 바람이 내는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세상에는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수없는 선율로 가득 차 있다. 바람 자체에는 소리가 없지만, 그것이 다른 사물과 마주칠 때마다 각각 다른 특유의 소리를 낸다.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소리를 낳고, 아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바람이 내는 소리 중에서 악기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다. 내가 처음 들은 악기 소리는 피리였다. 어린 시절 보리피리를 직접 만들어 불며 신바람이 나서 뛰어놀았다. 입으로 부는 바람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악기가, 대나무로 만든 피리와 퉁소다. 여기서 한걸음 더 발전한 악기가 하모니카와 풍금 소리가 아닐까 싶다. 1953년 여덟 살 때 국민학교 교실에서 처음 들어 본 풍금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했다. 풍금을 치고 있는 선생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와 같이 우리들 생활 속에서도 마음속에 부는 바람을 잘 운영하면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삶이 된다.

인생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바람이 분다. 평생 순풍만 부는 삶도 없고, 역풍만 부는 인생도 없다. 또 어떤 바람도 지나가게 되고 언젠가는 멈추게 된다.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갈 때,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줄 때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행운이라고 말하고, 뜻밖에 아주 놀라운 결과를 낳으면 기적이라고 한다. 나는 사업을 할 때 두 차례나 이런 바람을 만나 동일업체에서 대박 돌풍을 일으켰던 경험이 있다.

누구나 순풍을 만나 순탄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나 연처럼 세상의 바람을 잘 타서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 했다. 바람의 흐름을 보는 지혜도, 바람을 다루는 재능도 없었다. 다만 참고 견디는 것 하나로 겨우 버티었다. 어린 시절부터 거친 바람과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쳐 왔던 경험들이 뿌리로 자리 잡고 있어 그나마 견딜 수가 있었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뿌리의 힘까지 보태져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지켰다.

조금 전 코끝에 향기를 배달해주었던 바람이 또 불어온다. 그러나 흘러간 시간처럼 한번 지나갔던 바람이 다시 불어온 것은 아니다.

손을 들어 바람을 잡아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내 인생도 부질없는 일로 허송했던 시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지나가는 바람은 마른 잎 하나라도 건드리고 가지,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도 시간을 헛되이 낭비 한 것이 아니라 한때 침체기가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바람은 세상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온갖 사물을 흔들어 보고 뒤집어 보고 밀쳐본다. 나도 이제 다 늦은 나이에 살랑살랑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세상 구경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누구나 인생을 건강하고 멋있게 보내고 싶은 것이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향기로운 바람에 내 마음속 바람을 실어 보낸다.

■ 당선소감

김상환씨= 1946년 전남 강진 출생, 2006년 ‘월간문학’ 수필 당선, 2005년 샘터사 샘터상(생활수기), 2007년 타고르 탄신기념 문학상(수필), 2008년 브레이크 뉴스 문학예술상(시), 2010년 여성문예원 공모전 우수상(수필), 2013년 대표에세이 문학상.
저는 평생 사업을 하느라 문학에 곁눈질도 못 했습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평생 애써 키워온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그 후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글을 쓰는 일이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아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지만 아직도 문학의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작품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 응모했었습니다.

그동안 수필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몸에 맞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남의 옷을 잠시 빌려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금년은 제 나이 일흔 살이 되는 해입니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가을 들판에 보리씨를 심는 농부의 심정으로 문학의 싹을 키워가겠습니다.

졸작을 뽑아주시고 저에게 뜻하지 않는 기쁨과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경북일보 문학대전 관계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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