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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동상] 희망단소

박지영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1월28일 17시35분  
“여보! 큰일났어. 다육(多肉)이들이 이상해!”

새벽 5시 반, 언제부턴가 아침잠이 없어진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5시 반이란 시간은, 나에겐 잠을 자야하는 새벽인데 남편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을 의미한다. 못 들은 척, 달아나버리려는 잠을 꽉 붙잡으려고 이불을 머리까지 푹 눌러 덮었다. 재촉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자긴 틀렸구나 싶어 비몽사몽 베란다 화분 쪽으로 가보았다. 다육이들이 이상하다. 싱싱하던 푸른 잎들은 누런빛을 띄고, 오동통하던 줄기들도 힘이 없다.

그 다육이들은 화분 잘 키우기로 자칭 타칭 재야의 고수인 친구가 몇 달 전 우리 부부에게 준 것이다. 정년퇴직도, 명예퇴직도 아닌 희망퇴직을 한 남편을 걱정하는 내게, 위로 대신 건넨 선물이다. 퇴직한 중년 남자의 상실감과 그 가족의 어려움은 매스컴을 통해 워낙 많이 알려 진 터라 친구는, 경험한 적 없었지만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지만 그 선물의 주인공은 남편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요란한 말로 위로하지 않았지만 희망퇴직 후 아직 희망을 찾지 못한 남편에게, 다육이가 자라는 희망이라도 안겨주고 싶은 친구의 마음을 말이다. 동시에 그것은 삼 십년지기 친구인 나를 위한 마음임을….

친구는 키우고 있는 다육이들 중에 예쁘고 품종이 귀한 놈으로 골랐다며 귀여운 생색을 냈다. 게다가 말로 설명해도 될, 다육 각각의 특성과 키우는 법을 상세히 메모한 유인물 한 장도 함께 건넸다. 그 유인물을 전해 받은 남편은 마치 상급기관에서 내려온 문서를 받은 것처럼 기분 좋은 부담감을 느끼는 듯 했다. 예행연습도, 준비기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남편의 텅 빈 일상을 친구는 ‘다육 키우기’라는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므로 조금이나마 메꿔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속 깊은 친구의 마음에다 마치 신입사원 같은 남편의 열정이 더해져 다육은 이사 온 우리 집에서도 낯가림 하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오늘 그 다육이들이 이상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남편이 그렇게 정성을 쏟았는데 말이다. 남편에게 다육이 키우기는 중요한 일상이다. 아니 다육 자체가 중요한 존재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물을 줘라, 장마 때는 물을 줘서는 안 된다는 등 다육 키우기 매뉴얼이 적힌 종이를 남편은 꼼꼼히 읽고 또 읽었다. 식물에 큰 관심이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은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인지 내가 보기에 필요 이상으로 다육에게 관심을 쏟았다. 남편은 물 조리개를 들고 하루에도 몇 차례 다육 앞에 서성거렸다. 다육이 사람처럼 하루 세끼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히 내가 남편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아직 인생2모작을 설계하지 못한 남편의 유일한 일상인 다육 키우기에 고비가 온 걸까? 놀란 우리는 핸드폰으로 다육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며 원인 규명을 부탁했다. 친구의 진단은 이러했다. 소식하는 다육을 과식하게 만들었구나….

남편은 오십 중반에 이십 여 년을 다닌 회사에서 이름 좋은 희망퇴직을 하였다. 본인이 희망하여 그리 불리는지, 아니면 앞으로 희망 있는 삶을 살라고 그리 불리는지는 알 수 없다. 회사에서 멋진 이름을 붙여 주어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렇게 꿈보다 해몽이 좋은 희망퇴직을 하였다. 남편은 퇴직 후 애써 담담한 척하며 해외여행이다 창업이다 뭐다 견적 뽑느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빴다. 집에는 여행안내책자와 파워블로거 글들이 돌아다니고 시니어 일자리센터의 브로셔들도 수북이 쌓였다. 결재할 서류도, 검토할 서류도 없는 남편의 책상엔 온갖 출력물들과 책자들이 수북했다. 본 적 없는 남편의 사무실 책상이 이러했을까? 남편은 출근대신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갔고, 서류 결재 대신 인생 2모작을 위한 웹 서핑을 한다. 커피는 부하직원 대신 내 몫이다.

몇 달 전, 남편은 곧 해외여행 갈 예정이니까 일정을 비워 놓으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친구들과의 여행 약속도 취소하고 다니던 문화센터 강좌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문화센터는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 학기 안내 책자가 집으로 배달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창업과 여행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오전을 보낸 남편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온 책자를 뒤적였다. 문화센터 책자는 내 앞으로 오는 터라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웬일일까 생각하는데 남편이 단소 강좌에 관심을 보이며 한번 배워볼까? 라고 한다. 취미라고는 거래처 접대 때문에 배운 골프가 전부인 남편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기는 게 반가웠다. 무엇보다 시간 맞춰 갈 곳 없어 집안에서만 바쁜 남편이 안쓰러웠다. 남편도 나의 지지가 힘이 되었는지 다음 학기에 단소교실 신청할까 라며 자세를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강좌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단소를 사야 되네? 음, 근데 30만 원이나 하네.”라며 다음 페이지로 휙 넘겨 버린다.

나는 그때 보았다. 희망퇴직의 민낯을. 몇 달째 창업 설명회니 해외여행이니 견적만 뽑고 있을 때도 몰랐다. 내가 보고 있으면 핀잔주던 홈쇼핑 여행상품을 넋 놓고 보고 있을 때도 몰랐다. 아무리 퇴직을 하였지만 그리 작지 않은 기업의 부장으로 퇴직한 남편에게 30만 원은 취미생활하기에 그리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가족을 위해 청춘을 바쳐 한평생 일한 남편이 자신을 위해 그 정도의 돈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비애감마저 들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가 유행이 된 적 있다. 열심히 일한 남편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마음까지 자유로워진 것 아닌가 보다. 이젠 무엇이 또 남편의 마음을 구속하고 있는 걸까? 안타까웠다.

남편은 문화센터 안내책자를 덮어 버리지도 못하고 강좌 신청을 하지도 못하고 괜히 내 눈치만 본다. 그 눈빛은 마지막 퇴근길, 그 날을 닮았다. 25년 동안 달그림자 벗 삼아 퇴근한 남편은, 저 혼자 눈치 없이 찬란한 햇빛에 눈 부셔했다. 눈이 시린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즈음 나는 친구 몇몇과 눈썹과 아이라인 문신 시술을 예약 해둔 상태였다. 대부분 친구들은 십 년 전에 했던 문신이 색깔이 바래 다시 하는 거였고, 나는 시술이 아프다는 말에 무서워 몇 번을 망설이다 큰 결심한 거였다. 동안(童顔)에 관심 많은 친구의 지인이 3년 A/S보장에다 일반 고객보다 싸게 해서 30만원에 해준다고 했다. 좋은 조건이라며 다들 신나했고 나도 더 미루다가는 영영 못 할 것 같아 동참했다.

나는 남편에게 단소 강좌를 들을 거냐며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잠시 볼일 보러 간다며 나와 이번 시술을 주도한 친구에게 전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워서 못 하겠다며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화센터에 단소 구입방법을 물어 본 뒤 악기점들이 모여 있는 낮선 동네를 찾아갔다. 상점들의 맑은 유리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이가 드니 눈썹도 희미해지는지 낯설다. 흐린 눈썹위로 단소 부는 남편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단소를 구입하고 가게를 나오며 남편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냈다.

여보!
더 늙어 작은 단소 구멍이 안 보이기 전에
마른기침으로 호흡 끊기기 전에
지난 밤 날 안았던 두 팔뚝의 힘으로 단소 들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 들려주기 바라요.

이제 남편이 단소 배우러 다닌 지도 두 달이 다되어 간다. 얼마나 단소 연습에 열심인지 모른다. 주말에 친척들과 놀러 가거나 친정에 농사일 도우러 갈 때도 단소를 들고 간다. 남들 삼겹살 구워 먹을 때 남편은 얼른 먹고 계곡 바위에 앉아 연습을 한다. 무슨 신선이라도 된듯하다.

단소에 푹 빠진 남편은 다육에게 예전만큼 정성을 쏟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한 달에 두 번 기억해서 물을 줘야 할 정도이다. 남편의 단소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동안 다육도 옛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다리에도 살이 통통히 올랐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푸른빛을 다시 보이며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 수상 소감

박지영씨= 경주출생, 대구은행 수필부문 장원 수상.
부족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분들과 MBC수필창작반 곽흥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희망’있는 삶을 살라고 ‘특별희망퇴직’이란 이름을 붙여준 그 회사에도 감사해야겠네요.

‘열심히’ 보다 ‘즐겁게’가 제 소신입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쓰겠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남편과 아직도 우리 부부의 희망인 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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