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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상] 가볍게, 리허설

김보성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1월29일 17시32분  
아버지가 탄 열기구가 우치사르 성채 위로 날아오른다. 일행들이 색색의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들은 사진 찍기 바빠 아버질 눈여겨볼 틈이 없다. 상기된 얼굴의 남동생을 살피다가 고갤 돌릴 때다. 페가수스 열기구에 탄 아버지 모습이 얼핏 보인다. 순간, 숨이 딱 멈추고 시선이 붙박이 된다. 굳어져 가는 아버지 표정에 비장함이 비쳐서다. 불거진 광대뼈에다 황소숨을 몰아쉰 탓인지 눈동자엔 핏발이 서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지만 태연한 척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하지만 신경은 온통 아버지에게 쏠려있다. 그때 이상한 낌새를 챈 건지 남자 한 명이 페가수스 열기구를 쳐다본다. 들떠있던 일행들이 하나 둘 입을 닫는다. 그들 중 몇 사람은 누구에게 보내는 건지 모르게 손을 허공에다 젓는다. 열기구 무리에서 벗어나 하늘 높이 치솟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끝까지 표정을 숨긴다. 예상치 못한 당혹감에.


우리 집은 철길 옆, 테이블 네 개를 딸랑 갖춘 식당이다. 처음 문을 열 땐 축구며 배드민턴 동아리 사람들이 들끓었다. 근육질 남자를 좋아하는 엄마 취향에 딱 맞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엄마의 헤픈 웃음으론 그들을 오래 잡아둘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열댓 살 무렵 성장이 멈춘 듯 보이는 아버질 보려는 아줌마들이나, 엄마를 꼬드겨 공짜 술 먹으려는 동네 아저씨들만 모여들었다. 어떨 땐 테이블 네 개가 모자라 단칸방에 손님을 받았다. 동생은 짜증스럽다며 밖으로만 나돌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나는 아버지, 엄마가 번갈아 운영하는 식당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어쩌다 두 사람이 함께 식당에 있을 때면 여지없이 싸움이 났다. 겹치는 거 하나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하고 우릴 낳았는지, 생각할수록 비릿했다.

아버지, 엄마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아귀찜 요리를 잘한다는 거였다. 생아귀가 아닌 말린 아귀로 찜을 잘 만들기로 손님들 사이에선 꽤 소문이 나 있었다. MSG 듬뿍 들어간 찜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엄마의 웃음과 아버지의 장애는 그들을 즐겁게 해 주는 눈요기꺼리였다. 낮술 거나해진 여자들은 엄마가 장애인 남편을 무시하고 난잡하다고 비아냥거렸고, 밤술 취기가 오른 남자들은 아버지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키까지 작아가지고 마누라를 오지게 팬다고 안주거리 삼았다. 콩가루 집안을 쪼개듯 기차는 자주 오갔다. 형광등은 질린 낯빛을 파르르 떨고 술잔은 지진이 난 듯 온 몸을 흔들어댔다. 아귀의 퀴퀴한 냄새며 콩나물 비린내, 하수구 악취가 집 구석구석에 숨었다가 영노처럼 나타났다. 설거지하다 떨어진 그릇을 집으려 고갤 숙이면 어딘가에 숨었던 엄마의 지린내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덕지덕지 들러붙은 냄새로부터 탈출하는 게 유일한 내 꿈이었다. 그런 날 하필이면 냄새의 감옥으로부터 도망치다 기차가 덮치는 꿈을 꿔야만 했다.

목소릴 내뱉지 못하는 아버지는 인공후두기를 써야 대화가 가능했다. 듣는 게 힘들어선지 걸핏하면 편두통을 앓았다.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70데시벨 이상이어서 보청기를 꼈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아는 남자 중에서 가장 시끄러웠다. 평소엔 조용하다 남의 놀림감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온몸이 울림통이 되어 딴 사람으로 돌변했다. 특히 얘길 나누던 사람이 등 돌리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본인의 수화를 눈여겨보지 않는 건 모멸이나 마찬가지라며 주먹 쥔 손을 벌벌 떨었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게 자존심 짓밟히는 거라 생각했을까. 그 때문인지 인공후두기 쓰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아버질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수화를 할 때마다 몇 발짝 떨어져 힐끗거릴 뿐 시선은 먼 산에 두고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를 향한 팔 휘두름은 더 세지고 속도도 평소보다 빨라졌다. 손찌검을 용케 피한 엄마는 등을 돌린 채 곁눈질로 입을 씰룩거리면서도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입 모양만 보고서도 화를 버럭 냈다. 길길이 날뛰다가 왼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낚아채 홱 돌려놓았다. 분위기가 험악해 질 무렵이면 남동생 팔을 잡아끌었다. 단칸방은 우리에게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줬다. 곧이어 뺨 올려 부치는 소리, 무언가가 서로 부딪쳐 나는 둔탁한 소리, 소주병이 깨지며 터져 나오는 비명이 순서에 맞춰 고막을 때렸다. 궁지에 몰려서도 엄마는 매몰찬 말을 그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놈, 천하의 인간 말종, 지 버릇 개 못주는 진장 맞을 인간, 치 떨린다, 치가 떨려! 내가 새끼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열 번은 도망갔어. 알아?”

엄마가 내지른 소릴 듣고 밖으로 나가보면 몸 여기저기에 구렁이가 똬리 튼 것처럼 붉은 자국이 칭칭 감겨있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씩씩거리던 엄마는 뽑힌 머리카락 한 움큼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터진 입술에 피딱지를 매단 채, 젓가락으로 복숭아통조림을 꿰어 먹으며 한 맺힌 말을 줄줄 내뱉었다. 돈께나 있단 말에 꼬여 와 거지꼴로 살아온 건 수없이 들은 얘기였다. 귀를 막은 나는 응어리진 말들을 속으로만 뱉어내곤 했다.

‘아니 떠나, 떠나 버리라구! 그러면 단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야! 둘 다 꺼져버려. 나의 인내심이 동나 미쳐 날뛰기 전에, 이 망할 집구석에서 떠나라고!’

입안에서만 외쳐댔으니 말은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방백은 늘 매운 찜 속의 뜨거운 수증기속으로 흩어져버렸다.

황사로 뒤덮인 목요일이었다. 아귀 사러 새벽시장에 가던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습관적으로 무단 횡단을 하다 뺑소니차에 친 거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엄마는 지역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된 인물이었다. 코딱지 만 한 집을 저당 잡힐 각오로 돈을 빌리러 다닐 무렵 엄마가 숨을 거뒀다. 동네 사람들 권유에 못 이긴 아버지는 목격자를 찾는다는 현수막을 뒤늦게 가로수에 매달았다. 엄마는 나보다 먼저 기차의 무시무시한 소음으로부터 해방됐다. 침울한 분위기에서 엄마의 장례가 치러졌다. 술 취한 아버지는 버릇처럼 팔을 휘젓다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뜨렸다. 화풀이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 것처럼…. 목덜미며 흰자까지 벌게진 동생은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았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소식을 들은 동네 아줌마들이 파리떼처럼 꼬여들었다. 누구를 위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술잔들이 자정 무렵까지 오갔다.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검은 신발을 꿰어 신던 옆집 아줌마가 말했다.

“독종이다, 독종. 에미를 닮았나? 그래도 핏줄인데 우째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냐?”

맞는 말이다. 독종…, 수긍하면서도 옆집 아줌마의 주둥아리를 물어뜯고 싶었다. 대낮부터 술 취해 아버지랑 노래방이며 저수지며 휘젓고 다니는 동안 떠들어대던 아가리를.

엄마는 화장한 뒤 수목장 하기로 했다. 산에 뿌리는 건 불법이라 들키면 안 된다는 말에 뼛가루를 조팝나무 아래 뭉텅뭉텅 던졌다. 한지에 붙어 있던 나머지 가루도 탈탈 털었다. 가루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발아래 떨어졌다. 하얀 흔적조차 운동화에 남기지 않으려다 금낭화 모가지를 밟아버렸다. 깜짝 놀라 발을 뗐다. 연둣빛 풍경을 등진 채 장의차에 올랐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눈을 찔러댔다. 난데없이 멀미가 났다. 이틀 동안 밤샘을 한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그때 버스 뒤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갤 돌려보니 이모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며 훌쩍이고 있었다. 봄 햇살만큼 신경 쓰이고 짜증스런 울음소리였다. 쌍소리까지 섞어 빌려간 돈 갚으라고 침 튕겨가며 싸우던 사람이 눈물이라니….

한 사람 사라진 공간이 이렇게 시원할 줄 몰랐다. 단칸방이며 주방도 넓어 보이고 이불까지도 커 보였다. 설레었다. 엄마를 찾아오던 불나방들이 종적을 감췄다.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던 봄날은 간다 노랫소리와 토사물의 시큼털털한 냄새도 사라졌다. 엄마의 빈자리에 묘한 희열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열흘이 넘도록 고주망태인 채 잠든 아버지는 깨자마자 술부터 찾았다. 옆집 아줌마가 녹두죽과 김치를 가져왔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 잘 챙기라는 당부와 함께. 그마저도 아버진 먹기를 마다했다. 녹두죽은 모양이나 빛깔에 비해 맛이 일품이었다. 새로 담근 김치도 감칠맛이 났다. 폭 퍼진 밥알 위에 채 썬 당근과 부추를 갖은 양념으로 치댄 배추겉절이를 더하니 혀가 절로 움직였다. 동생과 함께 녹두죽 한 냄비를 게 눈 감추듯 비웠다.

넙치처럼 누워있던 아버지가 나가버렸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명의 부재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서. 기회다 싶어서 말려 걸어둔 아귀를 쓰레기봉지에 쓸어 부었다. 내 눈치를 살피던 동생은 냉장고의 술을 죄다 꺼냈다. 곧이어 맥주를 쏟자 맥주 거품이 개수대를 메웠다. 몰래 한 잔씩 마신 습관 때문에 군침 돌던 소주가 맥주 거품을 지웠다. 구정물만 흘려보내곤 하던 개수대가 깨끗해졌다. 식탁 네 개는 구석으로 밀어 포개고 의자는 식탁 사이에 끼워 넣었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바닥을 물로 씻어낸 뒤 락스를 풀어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 더러운 침과 불결한 농담 찌꺼기가 덕지덕지 눌러 붙은 공간도 말끔해졌다. 마른 걸레로 바닥을 훔치고 나니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다. 정연하고 반듯한 공간이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방구석에 있던 낡은 책상을 주방 한가운데 놓고 비워 두었던 책장을 벽에 갖다 붙였다. 연필과 볼펜이 꽂힌 머그잔이이며 아끼던 책으로 책장을 메웠다. 가운데다 낡은 스탠드를 올린 뒤 불을 밝혔다. 백열등에서 신선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한 게 얼마 만인지, 그런 순간이 있긴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동생과 마주앉아 커피를 마셨다. 고요함이 커피 향과 어울려 두 눈이며 코끝으로 스몄다.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꿈조차 꾸지 않는 일주일이 지나갔다. 소음과 퀴퀴한 냄새에서 해방된 게 바로 꿈꾸던 세상 아니었나. 아무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시간, 아버질 닮아 말을 심하게 더듬던 동생도 침묵의 자유를 만끽했다. 나는 동생이 아끼던 코맥 매카시의 소설책을 펼쳐들었다. 지구멸망 후 아들을 지켜내려는 아버지의 치열한 생존기가 담긴 내용이었다. 책을 펼치자 오른쪽 귀퉁이에 빨간 글자가 한 자씩 적혀있었다. 327쪽 마다.

죽.어.죽.어.뒈.져.버.려.뒈.져.버.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내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꼬맹이, 말문이 늦게 트인 데다 말더듬까지 심해 엄마에게 늘 쥐어 박히던 그 애의 책에 적힌 빨간 글씨는, 슬펐다. 집 나갈 때 꼭 데려 가겠노라 약속했는데도 안심이 안 되었던지 내 손을 꼭 잡고 자던 겁보가…. 그런 동생을 두고 엄마는 커서 호강시켜 달라 했던가? 곁을 서성거리는 숱한 남자들을 놔두고. 엄마가 늘 취해 있었던 까닭이 그 때문이었을까? 맨 정신으로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엿 같아서.

혼자여서 야릇했던 설렘의 순간은 며칠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게 시들해졌다. 어쩐 일인지 여기저기가 결리고 쑤시기 시작했다. 누군가 몸을 높이 들었다 패대기친 듯, 먹어도 허기지는데다 입안마저 까슬까슬하고 열까지 오르내렸다. 엉큼한 눈빛에다 가래침에 뒤이은 술주정도 사라졌고 집은 내 방식대로 정돈됐는데 무언가 빠져 나간 듯 허전했다. 뭔가가 비워지고 나면 늘 개운했는데, 두통이며 현기증이 나는 건 왜일까.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한동안 들리지 않던 기차의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게 그때였다. 기적을 동반한 철거덕거리는 소리가 엄청난 파도로 변해 덮쳐왔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울음이 터졌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먹이던 나는 두 팔 두 다리를 뻗고서 대성통곡했다. 왜 울음이 나는지, 뭐가 슬픈지, 알 수 없어 더 슬펐다.

아버지가 귀가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작은 키에다 숙여진 허리는 한 줌도 안 되어 보였다. 광대뼈에 가려져 움푹해진 얼굴은 그늘이 더 깊어졌다. 눈여겨 내려다본 적 없는 가르마 주위는 휑했다. 원래 머리숱이 없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제대로 불러본 적 없는, 옆에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아버지는 수화도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바뀐 집안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밥은 거의 먹지 않고 효능을 알 수 없는 약을 소주랑 삼켰다. 먹는 약의 가짓수가 더 늘어났다.

자리에 누웠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난 건 귀가한 지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뜬금없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터키, 수많은 해외 관광지 중 하필이면 12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곳을 택했다는 게 생뚱맞았지만 묻진 않았다. 아버지가 터키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한국전쟁 당시 파병을 했다거나 널리 알려진 음식 케밥이 있다는 정도일 텐데. 나나 동생도 터키에 대해 아는 게 없긴 마찬가지, 거기다 가족이 함께 간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가족여행이라면 엄마 살았을 때 마산 돝섬을 다녀온 게 다였다. 그칠 줄 모르는 술주정 때문에 짜증스런 기억만 남아 있는 곳. 방학도, 명절도 아닌 시기에 여행을 가자는 의도가 가늠되지 않았다. 동생 학교는 또 어쩌라고. 내 반응이 신통찮다는 걸 안 아버지는 휴대폰을 코앞에 디밀고 흔들어댔다. 액정에는‘리얼해피여행사, 강민구 외 2인, 8박 9일 예약 확정, 5월 29일 출발’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달력을 펼쳤다. 방학이 되기까지는 한 달 넘게 남았는데, 바깥을 떠돌던 아버지의 정신이 제대로 가출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속 모르는 아버지는 불콰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려가며 손짓도 요란하게 휴대폰을 두드렸다. 반응을 보여 달란 뜻이었다.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휴대폰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를 건성으로 살피곤 하던 이웃 아줌마들 얘기가 떠올랐다. 이런 장사하기엔 아깝다고, 점잖은데다 책을 많이 읽어 그런지 모르는 게 없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뱃속에서 불기둥이 울컥 치솟곤 했다. 당신들이 살아봤어,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잘 알아, 니들한테 잘해주니 마냥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미친 것, 집구석에 틀어박혀 잠이나 퍼질러 자! 라고 퍼붓고 싶었지만 미소만 잘근잘근 씹고 말았다.

내 뜻과 무관하게 여행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의논도 없이 덜컥 일을 벌이는 건 아버지의 오랜 습관이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보다 당혹감이 더 비중 있게 다가왔다. 여행 경험이 없는 탓에 무얼 준비해야할지 몰라 인터넷부터 뒤지고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여행사 직원에게 설명을 듣긴 했지만 첫 여행인데다 어떤 걸 챙겨야 할지 몰라 꺼내 놓은 준비물이 산더미 같았다. 각자 배낭을 챙기고도 대형 캐리어 가득 짐을 쑤셔 넣고 집을 나섰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12시간 동안 하늘에 떠있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더했다. 동생과 함께 약국에 가서 멀미약도 사먹었다. 말없는 강철 인간은 멀미조차 하지 않을 거여서 챙겨줄 맘이라곤 없었다. 비행기에 앉아서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한국영화 2편에 외국영화 2편, 팝송 50곡 정도를 감상했다. 노루잠을 자면서도 기내식 두 번은 빠뜨리지 않았다. 몸이 퉁퉁 붓고 감각이 마비될 무렵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곧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나섰다. 동생이 배가 아프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피켓을 든 현지 가이드가 불러대는 소릴 들을 겨를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보이질 않아 대합실을 한참 돌아다녀야 했다. 볼일을 보고 돌아온 나와 동생을 만난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사이 현지 가이드가 아버지에게 따졌던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그는 발만 동동 굴렸던 것 같았다. 가이드는 우릴 보자마자 대뜸 화부터 냈다. 첫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도대체 휴대폰은 왜 안 받느냐, 몇 번이나 전화한 줄 아느냐, 여기를 한국으로 착각하면 여행 내내 곤란하다. 국제 미아가 되고 싶으냐는 등 반질반질한 검은 얼굴에 비아냥거림까지 섞어 우릴 몰아세웠다. 난처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아버질 향해 대수롭지 않은 표정만 지어보였다. 치밀어 오른 짜증 때문에 일정표를 펼쳐 부채질을 하고 있을 무렵 가이드가 수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인 게 눈에 띄었다. 귀찮게 생겼군. 피곤하겠어. 라는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공항을 나서자 담배며 향신료에서 뿜어져 나온 냄새가 코로 퀴퀴하게 스며들었다. 34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은 도로의 열기를 업고서 피부에 척 감겨들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정지선을 넘어온 차가 서로 뒤엉켜 정신마저 혼미했다. 까만 피부에 진한 눈매의 사람들이며 차도르를 온몸에 휘감은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혼란스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멍한 시선 사이로 가이드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빨리빨리 움직이라는 듯. 나는 속으로‘나쁜 새끼’라며 중얼거렸다. 돈께나 있어 보이는 일행의 짐은 웃어가며 들어주던 그가 우리 가족에겐 사감처럼 쌀쌀맞게 군 탓이었다. 난 원망어린 눈길로 아버질 내려다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오자고 한 건지. 아버지의 엉성한 머리칼이 흘러내린 땀 때문에 여러 갈래로 뭉쳐져 더욱 초라해보였다. 핏기 사라진 얼굴의 골 틈으로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낯선 곳에서 지낼 걱정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는지 방마저도 우리랑 함께 써야한다고 가이드에게 박박 우겼다.

둘째 날 관광은 새벽 네 시부터 시작됐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지나치게 길었다. 가이드는 여행의 조언을 하기보다 자기의 얄팍한 지식을 뽐내기 바빴다. 동생과 내가 눈을 붙이려할 때였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잠자러 이 먼 곳까지 왔냐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의 잔소리가 성가셔서 동생을 데리고 맨 뒷좌석으로 갔다. 선글라스를 끼고 잠이나 자야겠단 생각에. 아버지는 잘 들리지도 않는 귀로 가이드와 마주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만심 가득한 그의 목소리를 아버지는 용케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터키 역사에 그리 관심을 가졌다고.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대해, 로마의 배수시설에 대해, 클레오파트라의 전략적 애정관계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설명을 듣는 자세가 나쁘다고 판단했던지 마이크를 쥔 가이드가 말했다. 자기가 설명한 걸 질문할 거라면서. 졸지 않고 귀담아 들은 사람은 문제의 답을 쉽게 맞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대 도시 에페소의 셀수스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가이드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영광스럽게도 클레오파트라가 걷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 아래 형성되어 있는 시장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가이드의 까만 눈동자가 나와 동생을 힐끗 쳐다봤다. 자길 무시하고 잠만 잤으니 알 턱이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고갤 숙이고 있던 아버지가 휴대폰을 번쩍 들었다. 액정화면에 적힌 단어는‘아고라’였다. 가이드는 네, 맞추셨네요, 아고라’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하며 약속한 대로 중국산 보조 배터리를 던지듯 건넸다. 일행들은 아버지에게 냉소를 보냈다. 어쩌다 넘겨짚어 맞혔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문제를 거의 다 맞혔다. 일행들은 그때부터 나에게 질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버지 직업이며 여행을 오게 된 까닭에다 엄마는 왜 안 왔는지까지.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어떤 물음에도 대답 하지 않았다. 시큰둥해진 가이드는 더 이상 문제를 내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스쳐 지나는 풍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앞좌석에서 떠날 줄 몰랐다.

파묵칼레 관광을 위해 가까운 호텔에 도착해서 자고난 이른 아침이었다. 날이 새지도 않았는데 창밖에서 새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새의 지저귐을 뚫고 무슨 뜻인지 모를 중얼거림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관광 준비를 마친 뒤 동생을 앞세우고 뷔페식당을 향할 때 언론사 일행 중 누군가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애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고…, 나머지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며 고갤 끄덕였다. 그들 곁에서 식당으로 향하던 아버지는 고갤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차가운 나의 태도에 곁을 맴돌기만 할뿐, 가까이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이가 엇비슷한 언론사 임원들 틈에 끼곤 했다. 레스토랑엔 신선한 채소며 과일과 빵들이 셀 수 없을 만치 진열되어 있었다. 다양한 레시피의 올리브에 곁들여 열 가지 넘는 다채로운 빵을 먹으며 분위기에 취해있을 때 동생이 넌지시 말했다. 아빠 먹을 만한 게 너무 없다고, 첫날부터 삶은 계란 하나에 수박, 콩, 당근 따위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난 느닷없이 아버지를 챙기는 동생의 심중이 뜨악했다. 가족에게서 떨어져 앉아 당근을 깨물어먹는 아버지 모습은 검은 노새 같았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열 시간 달려온 터키 남부 데니즐리주의 고대 도시, 로마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는 방해석 성분의 온천물에 섞인 돌가루가 칼슘의 바위산을 형성한 곳이다. 로마의 고관들이 휴양차 들르곤 했다는 이곳 수온은 35도 정도라고 했다. 다랑이논처럼 야트막한 물길이 발목을 적실 정도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풍경은 아귀를 말리고 찌던 냄새 때문에 혼탁해진 안구를 정화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목화꽃이 활짝 핀 듯 보이는 주변은 목화의 성이라 지어진 애칭이 오히려 깜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늘색 온천에 발을 담근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꼰대가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오자고 한 건지 몰라도, 하늘 속을 걷는 기분이 나지 않아? 내 표현이 낯선지, 아니면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지 동생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그때 가이드가 코스 이동해야 한다면서 모이라고 고함을 지른 모양이었다. 붕 뜨는 기분을 가누기 어려웠던 나는 그 소릴 듣지 못했다. 자기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땜에 가이드는 나에게 대놓고 화를 냈다. 식당에선 시키지도 않은 커피를 주문해 주며 남몰래 윙크를 날리던 인간이 이럴 땐 안면몰수하고 딱딱 거리는 꼬락서니라니, 재수 없었다. 언론사 임원 부인 한 사람이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런 곳에서 가이드 눈 밖에 나선 좋을 게 없다고, 아가씨가 맘에 드는 모양인데 기분 좀 적당히 맞춰주면 모두가 편한 거 아니냐고 했다. 엄마 연배의 명문대출신, 터키석 반지를 낀 기다린 손가락, 나직한 말투, 명품 옷을 철갑처럼 두른 고상한 여인이었다. 미치겠네, 너나 잘하시죠! 라는 말을 뜨건 침과 함께 삼켰다.

일행들 꽁무니를 따라 히에라폴리스 언덕에 올라선 순간, 가이드 땜에 생겼던 짜증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에는 원형극장에다 신전이며 1,200기나 되는 묘지까지 조성되었고 온욕, 냉욕에다 스팀 사우나, 헬스와 호텔, 배수 시설에 환기장치를 두루 갖췄다며 얘기하는 가이드의 톤은 좀 전과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에 취한 듯 내뱉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1354년 대지진이 나서 사라졌던 도시를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1887년 발견하고 복원해 냈다는 것도 먼 나라의 전설 같았다.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게 우리 직지심체요절의 문화유산 지정과 엇비슷하다고 했다. 얘기에 심취해 있다가 고갤 돌렸을 때였다. 언론사 임원들 틈에 낀 아버지는 백조 무리 속의 까마귀처럼 초라해보였다. 아무리 나이가 비슷하다지만 왜 하필 그들 무리에 섞였는지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기가 찼던 나는 만 오천 명을 수용하도록 지어졌다는 원형 경기장으로 바삐 시선을 옮겼다. 오래 전 허물어졌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경기장의 위용은 대단했다. 온천욕장 테르메를 둘러싼 하늘색 풍광 또한 경기장 못지않았다. 로마에서 뽄떼라고 불렸다는 배수로가 이천여 년 전에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처음 간 여행인데다 가이드의 손짓에 끌려 이곳저곳 흔적만 남기는 일정은 벅찼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일행들을 향해 가이드의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일정에 차질이 생겨 계획된 곳을 다 둘러보지 못한다는 빤한 소리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차 네 대가 먼지를 가르며 달려왔다. 우리 가족은 언론사 일행들과 어울려 지프형 승합차 한 대에 몽땅 실렸다. 그럴 때도 아버지와 동생은 그들의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 경제며 정치에 대한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나누는 얘긴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지프형 승합차 차창에 턱걸이 하는 자세로 매달려 버섯모양의 바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공간에 있지만 동떨어진 세상에 머무는 듯 아버지는 무덤처럼 생긴 흙더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빛이 서서히 젖어 들고 있었다. 나는 청승 떠는 꼴이 보기 싫어 지프형 승합차가 일으킨 먼지 속에 무연한 눈길을 던졌다.

가이드에게 기분을 맞춰주라고 했던 언론사 임원 부인이 카파도키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야생마처럼 날뛰는 지프에서 이빨을 딱딱 부딪쳐가며 자랑하고픈 맘이 생긴다는 게 불가사의 그 자체였지만, 불과 일 년 전에 다녀간 곳이라 기억이 선명하다는 부연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여긴 데린쿠유 지하도신데 깊이가 85미터나 되고, 지하 8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기원전 7, 8세기 경 프리지아인들이 세운 곳으로 로마 제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도망 온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터키에서도 여러 곳의 지하도시가 있지만 이곳이 가장 크다는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도 아버지는 군데군데 놓여 있는 흙더미만 살피고 있었다. 오전에 테르메 온천지역에 갔을 때 층계를 따라 흘러내리던 물줄기를 보던 눈빛과 확연히 달랐다. 여행 일정의 끝머리에 다가갈수록 아버지 눈에는 읽어낼 수 없는 묘한 빛이 더해갔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야릇한 예감만은 떨치기 어려웠다.

동생은 방금 식사를 해서 그런지 토할 것 같다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덜 할 거라며 턱을 받쳐줬다. 그럴 때도 언론사 임원 부인의 자랑은 그치질 않아 내 머리조차 어지럽게 만들었다. 거주지 유적은 비잔틴인들이 세운 것으로 오천에서 삼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고, 예배당, 학교, 식당, 침실, 부엌, 마구간, 창고와 와인이며 올리브 저장고까지 갖춰져 있다고, 드넓은 땅이 자기네 소유인 양 떠들어 댔다. 차창 밖을 살피던 아버지는 임원 부인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반비례해서 키를 낮춰가며 고개마저 점점 더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 얼굴 어디에도 며칠 전 버스에서 가이드가 낸 문제를 척척 맞히던 패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시도 때도 없이 기차 소리가 덮치던 집안 풍경만을 떠올리며 임원 부인의 떠드는 소리를 다른 쪽 귀로 흘려버렸다. 여느 집 가장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졌을 텐데…, 남들이 성공하는 동안 아버지는 뭘 하며 하루하루를 까먹은 건지 깊은 숨만 새나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동생은 먹었던 걸 죄다 토해냈다. 그렇잖아도 우리 가족을 벌레 보듯 하던 언론사 팀들은 차가 일으킨 먼지가 채 가라앉지 않은 쪽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돌렸다. 차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도 동생을 도와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인상을 찡그리며 딴청을 피웠다. 몸이 안 좋으면 호텔에서 쉬지, 옵션은 뭣 땜에 선택했는지 모르겠다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선택 관광을 강요한 건 당신이지. 공짜도 아니고 제 돈 주고 탔는데 지금, 뭐라는 거야? 그렇게 만만해, 우리가!”

내가 따지고 드는 걸 본 언론사 임원 부인이 가이드 편을 들었다.

“참, 나이도 어린 아가씨가…, 나름, 입장이 있는 거 아니겠어. 해외여행이 처음인가 보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목덜미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불끈 쥔 주먹이 돌멩이처럼 단단해졌다.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버지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언론사 임원들의 떡 벌어진 어깨며 튀어나온 배와 번들거리는 얼굴을 곁눈질로 살핀 뒤 그들과 맞상대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가이드의 조소 띤 모습보다 말리는 아버지가 화를 더 돋웠다.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면서 집안에서는 폭군처럼 날뛰는 모습이라니…, 속이 뒤틀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본 나는 어깨에 몰렸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어느 누구라도 붙들고 물어뜯고 싶었지만 동생의 맘을 아프게 하긴 싫었다. 집에 돌아가면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악담으로 도배를 하리라 다짐하며 독기를 감췄다.

저녁 무렵, 관광을 마치고 들른 식당에서 아버질 곁눈질로 지켜봤다. 언론사 팀에 섞여든 아버지는 모습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들 틈에 낀 아버지는 고등어케밥이며 콩스프가 놓인 코너를 돌 무렵 간신히 보이곤 했다. 느끼한 맛을 떠올렸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 커다란 접시에 채소 몇 개를 담고 있었다. 평소에도 된장찌개나 김치가 없으면 숟가락을 놓던 사람이, 며칠째 거친 빵과 올리브 종류만 먹으려니 신물이 난 모양이었다. 이런 걸 예상 못한 아버지 행동이 넌더리나다가도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은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동생은 두 접시 가득 담아온 걸 순식간에 해치웠지만 갈수록 먹는 양은 줄었다. 여행 경험이 많은 다른 일행들은 깻잎통조림이나 컵라면, 고추장등을 챙겨와 서로의 식사를 챙겼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아버지와 동생을 번갈아 살폈다. 동생은 그나마 나았지만 아버지는 툭, 건들면 곧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으로 포크만 만지작거렸다. 그걸 본 나는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

여행 오일 째, 일정표에 카파도키아 열기구 투어를 한다고 적힌 날이었다. 전날 저녁 가이드는 비, 바람이 있거나 구름만 끼어도 안 되고 신이 허락해야만 열기구를 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터키 여행 와서 열기구를 못 탄 사람들이 수두룩하단 얘기에 아버지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열기구를 꼭 탈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수화하는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가이드랑 눈 마주치는 것도 싫어서 기다려보면 알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아버지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거대한 물방울 같았다. 어쩔 수 없어서 아버지 말을 가이드에게 전했다. 그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자기가 어떻게 내일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느냐는 듯. 귀찮았던 나는 아버지에게 표정으로 읽은 그의 뜻을 냉랭하게 전했다. 그 순간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작아보였고 옴츠러든 모양이 콩벌레 같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몸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밤늦게 커피를 마신 탓에 화장실 가려고 잠을 깬 시각, 방안을 둘러보니 스탠드를 켠 아버지가 뭔지 모를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림자는 아버지를 어둠의 벽속에 단단히 가두었다. 낯선 불안감이 팔뚝에 소름을 만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였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정전이 됐다. 나도 모르게 아빠란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꺼졌던 불은 몇 초 후 다시 들어왔다. 창밖을 내다보니 올리브나무가 바람에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의 바람이 분다면 보나마나 열기구를 못 탈 게 뻔했다. 두 번째 정전이 된 걸 본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하지만 벽 속의 아버지가 전하는 수화는 도무지 알아챌 수 없었다. 네 시가 가까워지자, 호텔 건너편 모스크에서 애잔 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하고 허스키한 남자 목소리로 걱정 말라며, 원래 그런 거라고 다독이며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았다. 차도르를 씌워 보듬는 듯 착각에 빠진 순간 불현 듯 엄마 생각이 났다. 조팝나무 아래 대충 뿌린 뒤부터 한 번도 생각난 적 없는 엄마…, 뒤통수를 맞은 듯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감정의 둑이 순식간에 터져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이불 속으로 끌어당겼다.

깜빡 잠이 든 순간 모닝콜이 요란하게 울렸다. 울었던 흔적을 화장으로 감춘 뒤 바삐 로비로 내려갔다. 창밖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 마구 흔들리던 올리브 나무가 한갓지게 서있는 거였다. 어제 저녁까지 뿌옇던 지평선도 탁 틔어 있었다. 열기구관리국에서 엘로라이트를 보내왔다는 가이드 목소리에 야릇한 긴장감이 밴 것 같았다. 하나 둘 모여든 일행들의 떠드는 소리가 점점 높아갈 때였다. 드디어 그린라이트가 떴다는 음성이 로비에 쩌렁쩌렁 울렸다. 일행들은 앞 다퉈 버스에 올랐다. 십 여분 달린 버스가 카파도키아 열기구 체험장에 도착했다. 열기구가 110개라는 게 미심쩍었지만 그게 한꺼번에 떠오른다는 건 더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탑승하려고 예약된 열기구는 28명 정원의 페가수스였다. 체험장 사무실벽에는 파란색 열기구에 하얀 페가수스가 하늘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프린트 돼 있었다.

열기구 오르기 전 인원 점검이 시작됐다. 현지직원이 핏기 마른 좀비처럼 인기척 없이 다가왔다. 점검을 하기 위해서 온 그들은 말 한 마디 없이 눈짓만 해댔다.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만 일행들로부터 떼 내서 페가수스에 보내졌고, 동생과 나를 포함한 일행은 무지개가 그려진 열기구에 배정받았다. 왜 아버지랑 따로 타야 하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가이드는 보이지 않았다. 현지직원은 자기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입을 막아 버렸다. 팀을 짠 일행들의 탑승이 끝났다. 직원 두 사람이 로딩 하는 자세를 설명했다. 1,000피트 넘게 올라갔을 때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했다. 대게 트레일러에 안착하지만 방향이 틀어졌을 때 적당한 공터에 내리는 걸 대비해야 한다고, 그 순간 돌풍이 불기라도 하면 위험하니 로딩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발을 딛는다는 건 연습이 필요하다니…, 고달픈 일이다.

다섯 시가 되었다. 버너로 가열해 채비를 끝낸 열기구의 로프가 풀렸다. 지상의 모든 열기구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올랐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였지만 어쩐지 무섭지가 않았다. 바람을 탄 열기구가 속도감을 못 느낄 정도로 미끄러지듯 떠올랐다. 1,000피트 상공에서 서서히 하강하다 다시 1,600피트까지 올라갔다.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걸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몸은 평온했다. 페가수스는 여럿 열기구 중에서도 돋보였다. 하얀 페가수스는 불을 뿜어대는 버너 덕분에 다리며 어깨 근육이 더 탄탄해 보였다. 닿을 듯 스쳐가며 하늘로 치솟는 페가수스에 탄 사람들 모두 현실감이라곤 없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속에 섞인 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S통신사의 광고 브로마이드를 떠올린 게…, 계곡위로 날아오른 색색의 열기구가 푸른 하늘에 꽃처럼 피어난 사진이 주방 벽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건 뒤늦게 안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꼭 열기구를 타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수화도 기억났다.

다섯 시 삼십오 분, 지평선에서 해가 솟아올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해는 낯설었다. 산봉우리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른 해는 어둠을 새벽을 아침을 차례대로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무채색이던 풍경들이 해를 맞아들이는 순서에 맞춰 제 색깔을 찾아갔다. 차갑기만 하던 내 몸에도 미지근하게나마 온기가 퍼져나는 듯했다. 3,916m의 에르지예스산이 소담하게 치마폭을 펼쳤다. 비바람이 빚어 만든 카파도키아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시선을 사로잡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주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였다. 페가수스가 일행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열기구가 고도를 점점 높인 거였다. 나는 몸에 붙은 벌레들이 툭툭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경치에 심취해 있던 다른 일행들은 아버지가 탄 열기구가 멀어지고 있다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진 찍기 바빴던 그들 중 몇몇은 페가수스가 왜 대열을 벗어나는지 힐끗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페가수스는 하늘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 혼란스럽다. 그걸 알아 챈 걸까. 아버지가 내 휴대폰에 엄지 치켜 올린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어색하고 낯선 그림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눈자위 근육이 풀어진 나는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다. 눈물은 갈비뼈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진 곡진한 물방울이다. 구름 한 덩어리가 눈앞을 가린다. 그 틈에 가시거리에 있던 페가수스가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간다. 백랍 같은 얼굴의 직원이 페가수스 열기구의 화력을 높였나 보다. 페가수스는 허공 속에 물음표를 남긴 채 사라진다. 모스크로부터 들려온 애잔소리가 퍼지기 시작한다. 블루모스크에서 한 소절하면 아야소피아에서 또 한 소절, 대화를 주고받듯 들려온다. 남자 육성이지만 아버지 목소리인 듯 엄마 목소리인 듯 내 속을 오벼낸다. 치열했던 여름이 서늘한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부는 바람 같은 외롭고도 애틋한 소리 한줄기,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다. 나는 말없이 두 손을 모았다. 아버질 닮은 동생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감은 두 눈이 어둠에 갇히자, 별안간 아버지의 수화가 떠올랐다. 동생을 데리고 급히 호텔로 돌아왔다. 아버지 배낭을 뒤져 새벽에 들여다보던 서류를 찾아냈다. 파일 속에는 진단서와 MRI 사진 여러 장이 끼워져 있었다. 병명은 모야모야. 시각이며 청각 장애가 그 때문에 생긴 거라는 의사 소견 밑에 뇌출혈 소견이 아무렇게나 휘갈겨져 있었다. 파일 뒷면에 꽂힌 엄마 사진에는‘곧 갈게.’라는 투박한 글씨가 써져있었다. 그때 사원의 돔을 비추던 빛과 애잔소리가 눈과 귀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눈앞을 가렸던 구름이 미처 해독하지 못한 아버지의 수화를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 삶에는 연습이 없다고.

■ 당선소감

▲ 김보성씨= 충북 영동 출생, 독서논술지도사, 제12회 동서문학상 수필부문 가작 수상.
길을 잃어버리길 소망했습니다. 동시에 길을 벗어나길 두려워했습니다. 겁 많은 호기심은 늘 갈팡질팡 떠돌았습니다. 시가 좋아 숲을 헤맬 땐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특별한 존재가 된 듯 무생물과 교감하는 순간들, 바람 한 줄기에도 부여되는 의미들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색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눈동자 속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좌절케 하고 채찍질했습니다. 그래도 경외했습니다. 소설이 좋아 과거를 헤맬 땐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아니, 나 스스로가 두려웠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사건과 현상들의 시발점이 나 자신이라 걸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항상 약자라 자만했던 편견은 문장이 쌓여갈수록 커다란 오산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었습니다. 한 문단이 쌓여갈수록 나는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은 내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받아 적으며 감정을 녹여냈습니다. 글 읽을 때 감동이 가슴에 들어와 나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긴 여정이, 글을 쓰면서 최단거리로 줄어들었습니다. 지금도 길을 잃는 것이 설레고, 두렵고, 외롭습니다. 낯선 곳에 내디딘 발자국이 또 다른 나를 찾아내도록 더 많은 길을 잃어버릴 작정입니다. 소호의 가을 속에서 경북일보 당선소식을 만났습니다. 무녀리 같은 작품의 이정표가 되어주신 경북일보와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가족과 문학도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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