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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물] 14.영양군 청기면

애국 충절의 고장…자수성가 사업가·교육계 등 인재 배출

정형기 기자 jeonghk@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1월29일 18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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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길쭉하게 펼쳐져 영양군 청기면은 면적이 넓이는 139.43㎢로 넓은 편이나, 행정구역은 행정리 기준으로 18개 리가 있으며, 인구는 1천853(2016년 1월 기준)명에 불과하다.

대체로 300~700m의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동쪽 면 경계에 영양군에서도 해발이 높은 산으로 손꼽히는 일월산(1,219m)과 홍림산(767m)·작약봉 등이 솟아 있어 얼마나 산세가 얼마나 험준한지를 말해준다.
청기면사무소가 있는 청기면의 중심지 청기 중부 청기리 마을

청기면의 젖줄인 동천은 면의 동부를 곡류해 흐르며, 마을별로 흐르는 작은 소하천들이 합류해 이뤄졌다.

험준한 산지를 끼고 있다 보니 하천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경작지가 분포한 것 외에 평야는 거의 없으며, 1970~80년대 황색 잎담배가 전국 제일의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재는 고추와 과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산지가 많은 만큼 청기면 북부 지역에서는 산나물 채취와 가공도 많이 한다.



△ 청기면의 역사

고려 시대 청부현(靑鳧縣)의 대청부곡(大靑部曲)이었는데 고려 제25대 충렬왕 때 소청부곡(小靑部曲)을 합해 청기 현으로 일컫게 된다.

또 다른 이름으로 청계(淸係)라고도 한다.

조선 태종 무렵에 와서 영양 현에 통합됐지만, 관아는 두지 않고 영해도호부의 관할 아래에 두게 되면서, 그 뒤 지역 사람들의 영양 현 설치에 대한 상소가 잇달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조선조 숙종 원년(1675)에 현이 없어진 뒤에 영양 현의 서쪽이라서 서면이 된다.

그 뒤 다시 서면은 서초(西初)와 서이(西二)의 두 개 면이 되고 고종 32년(1895) 지방의 관제를 고칠 때 서초를 청초(靑初)로, 서이를 청이(靑二)로 고쳐서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 청초와 청이를 합해 청기면으로 부르게 된다.



△ 초야의 삶과 후세 양성을 선택한 애국 충절의 마을

청기면은 영양지역 내에서도 대표적인 애국 충절의 마을이다.

청기면 남쪽 지역에 있는 상천리에는 구한말 대표적 순국선열인 벽산 김도현(1852-1914)선생의 생가와 선생이 왜군과 맞서 싸운 검산성이 있다.
청기리 상청리 벽산 김도현 선생의 생가

선생은 고종 31년(1894)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검산에 창의도총부를 정하고 봉화 청량산에 들어가 의병을 일으켜 출군했으며 안동, 함창, 선성과 강릉, 영양 일월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했다.

그 후 영양 영흥학교를 창설하고 교육에 힘썼으며, 1914년 국권을 강탈당한 것을 통분해 동해(영해 관어대)에 투신 자살했다.

광복 후 1962년 건국 공로훈장을 추서했다.

청기면의 3·1운동을 주도한 인암 오윤승(1875-1960)도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가다.
청기면 청기리에 위치한 항일 3.1운동 기념탑

오승윤은 3.1 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24일 청기 면민 약 400명을 동원해 시위했으나 체포돼 1년형을 선고받았다.

청기면 상천리에서 10여㎞ 거리에 있는 청기리에는 병자호란 때 많은 전공을 세우고 효종의 북벌정책에 비밀 군사훈련을 지도했던 오연(1598~1699)선생의 정자인 취수당이 있다.

청기리 마을 입구에는 조선 선조 때 영양지역 최초의 교육 기관인 영산서당(英山書堂) 건립을 주창해 창건한 청계 김진(1500~1580)선생이 지내던 돈간재 및 주사가 있다.

청기면사무소가 있는 청기리에서 북쪽으로 다시 10여㎞ 올라가면 기포리가 나온다.

기포리에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김윤명의 의병에 가담했던 회곡 권춘란(1539-1617)의 회곡 고택이 있다.

청기면 남부 중심지 상천리 마을


△청기면이 배출한 현대사 인물

청기면은 길쭉한 지형 때문에 상청리 중심의 청기 남부, 청기리 중심의 중부, 기포리와 당리 중심의 북부로 나뉜다.

1970년대 초 1만여 명에 이르던 인구는 이농 현상으로 급감하면서 현재 1천800여 명의 주민들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형상 3개 생활권으로 나뉘면서 유일하게 청기면에는 중학교 이상의 고등 교육 시설이 없어 중학교부터 남부는 입암, 중부는 영양, 북부는 일월 등 인근 읍면에서 고등학교는 안동 등 타지에서 유학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들의 교육열만큼은 어느 지역 못지않아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청기면 출신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김삼환 현재 숭실대학교 이사장 겸 명성교회 원로 목사다.

청기면 상청 출신인 김 목사는 1980년 대한예수교 장로교인 명성교회를 설립해 한국 담임 김삼환 목사가 한국 개신교 목회자로서는 처음으로 구소련과 폴란드에서 동유럽 집회를 하는 등 전 세계적 목회 활동을 펼쳤으며,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향인 청기면을 위해 매년 의료 봉사활동과 경로잔치 등 고향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정계에는 서울시의회 남창진 의원이 활동 중이며, 안동시의회 김성진 의장도 고향이 청기다.

청기면은 유년에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자수성가한 사업 인이 많다.

여성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인들의 모임 대표인 희망경제연합 구성회 상임 대표와 한국프라스틱(주) 배영희 대표, 오병화 전 동부그룹 사장, 섬유 관련 사업을 했던 전 재경 영양 향우회 오예원 회장, 진솔루션(주) 김준연 대표이사 등 수 많은 자수성가 사업인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매년 고향 인재 육성과 발전을 위해 장학금 등 사비를 털어 지원하고 있다.

충절의 고장답게 법원, 경찰, 언론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김연우 지원장과, 전 영덕지원 부장판사 권재칠 변호사, 김용일 전 대구지법 총무과장, 안종익 서울지방청 생활안전과장, 이갑형 전 울산중부경찰서장, 남병상 전 영양경찰서장이 있다.

언론계에는 금동수 전 KBS 부사장, 조창용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유성 포항 MBC 국장, 오창해 전 마산 MBC 아나운서 실장이 있다.

행정공무원으로는 전 경북도 노인 건강국 노인 효 복지과장을 지낸 김화기 경북문화콘텐츠 진흥원 본부장과 오도창 영양부군수, 구창회 전 관세청 감사국장, 황병기 전 감사원 사무총장, 임재암 전 농산물품질관리원장, 박진호 경기도 하남시 미사2동 주민센터 동장, 이동교 전 대구시 교통국장을 꼽을 수 있다.

이 밖에 교육계에는 조병인 전 경북 교육감, 권원달 충북대 명예교수, 오창우 계명대 교수, 오재춘, 영진전문대 교수와 오창린 동국대 경주 캠퍼스 교수, 오신창 전 영양중·고 교장 김인환 전 영주 영광여고 교장이 있으며, 김선굉 소설가, 이창환 시인 등이 문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기 북부 중심지 당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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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기 기자

    • 정형기 기자
  • 경북교육청, 안동지역 대학·병원, 경북도 산하기관, 영양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