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들의 주말은
흰 봉투로 시작되어 흰 봉투로 끝납니다
<축 결혼> 혹은 <부의>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갑니다
한 주일 동안 모진 자동차의 체중에서 살아남아
붓글씨로 새로 쓸 필요도 없이
<축 결혼> 혹은 <부의>라고 쓰인 흰 봉투를
한 묶음씩 사다놓고
주말이 되면
지난 주에 번 돈 중에
얼마를 흰 봉투에 넣고
잠시 머리를 긁습니다. 그리고
<축 결혼>과 <부의> 사이를 뛰어다니며
가장 근엄한 표정으로 숙연하게
인생에 참여하고 옵니다




감상) 어느 때부턴가 차에다 흰 봉투를 준비하고 다닌다. 아무 것도 써지지 않은 봉투, 때에 따라 어느 상가든 잔치 집에든 갈 수 있는 봉투, 우리의 면목이 모두 그 봉투로 대변되고 봉투를 앞세워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욱이나 완이라는 이름보다 흰봉투로 기억되는 우리들의 어정쩡한 가을.(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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