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의류나 이불 등을 파는 포목전문 시장으로 유명하다. 대구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서문시장’하면 ‘불이 자주 나는 시장’으로 각인돼 있다. 거의 매년 불이 났기 때문이다. 1960년에는 시장을 송두리째 태워버린 큰불이 났다. 대낮에 연기가 해를 가려 시내가 온통 캄캄했을 정도였다. 불이 꺼진 시장 바닥에서 상인들이 퍼질러 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 한다. 시장이 완전히 불에 타서 장이 없어지는 듯 했지만 불이 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공터에서 다시 장사가 시작됐고, 오뚝이처럼 옛 모습을 되찾곤 했다.

‘서문시장’이라 불린 것은 달서문 밖에 선 장이었기 때문이다. 대구 사람들은 흔히 ‘큰장’, ‘대구 큰장’이라 불렀다. 시장이 문밖에 서게 된 것은 도심 주거지와 신작로 상권을 확장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기미년 3·8독립만세 운동 인파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군중집회를 우려해 삶의 중심이었던 대구부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한 것이다.

서문시장이 포목 전문시장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대구에 직조공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이 성시를 이루면서 방직공장이 들어섰다는 주장도 있다. 전라도 상인 등 한강 이남 거의 모든 지역에서 ‘큰장’에 섬유제품을 사러 왔다. ‘전라도가 풍년이 들면 대구가 부자 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 서문시장에 불이 잦은 것은 시장을 만들 때 천왕당지(天王堂池)를 메워 만들었기 때문에 용왕이 노해서 라거나, 천왕당지에 빠져 죽은 처녀 귀신의 원한 탓이라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서문시장에 화재가 잦은 것은 불붙기 쉬운 섬유제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두 차례 대형 화재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05년 11월 29일 밤에도 대형 화재로 1천여 개의 점포가 불탔다.

시장 현대화와 대구도시철도 3호선 통과로 활기를 찾은 서문시장에 30일 큰 화재가 났다. 4지구 상가 내 679개 점포가 모두 타고 건물이 주저앉았다.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대형 화재 때마다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듯 하루빨리 ‘서문시장’이 제모습을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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