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콩의 시절은 이제 잊은 지 오래
혼자서 가고 싶었던 길도 놓인 지 오래
우리는 이름을 잃고 함께
삶아져서는 함께 섞어져서는
함경도 경상도 충청도 정라도
복자네 아랫목에서 다시 태어났다
해탈의 곰팡이 피어날 때까지
몸을 썩히는 일
공중에 매달려서 햇살과 바람
시간의 일부가 될 때까지
몸을 말리는 일을 배운다
즐거운 입맛을 위해
이름을 잃고
어디선가 매달려 살았을 비릿한
내 사랑, 콩
우리들의 안 잊히는 이름,
의 생무덤



<감상> 잊을 건 잊는 게 맞다 반찬 그릇을 밀어주던 손길도 목도리를 둘러주던 손길도 때가 되면 한 강물 안에서 죽어 흐르는 시체들일 뿐 잊어질 건 잊어지는 게 맞다 잊어져서 새로운 기억으로 다시 오는 게 맞다 잊는다는 괴로움은 꽁꽁 언 그늘에서도 쉽게 발효되는 메주 그러므로 잊을 건 잊는 게 맞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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