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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상] 잠수

김정민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경북일보 kb@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2월01일 17시52분  
언니가 서귀포로 오겠다고 말했을 때 소월은 안방까지 내어주겠다고 단번에 대답했다. 돌담에 널려있는 잠수복을 보고 있던 터라 직접 잡은 문어로 해물라면도 끓이고 전복도 구워먹자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전복이 마트에서 파는 삼겹살도 아니잖아, 언니는 소월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되물었다. 남길 생각 마, 점심때마다 먹여줄게. 이참에 물질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소월은 언니의 말에 기분 좋게 받아쳤다. 말을 하면서도 언니의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계속 떠올렸다. 귀국날짜는 한 달이나 남아있었다. 소월은 미술도구들로 어지러워진 집안을 둘러보며 당분간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켰다. 언니와 해안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월은 할머니 그림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해 봄과 여름사이, 바람은 옅어지고 있었다. 소월은 마을해녀들과 불턱에 앉아 잠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거나 테왁에 기대 앉아 졸음을 참아내고 있는 해녀들 틈에서 소월은 볕을 쬐었다. 이마의 미열이 신경쓰였지만 마을 해녀들이 다 같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날인만큼 막내가 빠질 순 없었다. 확성기를 든 어촌계장이 모습을 나타내자 소월은 테왁을 옆구리에 끼우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허리에 찬 납이 제대로 걸려있는지 습관적으로 만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른 해녀들은 일어설 자세가 아니었다. 수경을 매만지고 있던 해녀들의 눈빛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할망해녀의 얼굴을 보고는 포기한 듯 서로 눈치를 살폈다.

불턱의 분위기를 모르는 어촌계장은 해녀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는 늘어지게 하품까지 해가며 확성기를 틀었다. 잠자는 바다를 깨우려는 듯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이제야 일어난 사람처럼 어촌계장이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지나가는 렌터카들이 차를 세울 정도로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는데도 해녀들은 일어서지 않았다. 소월은 눈치를 살피며 다시 불턱에 앉았다. 선배 해녀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테왁도 다시 풀어야 했다.

뭐 햄수꽈? 물량 채웁써! 어촌계장이 확성기에 대고 잔소리를 했다. 어제만 해도 잠수대회에 나간 사람들처럼 바다로 뛰어들었던 해녀들이었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힘찬지 소월의 눈에는 무리지어 다니는 돌고래 떼처럼 보였다. 마을의 공동작업인 만큼 더 열심히 물질에 나섰던 그네들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촌계장의 지시에도 아무도 일어설 기미가 없었다. 불만을 얘기하거나 재촉하는 해녀도 없어 소월은 그 이유를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불턱에 앉아 보말이나 까먹을 작정인지 엉덩이가 무거워보였다. 오늘따라 우뭇가사리를 들고 옮겨줄 기중기도 고장이 나서 손이 많이 필요한 날이었다. 어촌계장과 할망해녀간 무언의 신경전이 오가는 와중에도 선크림이나 립스틱을 바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물속으로 곧 빠져들 그네들이 화장을 하는 모습은 아직 초보해녀인 소월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바다 속에서나 바다 밖에서나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나 여자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알 것 같았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는지 어촌계장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소월은 할망해녀의 시선을 따라 주택가를 바라보았다. 마을해녀들이 단체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닌 듯 할망해녀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다.

캐나다의 날씨가 무척 좋았는지 해주는 소풍을 나간 모양이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던 터라 소월이 제주에 있다는 말을 하는데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응? 뭐라고? 어쩌면 ‘제주’라는 지명을 잊었는지도 몰랐다. 재주가 좋다고 말하는 거야? 해주가 답답하다는 투로 재차 물어왔다. 여기 제주야, 서귀포라고. 제주라는 말이 단도가 되어 둘 사이의 호흡을 끊어놓았다. 제주를 잊고 살수 없는 처지이기에 제주를 잊은 척 둘러대며 살던 언니. 그런 언니에게 소월은 예고 없이,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을 얘기하듯 말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제주에는 왜……. 해주는 믿고 싶지 않다는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원을 벗어나고 있었다. 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소월은 미안해졌다. 어느새 주변은 조용해졌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소월은 해주의 단아한 2층집을 떠올렸다.

네가 기어이 거길 갔구나.

해주는 주먹을 쥔 목소리였다. 배신감에 입술이 바들바들 떨었다. 소월은 언니가 담배를 찾고 있을 것만 같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소얼? 소얼? 언니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달리 한국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동생과 통화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와유, 아이 미쓰유. 언니보다 열 살이나 많은 형부의 발리볼같이 쾌활한 웃음소리를 들으니 제주에 왔다는 말을 꺼낸 게 후회됐다. 소월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을 가족이었다. 요셉, 아이 미쓰 유 투. 형부 덕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가족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었다. 아이 러브 유. 성에 낀 유리창에 글자를 쓰듯 소월의 입에서는 보고 싶다는 말이 쓰였다. 아임 쏘리. 그러나 해주는 안부조차 나누지 못하게 형부를 저만치 밀어냈다. 통화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언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놀란 형부는 익숙하게 안방에서 약을 챙겨왔다. 형부가 옆에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됐다.

소월은 이제 언니에게 이실직고 털어놓을 때가 됐다고 느꼈다.

폐가가 됐더라. 그래서 대충 고쳤어.

고향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해주는 결국 담배에 불을 붙였다. 웬일인지 요셉의 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문 뒤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언니를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았다. 소월은 자신이 왜 제주까지 내려와야 했는지 언니에게 긴 설명을 해주고 이해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림을 그리러 왔다는 말도 변명처럼 들릴까봐 목구멍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차마 해녀가 됐다는 말은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따귀 맞은 일을 소월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제주가 내게 영적인 기운을 줘.

정확하게는 제주의 자연풍광이 아니라 해녀가 주는 생명력이었다. 그림을 본 것은 ‘섬에 사는 세계여성’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회에서였다. 아는 선배의 전시회를 둘러보고도 뭔가 여운이 남지 않아 찾은 곳이었다. 오래전에 그려진 그 그림에는 반쯤은 나체인 채로 불턱에 앉아있는 해녀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특별한 잠수장비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맨몸.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야성적이다 못해 남성적으로 보이는 몸매들이 인상적이었다. 물질을 끝낸 해녀들은 해가 저물고 있는 검은 바다를 등지고 앉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퇴근을 앞둔 사람들처럼 여유를 부리는 얼굴들이 평범해 보이면서도 안정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젖가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소월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해녀들은 혼백상자를 등지고 물질을 하는 몸이 라는 걸,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향한다는 걸, 그게 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걸…….

소월은 그 그림 앞에서 한참동안이나 떠나지 못했다. 그곳에 서서 자신이 왜 영감을 받고 있는지 미로 속을 헤매야 했다. 올레 돌담을 따라 생선들이 널려있던 낮은 처마의 집, 그 골목에 피어있던 수선화 향기가 소월의 손을 붙잡고 마당으로 이끌었다. 제주에 대한 기억은 자의반 타의반 지워졌다고 믿고 있던 소월이었는데 할머니가 사다주었던 팥빵과 그처럼 달콤했던 일들까지…, 자연스럽게 옛일들이 떠올랐다.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러다 결국 소월은 엄마 생각에 감정이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 지난 십여 년간 잊고 지냈던 엄마가 그 그림 속에서 몸을 일으켜 손을 잡아줄 것 같았다. 소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다가 쓰러져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소월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제주행 티켓을 끊을 수밖에 없었어……. 언니에게만은 속엣 말을 털어내고 싶었다. 서로의 마음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했다고, 언제쯤이면 이런 말들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가 고개를 끄덕여줄만한 성질은 아닌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동생의 말을 듣기는 했는지 해주편이 조용했다. 이미 영적인 기운을 받았다는 말에 전화는 끊긴 상태였다. 마음이 버거운 것은 소월만이 아닌 것 같았다. 언니가 떨리는 손으로 주방의 와인잔들을 깨부술까봐 소월은 다시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무사 나와이수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는지 영자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격양돼있었다. 불턱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을 해녀들이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영자아주머니를 향해 할망해녀가 손을 흔들며 빨리 오라고 채근했다. 다른 해녀들도 마중을 나가려는 듯 물개 같은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며 몸을 일으켰다. 영자아주머니는 그런 반응이 싫지 않은지 잽싸게 뛰어왔다. 소월은 마을해녀들이 왜 물질을 서두르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기다리던 주인공이 불턱에 앉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예상치 못한 환영에 답을 해주려는 듯 영자아주머니는 좌중을 집중시키는 말투로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또 그 바당이라. 이상헌 소리가 막 들련게. 근디 이번엔 다리를 바당 속으로 잡아끌더라고. 영자아주머니가 과장된 몸짓으로 몸서리를 쳤다. 수중 20m까지 내려갔다는 사실도 모르고 무리하게 위로 올라가려다 보니 전신이 마비되고 만 것이었다. 뇌에 공기가 차서 혈관을 누르는 잠수병. 그날의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지 영자아주머니의 눈가가 젖고 있었다. 그곳은 툭하면 사고가 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어촌계장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영자아주머니는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왜 그 지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혔는지, 그날 이후 가족들의 잔소리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제주에서 목숨을 내걸고 해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 인지까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야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해녀들의 눈빛이 조금씩 할망해녀에게 향했다. 소월도 턱에 손을 괴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겅허난 이젠 바당헌티 안 잡혀 먹을 거라?

이 상황에서 말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할망해녀뿐이었다. 몸엣것이 나오기 전부터 풍초를 주웠다는 85세의 최고령 해녀가 다짐을 받아내듯 묻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고무 모자를 쓰고 있으면 얼굴에 전복살같은 주름이 졌고 소월은 그 모습에 반해 캔버스에 그려두기도 했다. 도박 빚만 물려주고 육지로 도망가 버린 남편을 대신해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시댁 식구들 살림 보태주느라 밥숟가락 잡듯 물질을 멈춘 적이 없다고. 먹고살만해진 지금도 툭하면, 바당에 가사 숨셔진다, 바당이 우리 밭인디 어딜 가느니?를 입에 달고 사는 노인.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의 반대를 거스를 수 없어 할망해녀는 허리까지 차는 얕은 바다를 주무대로 바꿔야 했다. 그곳은 이제 할망들만 들어가는 바다가 됐다.

식게 차릴 일은 어실거우다.

영자아주머니가 풍만하게 살이 오른 배를 내밀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에 한명 두 명의 입이 조개처럼 벌어지더니 열 댓 명 모두의 치아가 환하게 드러났다. 좀처럼 박수칠 일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입으로, 손으로, 서로의 어깨를 부딪쳐가면서 흥분했다. 소월의 눈에는 물개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모습에 전염되었는지 소월도 박수를 쳤다. 그렇게 다 잘 해결된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영자아주머니의 필리핀 며느리인 로즈가 다가와 소월의 팔목을 잡았다. 너까지 겅할꺼? 로즈는 단단히 화가 난 말투였다.

테왁을 지고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영자아주머니가 앞으로도 제사상 차릴 일은 없을 거라며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로즈는 시어머니를 말려야하는 처지였다. 바당에 마약 숨겨놔수꽈? 남편은 걸핏하면 술병 던지듯 어머니에게 으름장을 놓았고 그런 집안싸움에 로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둘의 실랑이를 말려야 했다. 시어멍 쓰러지민 너가 병수발 해산다,는 친척어른들의 경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소월은 어정쩡하게 손을 내려놓았다. 며느리 얘기를 귀담아 들어줄 시어머니 드물 듯 하물며 남의 집 며느리인 로즈의 태도를 가엾게 여기는 아주머니는 없어보였다. 정작 로즈도 시어머니가 환영받고 있는 분위기에 휩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괜스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면 분명 슬리퍼를 신은 채로 달려와 어머니를 끌고 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로즈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마을 해녀들 속에 섞여있던 영자아주머니는 습관적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마을 해녀들은 엉덩이에 낀 잠수복을 손으로 빼내며 걸어갔다. 자식을 셋쯤은 낳았을 엉덩이들이 테왁과 같이 좌우로 움직였다. 그 중에서도 영자아주머니의 뒤태가 제일 볼만했다. 고래피부같이 매끄러운 고무스튜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우뭇가사리를 채취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4시까지였다. 평소보다 출발이 늦어졌으니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해야 내일 조업도 할 수 있을 터였다. 로즈는 설득을 포기한 듯 가만히 앉아있었다. 소월은 로즈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일으켰다. 햇볕에 데워진 돌바닥을 짚으며 엉덩이를 떼는데 민망한 소리가 났다. 30여분동안 앉아있다 보니 고무 재질의 잠수복이 돌에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별일 아닌 것에도 웃고 떠들었을 둘이었지만 로즈는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고 소월도 조용히 일어서기만 했다. 바다에 나가야 숨통이 트인다는 할망해녀의 말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어떤 말들도 영자아주머니는 물론 로즈도 설득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월은 머리에 올려둔 수경을 내리며 심호흡을 크게 내뱉었다. 오늘은 또 어떤 얼굴의 바다와 연애를 하게 될까. 발걸음이 빨라졌다. 영자아주머니의 건강한 모습 때문인지 이마의 미열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소월은 오늘하루도 무사하길 바라며 마을 해녀들은 물론 수확물이 담긴 망사리를 들어주려고 스쿠터를 타고 달려오는 그네들의 남편들도, 귀한 전복을 먹여 키운 자식들과 손자손녀들까지도 모두 건강하길 빌었다. 목숨을 내걸고 바다에 나가는 처지가 된 소월도 이젠 신에게 운명을 맡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언니, 오늘 이상한 얘길 들었어.

전화연결이 됐지만 해주는 동생이 제주에 있다는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작 통화버튼을 누르고 났을 땐 소월의 입에서 엄마 얘기가 먼저 나오기라도 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던 해주였다. 난 네가 거기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해주는 소월의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 말끝이 짧았다. 나도 처음에는 집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그게 안됐어, 진심이야. 해주는 소월의 변명을 흘려들었다. 대화는 마른 땅처럼 갈라졌다. 둘 사이에 긴 침묵이 오갔다. 코를 훌쩍거리며 기침하는 소리가 해주편에서 들려왔다. 소월도 몸이 으스스 떨려 담요를 어깨에 걸쳤다. 누가 먼저 침묵을 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월은 가만히 언니의 호흡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았다. 한국과 캐나다의 먼 거리만큼이나 긴 침묵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를 이어 붙여주는 것 같았다. 말없이 서로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마루에 둘러앉아 언니와 보말을 까먹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소월은 이 분위기 때문에 침묵으로 대신했던 속마음을, 언니를 울리고 말 그 이야기를 툭 내뱉었다.

내 얼굴이…, 특히 까만 눈동자가 엄마와 닮았대. 정말 그래?

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주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해주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가슴이 트럭 밑에 깔린 것처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 이야기가 자신을 향해 직진해오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말해놓고는 뒤늦게야 심각성을 알아차린 소월도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젠 침묵조차 둘 사이에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너의 눈 코 입, 이마와 턱선, 머리숱과 말투, 외향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까지 엄마를 닮았다고…, 해주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 그동안 지우려고 노력했던 엄마 얼굴과 소월의 얼굴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다 펴졌고, 엄마가 죽었을 때가 지금의 네 나이쯤이었으니 더 그럴 거라고. 그러나 끝까지 말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소월은 정작 자신이 꺼낸 엄마 얘기에 울컥해 속상한 울음을 터뜨렸다. 해주는 제주에 갔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동생의 나약함이 마음에 걸려 결국 따라 울었다. 그래서 제주에 가지 말라고 한 거라고, 해주는 소월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울음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수복을 입고 있던 엄마가 한 마리의 죽은 물고기처럼 발견되었을 때 해주는 고작 열 살이었다. 바다가 날 부르는 것 같구나, 귀기어린 얼굴로 말을 하던 엄마의 입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났고, 해주는 싫은 내색을 하며 도망가 버리곤 했다. 엄마의 낯선 변화에 아빠가 데려온 새엄마를 따라가고 싶어 했던…, 자신의 동심을 지금까지도 짓밟으며 살아온 해주. 철없던 자신의 행동을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동생이 어느덧 엄마의 나이가 되었고 자신의 슬픔이 되물림되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소월은 어느새 무리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발에서 무릎, 허벅지와 허리, 가슴에서 목까지 단계별로 물이 잠기도록 심호흡을 하며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허리운동은커녕 어깨를 풀 시간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몸살기운이 남아있는 탓에 맨살에 물이 닿는 것처럼 바다가 차게만 느껴졌다. 두통이 재발할 것처럼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려졌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 보여 수평선을 제대로 바라 볼 수도 없었다. 저 끝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은 환각증세도 나타났다. 잠수를 할 때마다 빠져드는 공포가 파도치듯 소월을 덮치고 있었다. 이럴 때면 가차 없이 잠수해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머리까지 들여놓으니 소월의 입에서 기포가 올라갔다. 그렇게 10초, 20초… 60초를 버티고 나서 다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숨을 참고 버텼다. 2분을 참아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사이 물속을 훑어보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3m이상 내려가려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욕심을 조금만 부려도 사고가 나는 곳이 바다였다. 소월은 마을 해녀들과 경쟁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네들과 비슷한 속도로 여러번 잠수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도 무던히 연습한 결과였다. 해녀학교에 다니면서 잠수기술을 배웠지만 바다와 친해지는 과정은 녹녹치 않았다. 수업만으로는 부족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터득해내야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소월은 겨울 이불을 세 겹으로 깔아놓고 그 밑에 웅크려 있길 좋아했다. 그러면 주변의 소음들이 이불 밑으로 매장된 것처럼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잠잠해지면 신기하게도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물 아래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월은 숨을 참고 스톱워치로 시간을 확인해가며 강도를 높여나갔다. 때로는 연습에 몰두한 나머지 수면 위로 쉽게 올라가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실제상황처럼 전신마비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럴 때면 살기위해 땀에 젖어있는 온 몸을 꼬집었다. 이불을 젖히고 나오면 허탈감이 몰려왔지만 소월은 곧 하루 종일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고 기운을 내곤 했다. 소월이 이렇게까지 연습을 하고 있을 거라곤 마을해녀들도 짐작하지 못했다. 오히려 언젠가 소월도 바다를 떠날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이제 물질은 대를 이어 물려지지 않았고 해녀가 되기 위해서는 해녀학교를 다녀야 하는 시대였다. 비바리가 되어 제주바당을 지키겠다고 면접시험을 봤던 교육생들조차도 서울로 올라가 버리면 그만인, 때로는 해녀관련 논문이나 예술작품을 구상한다는 이들도 목적을 이루면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떠나가 버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소월도 그럴 거라고 마을해녀들은 기대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이미 망사리에 우뭇가사리를 채우기 시작한 다른 해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급해진 소월은 선배해녀들이 일러준 바다 속 길도 잊은 채 서둘러 잠수해 들어갔다. 해녀들은 테왁을 수면 위에 놔두고 그 부근에서 잠수를 했다. 스쿠버들은 수영을 하면서 서서히 내려가기도 하지만 해녀들은 머리부터 수직으로 들여놓았다. 호흡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2분 남짓, 이 시간 동안에 먹을 것들을 캐내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최대한 높이 올리고 그 힘으로 내려가야 했다. 익숙지 않을 때에는 선배해녀들이 등과 머리를 바다 속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단번에 밑바닥까지 닿았다. 한때는 고무호스로 산소공급을 받으며 3시간이상 조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불법. 해녀들이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무분별한 조업을 막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무호흡잠수를 고집하고 우뭇가사리를 다 같이 채취하며 마을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소월은 이런 전근대적이다 못해 원시적이기까지 한 생산방식이 오히려 체질에 맞았다.

물속은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입수 때 느꼈던 잠수의 공포는 사라져 있었고 소월은 몸이 유연해지면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물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편안해지고 있었다. 바다를 왜 어머니의 자궁과 빗대어 표현하는지 알 것 만 같았다. 몸과 마음이 바다에 안기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이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믿기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월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지금껏 본적이 없는 엄청난 양의 우뭇가사리들이 있었다. 그동안 해녀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모양인지 채취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소월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양손으로 안아들었다. 자꾸만 품을 벗어나려는 우뭇가사리들까지 어떻게든 잡아내기 위해 애썼다. 정작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도 망사리가 저만치 멀어져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소월의 욕심에 발버둥은 더욱 거세졌다. 주변에 부유하고 있던 플랑크톤들이 하루살이 떼처럼 눈앞을 어지럽혔다. 미생물들이 뿌연 먼지처럼 떠다니면서 몸을 감쌌고 발끝에 차이는 물이 벽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소월은 숨비소리를 내뱉을 시간이 지났음을 직감했다. 이젠 올라가야 했다. 양 손 가득 잡혀있던 우뭇가사리들이 소월의 손에서 맥없이 빠져나갔다. 언제부터 잡혀있었는지 발밑에 있던 우뭇가사리들이 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소월은 더 이상의 잠수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납벨트를 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수경 안으로 어느새 물이 반 이상 가득 차 있었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모든 것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소월아, 소월아, 여기야, 여기. 이리 온.

몸이 가라앉으면서 주변 풍경들이 어두워졌다. 그 와중에도 이상한 목소리가 계속 따라와 소월을 깨웠다. 고개를 들어 수면 위를 올려다봤다. 치어들이 줄지어 지나가더니 잇따라 여러 개의 주황색 테왁들이 가운데로 몰려들어 그늘을 만들었다. 그 사이를 줄기햇빛이 비집고 내려와 소월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엄마가 저기 간다. 몸살기가 있던 엄마가 다급히 집을 나서고 있다. 무릎에 누워있던 나는 빈방에 남겨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눈을 떴다. 엄마가 어디 갔지? 마음이 급해져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상방으로 나가니 마른 미역 냄새가 더운 바람을 타고 따귀를 때려왔다. 기침도 자꾸 올라왔다. 겨우 입을 막고 찾아 나섰지만 엄마는 화장실에도 밖거리에도 우영팟에도 없다. 엄마가 없다. 맨발에 모래와 전복 껍데기들이 밟혀 목소리가 더 커졌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집안에는 새끼 고래의 울음소리만이 웅웅거리는 것 같다. 나는 상방에 앉아 올레를 내다볼 뿐이다. 그 끝에 바다가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고 회오리치는 파도에 물고기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언니가 깨우기 전까지 몇 시간을 상방에 앉아있었다.

소월은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았다. 신문지에 싼 말린 옥돔을 꺼내 보이며 마당으로 들어설 줄 알았다. 엄마, 엄마. 소월은 30년이 지나도 상방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눈을 떠보니 할망해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 뒤로 너무나 푸른 하늘이 웃고 있어 소월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어깨를 들먹거리며 우는 영자아주머니를 다른 해녀들이 달래주었다. 그 옆에 놓인 망사리들에는 10kg도 안 되는 양의 우뭇가사리들이 담겼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오늘이 아니면 우뭇가사리를 다시 채취할 날이 없을 텐데, 소월의 미안한 시선을 느꼈는지 할망해녀가 신경 쓰지 말라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놓았다. 로즈도 소월을 내려다보며 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다독였다. 로즈가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찾아왔을 때 소월도 그런 표정이었을 것 같아 괜히 애잔해졌다. 말없이 손잡아주는 게 뭐라고, 괜찮아 진다는 말 한마디가 뭐라고, 소월은 캐나다 언니의 집에 누워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누가 불렀는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해안도로에 주차되어있던 관광객 차량들이 서둘러 빠졌고, 그 틈으로 오토바이들이 세워졌다. 해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가 혹은 어머니가 아니길 바라며 모여들었다. 소월은 그 광경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난 괜찮은데…. 생각 같아서는 다시 잠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남자들 무리 속에는 항공점퍼를 불량스럽게 입고 있는 로즈의 남편도 보였다. 못나가게 말리라고 했어 안했어? 한쪽 손을 올리며 로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누워있는 소월보다 어머니가 물질에 나갔다는 사실이 먼저였다. 당황한 로즈는 익숙한 듯 양손을 비볐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 집중됐다. 보다 못한 영자아주머니가 아들의 등짝을 때렸다. 그는 주변을 의식한 듯 얌전히 손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애꿎은 돌을 차며 발길질을 해댔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할망해녀가 그들을 집에 가라고 억지로 떠밀었다. 로즈는 그 틈을 타 소월의 옆으로 숨어들었다.

이추룩 연약행 어떵 물질 헐꺼라? 스스로 강해져 산다.

주변상황이 정리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할망해녀가 말했다. 소월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 겁을 먹었을까봐 일부러 독한 약을 처방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드는 소월에게 가만히 누워있으라며 말렸다. 모든 삶에는 마루와 고비가 있는데 이런 물마루를 넘어서야 파도덩이인 ‘놀’을 견딜 수 있다고, 조근 조근 타이르기까지 했다.

자강, 해녀들은 노동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근면함 하나로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평소와 다른 말투에 소월은 할망해녀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입가에 고랑이 깊게 패이며 주름이 져있는 늙은 해녀의 얼굴이 그 어떤 성인보다 빛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월은 되묻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느냐고, 아무런 보조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갔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강해서가 아니라 바다가 그네들을 강하게 키워준 거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나를 강하게 키워주는 바다 같은 엄마가 없다고…, 그래서 툭하면 물러지고 유약해지고 결국 속이 곪는다고……. 소월은 바다 같은 할망해녀의 품에 안기고 싶어졌다.

갠디, 여기 살아나샤? 해주어멍 막냉이 똘…….

소월을 유심히 훑어보던 할망해녀는 도통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소월의 심장도 내려앉았다. 더 이상 말이 없는 걸 보니 할망해녀는 짐작 가는 데가 있는 눈빛이었다. 소월은 지난 1년 동안 마을에서 지내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이제야 밝혀지는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일부러 비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폐허가 된 집만큼이나 각종 추문으로 얼룩진 상태에서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고향이었기에 이곳에서 누군가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인생의 한쪽 면을 완전히 찢어버려야 할지도, 아니면 잃어버렸던 한쪽 면을 이어붙일수도 있는 대화였다. 그마저도 두 명의 구급대원이 다가오면서 끊어져버렸다. 정작 당황한 얼굴의 할망해녀는 더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로즈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대원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소월의 몸과 얼굴을 보더니 상태가 위급하지 않다는 사실에 구급대원들은 안도하는 듯 했다. 할망해녀의 말 때문에 얼른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어진 소월도 순순히 들것으로 올라앉았다. 구급대원들은 울퉁불퉁한 바다 돌밭을 진땀 흘리며 걸어 나갔다. 소월은 햇빛 때문에 소매로 눈을 가렸다. 들것에 누워있으니 세상이 흔들흔들 거렸고 덩달아 해주어멍의 똘이냐는 할망해녀의 말도 정신을 어지럽혔다. 수평이 유지되지 않는 탓에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구토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안정을 취하라는 상투적인 처방을 듣고도 소월은 영양제까지 맞아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응급실 의사는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도착해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할 일 없이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거실을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잠이 들려고 할 때마다 자꾸 누가 발을 채가는 것 같아 가만히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의사의 말마따나 안정을 취하면 좋으련만 전화기를 붙들고 속엣 것을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소월은 해주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를 이야기를 언니에게만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확인해야 할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가 앞으로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 같아 핸드폰을 쥐고서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를 잊고 사는 것을 인생 최대의 과제처럼 알고 살아가는 언니였다. 조카가 태어나던 날,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해주던 전복죽 이야기를 은연중에 꺼내놓고는 다시 조용히 입을 닫아버렸던 언니. 그런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엄마 목소리, 정말 엄마 였다. 방안에 혼자 누워있으니 소월은 언니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꼭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왜 언니가 제일 먼저 엄마를 발견했는지 알겠어.

말을 하는 소월의 입이 부들부들 거렸다. 작심한 듯 엄마 얘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있지…, 엄마가 언니를 구하다 죽었대.

해주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나갔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겨우 부여잡았다. 요셉이 언니를 안고 등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 소월도 곰인형처럼 포근한 형부의 가슴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런데도 해주는 안정이 안 되는지 바닥에 엎드려 가슴을 쳐댔다. 주먹이 말발굽이 되어 가슴 위를 달렸다. 엄마가 우릴 버렸다고 원망했다니…, 해주는 목걸이 줄이 맥없이 끊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세게 주먹질을 가했다. 아무리 아무리 때려도 속안에 막혀있는 것들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우릴 버린 게 아니었다니, 엄마를 원망하기만 했던 나 때문이었다니……. 해주의 가슴골이 벌겋게 멍들고 있었다. 아무리 세게 때려도 아프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주는 몸 안에 곤두 서 있는 화살들이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날아올 것만 같아 기절하고 만다. 와이, 와이. 참다못한 형부가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며 허둥댔다. 와이, 와이. 소월에게만큼은 친절하던 형부가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이녁도 들었지? 그 바당 조끄띠 가민 이녁 어멍 목소리가 들렴서.

소월은 잠수복을 벗은 노인의 얼굴을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달을 등지고 이상한 검은 봉지를 들고 있는 탓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마당으로 들어서는 노인을 향해 몸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똘은 어멍 피 물엉 난댄헌다, 할망해녀는 소월이 해주어멍의 딸이라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다. 낮에 끝맺지 못한 대화를 하려고 일부러 찾아온 모양이었다.

할망해녀의 말에 따르면 30여년전 엄마가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매년 잠수굿으로 바다를 달래는데도 떠돌아다니는 원혼이 있는지 마을해녀들은 마음이 불편했다고 했다. 그리고 할망해녀는 소월이 바다에 빠졌다 나왔을 때 그제야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고 했다.

소월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할망해녀가 오기전까지도 자신이 엄마 목소리를 들었는지, 환영을 본 것인지, 바다에 빠진 꿈을 꾼 건 아닌지, 가시덤불처럼 생각이 엉키고 있을 때였다. 꺼내면 꺼낼수록 가시에 찔리고 말 것 같아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할망해녀는 소월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장면을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어 보여주듯 들이밀고 있었다. 30여년이 지난 일을 기억하는 능력도 놀라웠지만 할망해녀의 확신에는 침범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들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단호함에 소월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할망해녀의 입에서 더 큰 비밀들이 쏟아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게난, 어멍이 널 부른 이유가 이신거 닮다.

할망해녀가 손을 잡고 주무르며 말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주문을 할까봐 소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할망해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뜻밖에도 굿을 하라는 것이었다.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제주사람들은 신에게 의지를 하는구나 싶어 소월은 살짝 웃었다. 하지만 할망해녀는 단호했다. 바당에서 죽은 귀신도 달래고 이녁도 넋들임 해산다. 소월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읽은 할망해녀는 강요에 가까운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제주신화 속 저승차사 강림의 부인 같았다. 저승사자를 잡아와야 했던 강림은 저승으로 가는 길조차 알지 못했고, 그런 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지혜롭고 현명하게 방법을 알려준 이가 바로 부인이었다. 할망해녀도 저승에 다녀온 사람처럼 본풀이에 대해 설명해줬다. 가족 중 누구도 믿기 어려운 사실들을 가지고 와서 가족 중 누구도 허락해주지 않을 일을 해야 한다고, 처방전을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혼령의 치유 과정을 듣고 있으려니 소월의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가만히 있다가는 할망해녀의 손에 이끌려 굿판에 앉아야 할 것 같았다. 소월은 혼자서 결정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모를 리 없는 할망해녀도 예상했다는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멍은 천년을 가도 못 잊곡, 만년을 가도 못 잊나. 할망해녀는 검은 봉지에서 전복죽을 꺼내 그릇에 담아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올 때와는 다르게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죽어갔을까. 굿이라도 해야 마을 해녀들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걸까. 소월은 할망해녀가 달빛이 스며드는 올레를 담담하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동의를 받아내고픈 단 한사람, 언니에게는 차마 굿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30여 년 전에도 해주는 새엄마의 손에 이끌려 넋들임을 당했다. 엄마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는 이유였다. 쌀 한 그릇, 물 한사발이 전부였던 초라한 제상을 앞에 두고 새엄마에게 안겨있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엄마에게 의지해야 했던 혹독한 순간이었다. 무당은 해주의 옷에도 말을 걸며 넋들라, 넋들라, 넋들라,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워댔고 그것도 모자라 옷을 정수리에 가져다대고 똑같은 말만 해댔다. 넋들라, 넋들라, 넋들라. 소월은 굿을 하는 도중에 여우꼬리같이 올라가있는 무당의 눈썹이 무서워 안방으로 숨었는데도,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들여놓은 상태에서도 넋들라, 넋들라, 넋들라는 마당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조차도 감당이 안 되어 소변이 마려운 것도 참아내다가 결국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이불을 소라껍데기처럼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언니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굿이라니……. 소월은 오늘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산책이나 할 겸 바닷가로 나선 길에 소월은 영자아주머니와 로즈를 만났다. 밤바다를 유영하는 것처럼 몸이 붕 떠있기는 그네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둘은 해안도로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밤낚시를 하고 있는 어선들의 불빛이 운치를 더해주면서 술맛이 제대로 날 것 같은 장소였다. 소월은 검은 봉지 안에서 맥주를 꺼내다 말고 다시 들여놓았다. 역시나 먼저 앉아있던 두 사람은 컵라면을 안주로 한라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소월은 물어보지도 않고 로즈의 잔을 빼앗고 술을 들이켰다. 높은 도수의 한라산 소주가 오늘 하루의 일들을 말끔히 세척해주는 것 같았다. 명치에 얹혀있던 것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자꾸만 술이 술술 들어갔다. 밤바다는 평온하기만 했고, 둘에서 셋이 됐지만 아무도 소월에게 끼어들어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어보지 않아 고맙기만 했다. 바다를 건너온 로즈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영자아주머니, 그리고 엄마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소월…, 셋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바다와 말없이 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파도가 말벗을 해주겠다며 거품을 물고 달려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셋은 소주병을 하나씩 들고 각자 취해갔다. 이제 이 세 명은 다시는 바다를 품을 수 없을 것이었다. 물질을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굿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그 와중에도 소월은 굿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숙제를 풀고 있었다.

일찌감치 소월은 설득을 포기했고 요셉이 마지막까지 달래보았을 테지만 해주는 결국 제주에 오지 않았다. 비념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촐하게 치러졌다. 산 사람은 살아사 된다.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말해주는 할망해녀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소월도 버티고 앉아있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굿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성인이 된 소월의 눈에는 굿이란 그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이나 묵은 상처들을 씻어주는 행위처럼 다가올 뿐이었다. 언니가 있었다면 의지가 됐겠지만 옆에 없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했다.

다시는 굿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소월은 마을 해녀들과 거실에 둘러앉았다. 모든 절차를 끝내고 보니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영자아주머니와 로즈가 제 일처럼 잔심부름을 맡아줘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이참에 잘 됐다며 마을해녀들이 와서 마당도 쓸어주고 우영팟도 손봐주며 부산을 떨었고, 그러고 있으려니 어엿한 마을해녀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굿하길 잘했다.

할망해녀는 굿을 치르느라 몸이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해녀들이 바다에 수장되었을까, 굿을 보는 내내 힘겨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마을 해녀들과 모여앉아 제상에 올렸던 떡과 과일들을 먹고 있노라니 이런저런 대화가 두서없이 오갔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없는 할망해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고, 급기야는 거실에 있던 할망해녀의 그림을 보더니 소월에게 믿기 어려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할망 얼굴도 기억 안남서? 아방이 꼭 닮아실건디.

누군가의 입에서 소월을 책망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할망해녀가 친할머니라고 말했다. 짐작이 아닌 확신이었고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신빙성이 없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을 해녀들은 소월이 해주어멍의 딸이라는 걸 다 알게 된 처지니 숨길 것도 없다는 식이었다. 소월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엄마가 친할머니를 만나게 해주려고 부른 거라고 합리화까지 시키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전혀 떠오를 리 없는 소월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할망해녀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 얼굴의 검버섯처럼 퍼져나갔을 것이었다.

정작 소월은 무덤덤했다. 아버지 소식을 묻지도 않았다. 소월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마을 해녀들은 눈치를 살피며 슬슬 몸을 일으켰다. 소월은 그네들을 마중해주면서도 그저 웃어보였다. 할망해녀는 앞으로도 자신을 손녀로 대하지 않을 성미였고, 어쩌면 계속 모른 척 지내는 걸 원하는지도 몰랐다. 끝까지 자신에게 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언니가 친할머니 성격을 닮았나 싶기까지 했다. 언니는 할머니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 언니가 제주에 올 때쯤이면 어린 시절의 얘기를 담담하게 꺼내주실까…, 내가 친할머니를 만나다니…….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소월은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굿을 해서 그런가, 아주 푹.



■ 수상소감

김정민 씨=제주출생, 제주대학교 졸업.
신춘문예 발표를 앞둔 밤이면 잠을 자면서도 당선소감문 쓰는 상상을 했다. 되지도 않을 걸 알면서 그 짓을 십여 년 가까이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막막했다. 쓰고 싶었던 문장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써지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썼을까, 뒤적거리다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그리곤 깨달았다. 이 원고지 3장의 당선소감문을 채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걸.

돌이켜보면 책을 읽다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부터 시작되었고, 공부하기 싫은 날 독서실 책상에 앉아있어야 할 때 시작되었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 이불 속에서 울 때 시작되었다. 등단하지 못해 좌절한 시간이 길었지만 아직까지도 소설 쓰기를 끊지 못한 건 아마 지금까지도 이불 속에서 일기를 쓰듯 소설을 써야 할 힘든 일들이 계속 생긴다는 증거일 것이고 책을 읽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설령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벌어져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열심히 쓸 것이다. 다작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다른 욕심은 내려놓았다.

모든 게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소설동인 ‘애인’의 언니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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