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상소문을 보기 전 미리 의견을 작성하는 비답의 초고인 ‘표의(票擬)’는 내각대신에게 맡겨야 하거늘 위충현이 대권을 전횡, 자신을 통해서만 비답의 초고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정의 이백 년 정치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표의’는 반드시 위충현을 거쳐야만 비답을 할 수 있도록 했으니 비통할 뿐입니다. 황상을 지척에 두고 충형의 뜻을 받는 명령이 단숨에 백 리 밖까지 달려갑니다. 형세가 이러한 지경이니 황상의 위엄과 명망이 어찌 충현보다 더 높겠습니까? 황상께서 어찌 충현에게 굴복한 게 아니겠습니까?”

명나라 말 희종 때 문고리 권력인 위충현의 국정농단이 극으로 치닫자 어사 양현이 위충현의 24가지 죄상을 열거한 상소문을 올렸다. 황제 희종은 위충현을 치제하기는커녕 위충현을 위로하고 양현만 질책했다.

“군주의 대권과 권력기관은 신하에게도 위탁할 수 없는데 더구나 환관에게 어찌 넘겨줄 수 있단 말입니까” 위충현의 죄상을 폭로하는 상소가 잇따랐으나 황제는 상소를 올린 신하들만 벌을 내렸다. 위충현은 원래 도박꾼이었다. 노름판에서 돈을 다 잃고 홧김에 스스로 거세해 환관이 됐다. 입궁 후 희종의 유모 객씨와 사통,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위충현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식자였지만 객씨의 뒷받침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어 황실 특무기관인 ‘동창’의 권력을 독점, 국정을 제 입맛대로 농단했다.

“폐하께서 즐거워하는 틈을 타 환관 무리들이 서로 입을 맞춰 일을 뒤썩고 옳고 그름을 뒤바꿔 헷갈리게 합니다. 내정과 외정에서 서로 결당을 맺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을 일삼아 그들이 틀림없이 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 황제 위에 군림하는 위충현의 위세와 횡포를 보다 못한 신하 주종건이 올린 상소다. 성정이 흉악한 위충현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욕하는 신하들은 대 옥사를 벌여 모조리 처치했다. 희종의 요절로 황제가 된 숭정제에 의해 유배된 위충현은 자살로 욕된 생을 마감했다. 신성한 국가권력을 최순실에게 헌납한 박근혜 대통령이 암군 희종과 붕어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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