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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의 고전시담]이욱(李煜) 우미인(虞美人)

최해주 hjchoi@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2월04일 17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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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春花秋月何時了 (춘화추월하시료·봄꽃과 가을달도 언젠가 지겠지)
往事知多少 (왕사지다소·지난 일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小樓昨夜又東風 (소루작야우동풍 ·작은 다락엔 어젯밤 동풍이 또 불었는데)
故國不堪回首月明中 (고국부감회수월명중·밝은 달 아래 차마 고국을 돌아볼 수 없네)
雕欄玉?應猶在 (조란옥체응유재·붉은 난간 옥섬돌이야 여전하겠지만)
只是朱顔改 (지시주안개·다만 미인의 얼굴은 변했겠지)
問君都有幾多愁 (문군능유기다수·그대에게 묻노니 아직도 얼마나 더 슬픈 일이 있으려나)
恰似一江春水向東流 (흡사일강춘수향동류·마치 한 줄기 봄의 강물이 동으로 흘러가는 것 같네)

이 사는 절명시로서 그가 죽기 직전에 쓴 것이다. 이 사를 쓴 날은 그의 생일인 칠월칠석날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포로 신분이었지만 생일이어서 연회를 열고는 이 사를 짓고 곡을 붙여 가기(歌妓)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렇게 슬픈 노랫소리가 궁중에 울려 퍼지자 송 태종이 이를 듣고는 불길한 노래라고 생각하여 그를 독살한 것이다.

이욱은 이 사에서 항우가 적에 포위되었을 때 춤을 추며 자결하여 항우로 하여금 결사 항전케 한 우미인을 빌려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얼마나 참담한 일이 더 생기려나, 장강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네’ 그럼에도 마냥 버틴 그가 참으로 애처롭다.


이욱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 남당(南唐)의 마지막 왕으로 자는 중광(重光), 호는 종은(鍾隱)이다.

역사적으로 이후주(李後主)라고 불리는 그는 운명적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송(宋)에 신하의 예를 다하는 가운데 국세가 헤아릴 수 없이 기울어 가는데도 매일 연회를 베푸는 등 방탕한 생활로 15년간 재위하다가 송이 금릉(지금의 난징)을 점령하자 항복했다. 이후 북송의 수도였던 변경(지금의 허난성 카이펑)으로 끌려와 3년 동안 굴욕적인 구금 생활을 하다가 결국 송 태종 조광의에 의해 사사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황제의 자리에 관심이 없었고, 황제가 그의 성격에 맞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유약했다. 나라가 패망해도, 굴욕적인 구금생활을 해도, 더 나아가 그의 애첩이 조광의에 의해 유린당하는 등의 치욕을 당해도 어쩌지 못하고 술과 시로 버티다가 결국 독살당했다.

그나마 그가 지은 사(詞)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문학적 평가가 높은 점은 위안이 될 듯하다. 특히 예인의 노래에 지나지 않았던 사를 지식인의 문학으로 고양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황제였던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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