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에 힘을 주는 것은
다리가 벌어지길 막기 위함이다

다리를 벌리지 않는 것은
위대한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옆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현대는 옆을
돌아봐야 하는 세계이고 옆에는
얼굴이 있다 아는 얼굴인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이어폰에 받아두고
허벅지에 힘을 준다 다리를 꼬고 싶지만
참아 본다 다리를 꼬지 않는 것은
허리가 틀어지길 막기 위함이다

허리를 보호하는 것은 지속되는
섹스와 노동을 위해서이고 애석하게도
현대인은 둘 다 잘 못하고 화를 내고
화를 내지 않기 위해 허벅지에
힘을 준다 허벅지 위에는
복사된 쪽지가 놓여 있다

다리를 저는 남자가 옆에서부터
흐물거리는 종이를 회수하며 천천히
다가온다 허벅지에 힘을 준다

쪽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그러나 나는 현대인,
쪽지가 떨어진다 허리를
숙이는 그의 표정을 박아둔
종이가 무한히
복사되고 복사된다



<감상>우리가 눈치 채지 못해도 늘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의자라든가 나무라든가 겨울 햇살이라든가 그들의 허벅지에 놓인 것은 힘을 잃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떼구르르 굴러 떨어져버리리라 그러므로 안간힘으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얹혔을 때는 특히 그렇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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