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군주는 충직한 신하로 보좌하도록 하나, 망국의 군주는 직언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국군(國君)은 나라의 원수(元首)이고 대신은 고굉(股肱:팔 다리)이기에 하나의 몸 속에서 서로에게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신은 결코 앉아서 충신들이 죽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나라 환제 때 태위 벼슬의 진번은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들에게 엄벌을 내리는 황제의 통치행위를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차이가 없다”고 직언했다.

“지금 폐하의 좌우 내시들은 충신들을 패거리라 하여 싸잡아 미워하고 이리저리 얽매어 형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가까이 있으면서 익히 아는 사람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뿌리를 잘라내시고 조정 대신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청렴하고 기개 높은 사람들을 등용해 기르십시오. 그리고 망령되게 사악한 자들을 내치십시오. 이리하면 하늘은 위에서 화합하고 땅은 아래서 흡족하게 돼 아름답고 상스러운 일들이 나타남이 어찌 멀다 하겠습니까” 진번은 내시들이 대권을 독차지해 국정을 농단하는데 분노한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환제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화만 냈다. “황상께서 거둬들인 수천 명의 궁녀들은 생선과 고기를 먹고, 비단옷을 입고,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수천 명의 후궁이 나라를 가난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황제가 민가에서 여자 수천 명을 뽑아 후궁으로 들이자 “강도도 여자 다섯이 있는 집은 그냥 지나간다”면서 간언했다.

진번은 권력 실세들의 국정농단과 황제의 탈선에 대해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직언을 하다 결국 환관들에 의해 살해됐다. 진번이 벼슬길에 나오기 전 어느 날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집안이 지저분하게 어지러져 있는 것을 본 친구가 투덜거렸다. “선비가 청소도 안 하고 빈객을 맞다니”하자 “대장부가 기세 높게 천하를 청소해야지 어찌 방 하나를 청소할 수 있나”라 말했다. 진번은 자신의 대답처럼 평생을 천하를 청소하는 데 온 몸으로 분투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진번의 십 분의 일만 닮았어도 최순실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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